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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제야 Jun 22. 2022

25분씩 여러가지 일 하기

뭘 먼저 하고 싶은지 몰라서 일단 다 해봤음

외주 러시가 끝나면 항상 길을 잃은 기분에 휩싸인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렸던 여가 시간이 생겼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생각만 열심히 정리하다 흘려 보낸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디만, 뭐부터 할지 고민하다 누워버리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내가 정착한 방법은, 건강한 방법은 아닌 것 같지만, 25분씩 골고루 다 하기였다.


전에는 5분이었고, 그 다음에는 15분이었고, 지금은 25분이다. 많이 늘기는 했자나요….


딱 25분만 리서치에 집중하실게여.


그래서 요즘의 내 일상에서는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각각의 일들이 진행되어 가고는 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다시 붙잡게 되는 일도 있고, 25분 딱 한 번 집중하고서는 오랫동안 하지 않게 되는 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새롭게 시작하는 일도 있다.

나의 태스크에는 줄 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나씩 다 해 보기도 바빠….


그래서 일단은 마음 가는대로, 마치 뷔페에서 궁금한 음식을 접시에 담아 보듯 25분짜리 할 일 목록을 내 하루에 담아 보고 있는 것이다.


진행이 더뎌서 유독 감질나는 일이 있다면 사실 난 그 일을 가장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가장 내 마음을 찜찜하게 했던 일이 바로 이거였구나 하고 시간을 그 일에 몰아주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천천히, 일단 이것저것 해 보며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의 우선순위를 찾아가고 있다.

이 과정이 없으면, 그러니까 시간 낭비라고 여겨질만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어떤 일에 우선순위를 둘 지 가늠하는 일 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흑흑. 정답은 정해져 있고 난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근데 이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지.)


아무것도 못하느니 그냥 아무거나 뭐라도 하면 적어도 시간이 흘러 다음 주, 다음 달이 되었을 때 뭐 하나라도 쌓인 것이 생긴다.

이렇게라도 해 놓은 무언가들이 정말로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하니 현실감이 생긴다.


쌓인 것을 뒤적거리다 보니 조금 큰 그림(테마, 카테고리, 주제) 등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중에는 이제는 흥미가 떨어져 버린 것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 체감이 된다. 이렇게 그다지 간절하지 않은 듯이, 장난스럽고 가벼운 태도로라도 이것저것 하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에 흥미가 더 있었을지, 무엇을 더 지속하고 싶어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읽고 있는 책에서, 유튜브에서, “꾸준히 하세요” “아니야, 너무 다 꾸준히 하려고 하려고 매달리지 마세요” “너무 작게 쪼개지 마세요” “아니야, 작게 쪼개서 하세요. 작은 실행이 큰 실행으로 이어집니다” “아니야, 그렇게 너무 작게 쪼개서는 큰 일을 할 수 없다고요!” (어쩌라고 진짜…) 하는 맥락 중 하나만을 선택해서 내 일상에 적용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던 태도 또한 무엇이든 일단 하고보자는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이게 내 일상의 변곡점을 만들어 주었다.


뭐가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일인지 알려면, 그냥 해 보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단,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닌 이상에는 하지 않았다.


일단 해 보고 텅 빈 미래를 맞이할지, 아무것도 안 하고 텅 빈 미래를 맞이할지를 일단 선택해 보자.

지금 당장은 그냥 누워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누워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지금의 일상에 워라밸이 없어도 빨리 지치지 않는 것 같다. 너무 충분히 쉬었기 때문에….


일단 뭐라도 해 보고 텅 빈 미래를 맞이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정말로 텅 비고 허무한 미래를 맞이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혹은 다음에는 다른 목표를 찾아야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마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쓰는 이야기지만, 나는 잠자기 전 킨들 한 줄 읽기로 무기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지금의 일상까지 왔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를 나온 직후, 나는 줄곧 불안으로 인한 공황 증상을 달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큰 회의감에 파묻혀 3년 전까지는 그나마 조금 있었던 외주라도 없는 날엔 잠만 자거나 누워 있었다.

그때의 내가 멘탈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정말로 최소한의 결제활동만 유지하며 굶지만은 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 누워서 쉬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안 하거나 집안일을 미뤄서 무거워진 마음을 더는 못견디게 되었고, 지금은 심지어 잠을 5시간 자도 괜찮은 날을 보내고 있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 내 의지대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잠을 잘 못 자던 문제 조차도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어떤 책을 읽을지 선택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지난주까지 하다 외주로 바빠 잠깐 중단했던 사이드 프로젝트 파일을 열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는 다 넘어가 있고,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9시다.

25분만 하자던 마음이었는데, 심지어 아이디어까지 잘 풀려서 화면에는 내가 원했던 방향의 무언가가 만들어져 있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하지만 뭘 하기에는 기운도 없고 체력도 없고 머리도 아프고….

그렇다면 그냥 무거운 마음이 나를 관통하도록, 그 시간을 일단 ‘쉬는 일(누워 있는 일)’을 하면서 보내 보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을 지났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그 다음엔 이제 슬슬 움직여 보자.

하루에 12시간을 깨어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그 중에 25분 동안은 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읽지 않았던 책을 읽어도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그것도 길어서 5분만 읽었었다.


깨어 있는 시간 12시간 중 딱 5분, 25분!


자매품: 먼지털이 들고 1분 먼지 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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