정신을 차린 오빠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어깨를 두드리고는 팔을 내린다. 뒤로 돌아 현장을 보니 커다란 벽돌이 수리점 바닥에 떨어져 있고, 벽돌이 닿았던 문의 유리는 산산조각이 나 깨져있다. 누가 그랬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열고 달려 나가 보니 벌써 저만큼 달려가고 있는 인영이 보였다. 성인남자로 보이는 존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데 따라가 잡을 수 없어 분이 치솟는다.
"집에 가라. 이제 절대로 여기 오지 마."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데. 다 미워하는 거 알면서 왜 아무렇지 않은 척 여기 들어와 있는 건데?"
"나는, 난... 정말로 아무것도 안 했어. 언젠가 네가 나한테 이야기해 준 이집트 전설 기억나? 사티 앞에 가서 심장의 무게를 잰다면, 그 일에 대해서 깃털 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설 수 있어. 그 한가지는 내 인생의 어떤 것보다도 자신할 수 있어."
더 낮은 톤의 목소리가 되어 서늘하게 이야기하는 오빠를 보니 엄마도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절대
적인 확신. 죄가 있으나 죄를지었다고 믿지 않는 마음. 자기 자식을 감싸려는 할머니, 할아버지야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겠지만 부탁을 받고 오빠 대신 묵묵히 두 분을 지키면서 오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엄마의 마음에는 공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떤확신으로 그 말을 믿었을까 생각을 해보면 신이아닌 이상 확신할 수 없는 타인의 행동에 대한
믿음은 미친 짓이라 생각하는 나이기에 엄마는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의
표본같다. 극히 드문 종의 표본. 매일밤 낙관으로 찍힌 낙인의 상처를 핥는 낙타인 엄마.
하지만 이 순간 사자의 서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를 쳐다보는 오빠의 눈을 보니, 타인에 대한 믿음이 때로는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흔들림 없이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깃털의 무게만큼 가볍다 이야기하는 그의 심장. 정말 그 심장의 무게에서 오빠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오래전 이집트의 사자의 서에 대해 오빠에게말한 적이 있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누군가 죽었을 때 자칼의 모습을 한 아누비스가 저승으로 죽은 이를 인도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저승에서 심판의 저울 앞에 서게 되면 천칭 추의 왼쪽에 죽은 이의 심장을 올리고, 오른편에는 정의의 신 마트의 깃털을
올려놓는다고 한다. 깃털보다 무겁게 영혼의심장이 아래로 기울게 되면 그 밑에 있던 암무트란 괴물이 영혼의 심장을 먹어버린다. 한조각도 남김없이 삼켜버리면 죽은 자들이 그렇게 원하는 부활은사라지고 그대로 지옥불에서 고통받는다고 믿는다. 이집트인들의 내세관을 이야기하며우리끼리만의 농담으로 사용하던 깃털의 무게.어떤 일을 믿으라 말할 때 꼭 뒤에 붙이던관용어구를 다시 듣다니.
깃털보다 가벼운 마음이라. 그 말을 하고는 내게서 등을 돌리는데 오빠의 셔츠 오른쪽 허리 편에 붉은 물이 번지고있는 게 보인다. 놀라서 달려가 붙들어 세운 뒤에 셔츠를 걷어 살펴보니 피였다. 유리조각 제법 큰 것이 살갗에 박혀있다. 섬찟하다. 오빠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위해를 가하기 위해서 벽돌을 던진 이의 살기가 실체가 되어 이렇게 칼처럼꽂혀있는 기분이 들었다. 칼날처럼 예리해 보이는 유리조각의 단면이 핏방울을 머금고 반짝이고 있다.
"아주머니한테 알리지 마. 이것까지 이야기하면 놀라셔서 안돼. 그냥, 여기 있는 걸로 대충 치료하고 내일 병원 갈 테니까 둬."
"어떻게 치료를 한다고. 네가 화타냐! 아니면 니 팔이 고무고무야? 어떻게 치료한다고 큰소리를 쳐."
화가 난 나는 급기야 반말로 소리쳤다. 등신도 이런 상등신이 따로 없다. 혼자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저 얼굴을 때려주고 싶다. 언제나 저렇게자신하면서 혼자서 할 수 있다 외쳐대더니 결국은 깃털보다 가볍다는 죄의 무게로 3년이나 감옥에 가 있었으면서 아직도 큰소리만 치는 저 배짱이 죽도록 얄밉다.
