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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제야 Oct 24. 2021

잠자기 전 킨들 1줄 읽기의 힘: 진짜 딱 한 줄만!

#작은 일, 변화의 시작

2020년 여름, 킨들을 사기로 결정했다. 2021년 벌써 거의 겨울이 되어 버린 지금까지도 잘 읽고 있다. 그 새 새 책이 또 늘었다.


킨들을 사기로 결정한 건, 페이퍼백으로 산 원서는 도통 읽게 되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전을 찾는 일이 너무 번거로웠다. 모르는 단어의 뜻을 찾다 책을 읽던 흐름이 끊기거나, 사전 앱에 들어가 단어를 찾다가 SNS에 들어가 보는 바람에 아예 책에서 흥미가 떨어져 다시는 집중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기 쉬웠다. 허들이 된 것이다. 가뜩이나 영문 책이어서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데, 사전을 찾기 위해 아이폰을 들었다가 다른 데에 한눈 팔게 되면 그걸로 끝이다. (갑자기 택배 조회를 한다든지, 조회하는 김에 새로운 독립출판물이 나왔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지고…)

그래서 오래 고민하고 있던 킨들을 구매했다. 1년 이상을 고민했지만 구매는 순식간이었다. 킨들이 도착한 당일까지도 과연 내가 킨들로 뭔가를 읽기는 할까 걱정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원서 결제,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원터치였다. 버튼만 누르면 구매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원서 5종 정도를 구매했고, 전부 돌아가면서 조금씩 살펴 보다가 ‘Show your Work!’라는 창작 관련 자기계발서를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뻔한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머뭇거리게 만드는 마음속 목소리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등 뒤에 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당장 시작하지 못할 이유를 더는 생각하지 않도록 만드는 글이었다.

나중에 이 시리즈의 두번째 책을 번역서로 읽어 보았는데, 킨들로 읽을 때의 단도직입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아서 다시 원서로 읽게 되었다.


킨들을 사고 난 후 매일 밤 자기 전 루틴이 생겼다. (지금은 이때의 탄력으로 저녁에 아무거나 이것저것 하고 있다.)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보거나 티비에 닌텐도를 연결해 게임을 하다가 과일이나 과자를 조금 먹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각자 침대로 올라간다.


나만의 포근한 침대에 누운 시간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혹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기 좋은 시간이다. 잠이 들기 전까지의 시간을 킨들에 할애하기로 했다. 약간의 결심은 필요했다. 아이폰을 붙들고 인터넷 속의 쓸데 없고 우스운 것들이나 화가 날 뿐인 뉴스 기사나 SNS 타임라인을 보는 대신, 킨들을 붙잡고 원서를 읽었다. 처음엔 몇 줄 읽다 지쳤고, 다시 아이폰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엔 한 페이지 정도를 읽게 되었다. 킨들에 넣은 사전 덕분에 모르는 단어의 뜻은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고, Word Wise 기능도 좋았다. Word Wise 기능의 쉬운 영어 표현은 사전 없이 읽을 수 있는 표현들이 60% 정도 되었다. Word Wise가 쉽게 풀어준 표현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단어를 눌러 사전을 찾아 보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넘어가기도 했다. 맥락상 중요해 보이는 단어는 귀찮아도 사전 뜻을 찾아 보게 되었다. 문장 전체가 이해되지 않아도 내가 블록으로 잡은 문장을 보고 있는 화면에서 바로 팝업으로 뜨는 구글 번역기 기능을 이용해 번역해 볼 수도 있다.


사전 팝업을 오른쪽으로 넘기면 구글 번역기 기능도 이용할 수 있다. 이것도 약간의 동작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기능이기에 귀찮아 자주 쓰지는 않지만 직접 아이폰 앱에 입력해 번역하는 과정보다는 훠어어어어얼씬 간편하다.


이쯤 되자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읽는 시간과 분량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외주 작업이 없던 한동안은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커피를 내려 소파로 가지고 와 앉아 30분 정도 킨들을 붙잡고 읽을 때도 있었다. 유창한 척 하며 소리를 내 읽기도 했다. 모르는 단어는 역시 사전을 찾아 보고, 발음 기호를 보고 읽어 보기도 했다. 마음이 여유로울 때는 사전 앱에서 발음을 듣고 따라하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외국에서 가끔 프리랜서 일을 받아 하게 되었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소통만 되면 그만이라고, 사전이나 구글 번역기가 없으면 작문도 제대로 못하는,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 (누군가들에게는 한심하게 여겨질지도 모를) 내 모습은 모른척 하기로 했다. 모든 회원은 원격으로 신분을 인증해야 한다는 통보에도 공황이 올 정도로 긴장하지 않고 대충 대답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 저는 무슨 무슨 일을 하고요, 회사는 7년 다녔고, 2017년부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이 일을 한 기간은 총 10년 정도 돼요.”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금 더 말해 줄래요?” “클라이언트로부터 원고나 카피를 받아서 어쩌구 저쩌구…”

또 쓰는 말이지만, 필요한 책을 고를 수 있는 풀이 엄청나게 넓어졌다는 게 가장 신기하고 즐거운 점이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그리고 자기 전 단 1분이라도 킨들을 읽으려는 아주 작고 하찮은 노력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변화다.

이 작은 노력조차도 아직 할 준비가 안 되었다면 내일도 모레도 다음주에도 계속 무기력에 빠져 있을 거라는 사실에 체념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거나, 무언가는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 상태로 계속 시간을 흘려 보내며 고통스러워 해야 했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직 아이엘츠는 시험에 응시한 적도 없고, 하고 있는 일 또한 엄청난 기세로 확장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수많은 어떤 사람들은 진즉에 거쳤을 시작 단계지만, 일단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내가 공부를 하거나 일 외의 다른 일로 생각과 실행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반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발전이다.


남은 일은 여기에 연료를 붓고 더 큰 불을 붙여 추진력을 만드는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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