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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제야 Nov 21. 2021

배운 적 없는 디자인 리서치의 세계

디자인 리서치가 어떤 과정인지 알아가고 있다. 외주 작업을 앞두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와 비슷한 톤의 자료를 찾아 출력해 바인딩을 해 둔다.

오래 전 다른 프로젝트를 하다 우연히 찾은 자료가 지금의 작업에 참고할만했다. 이렇게 예전에 찾았던 자료들은 나름 나만의 빅데이터가 되어 주었다. 또 어떤 것은 방금 구글링으로 찾은 것들이다. 떠오른 키워드라면 어떤 것이든 이것저것 입력해 본다. 그러다 보면 뜻밖의 이미지에서 힌트를 얻게 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숙제를 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던 때와 같은 단순한 과정과는 다른 느낌이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사례를 검색해 참고하던 때와도 완전히 다르다. 내가 검색해 화면에 띄운 자료는 결과일 뿐이었다.

단순히 [자료를 찾는다-벤치마킹을 한다-기획서를 쓴다(그런데 저는 마케터도 기획자도 아니었는데! 이것을 전문으로 하는 마케터와 기획자를 채용하지 않고 직원1을 굴리면 과연 그 조직은 잘 굴러가는 것이 맞는가, 내 노력의 방향은 이 회사에 도움이 된는가, 백 몇 십 만원을 받고 깍두기 같은 포지션으로 일하는 지금의 경험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나와 회사는 이런 식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와 같은 과정과는 결이 달랐다.

이런 사고 과정과 행동이 저절로 이어진 경험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이 내가 다녔던 회사였다면, 책상 앞에 앉아 구글링을 하고, 이미지를 구경하고, 한가하게 프린터를 켜서 출력하고 장난질 하는 것처럼 바인딩을 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놀고 있다고 생각할 게 틀림 없었다.

시안을 만들어야 하는 단 3일 동안의 일정 중 4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과거애 내가 앉아 있었던 회사였다면 무려 4시간 동안이나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하느라 시간을 다 흘려 보내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모아 놓은 각각의 자료 자체에서는 큰 의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료를 모두 모아 놓고 보면 내가 무엇을 찾으려고 했던 것인지, 내가 어떤 부분을 시각화 하고 싶어했던 것인지 교집합이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모아야만 보이는 것이었다.

자료는 참고 하고 싶은 결과물일 수도, 단순한 사진일 수도, 글일 수도 있다.


한 번은 ‘A’에 대한 다양한 아트워크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 과정에서 ‘A’를 스페인에서는 뭐라고 부르는지 알게 되었고, ‘A’와는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이미지를 찾아 그 형상을 토대로 일러스트 작업을 해 보기도 했었다. 그 시안은 선택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를 제시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의미가 큰 경험이 되었다.


어떤 자료를 찾아 그 자료의 어떤 부분을 참고하게 될지, 생각하는 과정과 자료를 찾는 동안 그 자료를 필요로 했던 이유, 자료가 참고가 된 이유를 기록하고 기억해 두는 과정이 ‘리서치’인 게 아닐까, 아무리 책을 읽어도, 강의를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리서치의 세계를 어렴풋이 배워 간다.


Show your work!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과정을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리서치를 통해 또 알게 된 것이 있다.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것들은 훗날 포트폴리오의 좋은 재료가 된다.

이때의 기록을 예쁘게 편집하는 것은 미래의 내가 할 일이다. 기록할 때는 보여지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기록한다. 나는 내 메모와 기록이 컴퓨터와 종이에 나눠 담겨 흩어지는 데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은 컴퓨터와 아이패드로 하되, 기록만은 종이에 펜으로 적거나 출력해서 바인딩을 하는 방법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것들을 스캔해 생으로 포트폴리오에 담을지, 컴퓨터로 재편집하고 디자인해 담을지는 미래의 내가 선택하도록 한다.

일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활동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하고 있는 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요즘, 오늘도 (돈은 적게 벌지만) 프리랜서로 일하기로 마음 먹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추상적인 이미지가 화면에 잘 그려지지 않아 마우스를 잡고 유독 허우적거리는 날의 손놀림도, 화면에 무언가를 그리기 전까지의 (단 한 시간의) 리서치 과정도, 눈치를 볼 만큼 잘못 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근무 환경이 가장 좋다.

특히나 마음과 몸이 개복치인 나에게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방향을 정하고, 적당한 곳에 쏟아 붓는 일이 중요하다. 그 사실을 얼마 전에라도 깨달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도움이 된 책


<Show Your Work!>

<Steal Like an Artist>

위 두 도서는 번역서로도 출간이 되어 있는데, 원서로 읽어 보기를 추천함. 원서는 한 문장도 여러번 읽게 되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읽게 되기 때문에 추상적인 내용이나 과정의 흐름이 더 명료하게 기억에 남는다.


<Research for Designers>

<Universal Methods of Design: 100 ways to research complex problems, develop innovative ideas, and design>


나는 사실, 저 마지막 책은 거의 모든 단어를 사전으로 찾고, 구글 번역기를 돌려 보기도 하며 읽어야 했고, 심지어 책 제목을 쓰는 동안에도 스펠링이 틀리지는 않았을지 어려 번 확인을 해야 할 정도로 참 하찮은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다. 사전과 번역기 없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창피하다면 남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일단 나에게 도움이 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면 될 일이었다. 창피해서 포기하는 쪽 말고, 어떻게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과정과 상태를 선택하는 거다.

(덧.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하지 못하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들었던 말,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에서도 본 내용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반응하기도 하는데, 그 기저에는 다양한 경험과 맥락과 기타 등등이 있잖습니까? 그러니 ‘떼잉, 당연한 소릴! 남들 다 아는 거 지만 몰랐어’하는 말과 생각은 다물어 주시기를. 아, 또 급발진 했네여.)


이미 어떤 상태에 도달해서는 아직 그 상태값을 가지지 못한, 그 상태에 도달하고 있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사람이 못된 거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창피하다는 이유로, 나는 영어도 못하는데 이런 책을 그렇게까지 읽는 게 무슨 소용일까 생각하며 포기해 버리는 건 너무 아깝다.


나중에 “저 멍청이가 어떻게 저렇게 버텼대?”하는 조롱의 말도 무시하자. 내가 즐거운 일을 하고 있고,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으면 그만이다.


책은 모두 킨들로 먼저 읽었고, 이와 관련된 글은 아래 링크에서!

https://brunch.co.kr/@from-home-diary/9



이 작가는 도대체 왜, 모든 활동을 할 때마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리며 주저하거나 혼자 글로 화내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글 참고.

https://brunch.co.kr/@from-home-diary/35

저만 심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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