열이 나서 큰소리치는 나를 빤히 보고 있던 오빠는 피식 웃더니 안쪽으로 걸어가 구급상자를 들고
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안쪽에 정갈하게 간단한 살림살이들이 갖춰져 있다. 갑자기 결정하고 이곳에 수리점을 세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럼 일단 이걸로 네가 좀 봐줘."
안쪽 침대처럼 보이는 공간에 앉아 등을 돌리더니 셔츠를 벗는다. 얇은 면내의까지 뚫고 들어가 박힌 유리조각을 타고 피가 배어 나온다. 어떤 놈이그랬는지 잡으면 빼낸 유리조각으로 그 손을 긋고 싶다. 똑같이 피가 배어 나오게 말이다. 나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분을 억누르며 다가가 앉았다.
구급상자를 열고, 도구들을 살핀 다음 오빠의 등을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상처가 나있다. 도자기 위에 누군가 짓궂은 장난을 쳐놓은 듯 도돌도돌 올라와 있는 흉터들이 기분 나쁘다. 원래 이렇게 흉터가 있었던가 싶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직 붉은 기가 남아있는 흉터들도 더러 보인다. 그러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건데, 어디서 이 많은 상처들을 얻어왔을지 감이 온다. 3년이란 시간이 만들어 낸 뗄 수 없는 훈장이 되어버린 상처들을 바라보다 코 끝이 시렸다. 앞에서 혹시나 울기라도 할까 싶어 코를훔친 난 심호흡을 하고 물었다.
"빨아야 될까?"
"뭐? 뭐, 뭐?"
내말에 경기일 듯 몸을 돌려 놀라 쳐다보는 모습이 우습다.
"소독. 침으로 하면 빨리 낫지 않나?"
어릴 적 상처가 나면 늘 제일 먼저 상처부위에 입을 대주시던 할머니 모습이 생각이 나 묻는데 버럭 소리를 지른다. 할머니께서 그렇게 해주면 뭐랄까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빨리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들곤 해서 나도 모르게상처가 나면 늘 입으로 상처부위를가져가곤 했기에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저 빙구가 이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붕어처럼입만 연신 벙긋대는 모습이라니.
"왜, 뭐? 양치 잘해. 충치 하나 없으니 걱정 마시지?"
어깨를 밀어 앞을 보게 만들고 다시상처에 집중한다. 좀 전에 발끈하며 뒤 돌아본 덕에 피가 더배어 나온다.말은 큰소리를 치면서 하지만, 막상 유리조각을 빼내려고 하니 손이 떨린다. 그 순간 이렇게 나를 마음 졸이게 만드는 오빠가 정말 괘씸해서 어깻죽지를 세게 때렸다. 갑자기 날아온 스매싱에 또 놀라 움찔하며 나를 돌아보는 오빠. 아픔으로 커진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나는 거즈로 감싼
유리조각을 힘주어 쑥 빼냈다.
"윽. 너!"
"알려주고 뺀다고 하면 더 아프잖아."
"정말 넌 어쩌면 하나도 안 변했냐. 내 상상 그대로야."
무심결에 한 듯한 오빠의 말에 우리 둘 다 그대로 하던 동작을 멈췄다.
"어떤 상상?"
나는 가만히 그 말꼬리를 붙잡고 되물었다. 갑작스레 떠나버린 그날 뒤로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던 나와는 달리 오빠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단다. 나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했을지 미치도록 궁금하다. 다행히 옷 덕분에 더 깊이 박히는 걸 피했는지 피부에 난 상처는 처음 생각보다 작다. 상처크기에 안도하며 배어 나오는 피를 거즈로 꾹 누르면서 다시 물었다.
"어떤 상상?"
"윽. 그만 눌러. 네가 누르는 게 유리조각 박힌 것보다 더 아파. 힘은 더 세진 거 같다."
"대답!"
"특별한 거 없어. 그냥 공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별일 없는지, 누구랑 싸우고 다니는 건 아닌지.
그런 거였어."
"어른이 되어있을 내 모습은 상상해 본 적 없어?"
"네가 어른이 된다...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확신은 든다. 오늘 보니 아직 한참 애야.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