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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제야 Oct 24. 2021

대충이라도 무언가 챙겨 먹기

#작은 일, 변화의 시작


아무것도 먹지 않고 거의 누워만 있어 온 몸의 근육이 다 사라진 것처럼 기운을 내지 못해 일어나지 못했을 때였다. 배가 고픈 감각이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넘어서기 시작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전자렌지 감자 조림을 만들어 먹었을 때의 감각을 잊지 못한다.


그 후 나는 전자렌지를 사용한 요리를 자주 했다. 파스타 면을 전자렌지로 삶아 스파게티를 만든 적도 있었다. 기운은 없으면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망은 있었고, 맛 없는 음식을 먹으면 하루의 기분을 다 망칠 정도로 맛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는 조금 정신을 차리고 약간은 제대로 요리하려고 다시 자주 일어나 있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전자렌지로 끓인 파스타 면의 식감이 그렇게나 끔찍했던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고 싶어하면서도 운용할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도 부족해 금방 지치기 때문에 적당한 절충안을 찾아야 했다.


2019년에는 주로 알리오올리오, 토마토 홀만 으깨 넣은 파스타를 주로 만들어 먹었다. 그래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그때는 다행히도 동생도 회사를 다닌지 꽤 된 상태였고, 나도 돈을 한 푼도 못 벌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약간 비싸지만 맛있는 오일과 소금, 후추, 마늘을 집에 사다 두고 먹을 때였다. 산마르자노 토마토 캔의 발견도 나의 간단 요리에 활력을 주었다. 맛있는 오일과 소금, 후추는 또 어떻고! 이것들만 있다면 파스타에 뭘 넣어도 맛있다. 아니,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맛있다. 코스트코에서 산 마늘은 알싸하고 고소하고 단 맛이 강해서 파스타의 풍미를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다. 3년 전에 친구에게서 얻어 온 냉동 다진 마늘을 다 먹은 후의 일이었다. 새로운 마늘의 맛을 알게 되었다.


또 언젠가는 인스타그램에서 ‘1즙 3채’라는 일본식 한끼 요령을 알게 되었고, 국과 반찬 몇 개를 준비해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반찬 두 개 이상을 만드는 일은 또 다시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 되었으므로, 집착하지는 않기로 했다. 역시나 파스타, 혹은 볶음밥과 미역국 또는 두부만 넣은 미소시루 같은 간단한 국, 불고기 덮밥 같은 것을 즐겨 만들어 먹었다.


샌드위치의 세계도 좋았다. 기운이 있으면 호밀빵에 양파를 다져 넣고 소금 후추 간을 한 크림치즈를 발라 먹거나, 치즈와 햄을 올려 전자렌지에 돌려 먹었다. 조금 더 기운이 있다면 채소를 씻어서 추가하기도 했다. 치즈, 햄, 스윗칠리소스, 마요네즈, 올리브, 채썬 양파를 넣은 샌드위치는 정말 최고였다. 시판 소스와 병조림 제품은 작은 것으로 조금씩 사다 빨리 먹는 편이 경제적인 면에서도 차라리 낫다는 것을 깨달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작은 것을 사도 꽤 오래 먹는다.

아무튼 이렇게나마 채소와 이것저것을 위장에 집어 넣으니 몸이 가뿐해지고, 혈관이 깨끗해지고, 그러니 머릿속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기분이 그랬다는 거다.


*


간단하게 챙겨 먹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또 한 상 부지런히 화려하게 차려 먹는 사람들은 또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족하는 포인트가 다를 것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상 가정처럼 야무지고 고급지게 살림을 꾸리지 못 하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했었다. 혼자 사는 여성은 마치 처음부터 살림을 타고난 것처럼 완벽하게 해서 구질구질 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야 ‘혼자 살 자격’이 있는 ‘한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들과 같은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강박은 점점 애매한 소비, 요리 욕심에 잔뜩 산 식재료 방치로 이어졌다. 그러면 더더욱 아무것도 건드리기 싫어진다. 언제 산 지 기억도 나지 않는 소스와 채소로는 아무것도 요리하고 싶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꺼내는 것조차 두려웠다. 분명 상했을 테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누워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했다. 블로그 너머의 취향을 동경하며 좋아보이는 물건들로 가득한 우리집을 상상하는 일이다. 그런 블로그를 둘러 보다 보면  마음속 목소리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조롱어린 글들이 하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진짜 ㅁㅁ를 좋아하고  아는 사람은 ㅁㅁ에서 나온 제품을 먹는다느니,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제품은 맛있다고 하지 않는다든지, 그런 차를 좋다고 마시다니 취향이 너무 구리지 않느냐, 구린 취향은 죄를 짓는 것이다, 한식이 최고다, 독일인들은 그저 채소와 고기를 구워 먹을 뿐이라 식사가 미개하다, 냉동 만두 같은 몸에 나쁜 것은 장바구니에 담지도 않는다느니 (그래도 요즘은 냉동 만두에 대한 흉은 많이 나아졌다. 저렴하고 맛있는 만두가 많이 나와서일까?) 하는 글과 말들은 나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멋진 블로그에 사로잡혀 ‘구린 취향 가진 나 자신을 부끄러워 하던 때가 있었다. 듣도보도 못한 이탈리아산 올리브오일에는  듣도보도 못한 비싼 파스타 , 그에 어울리는  비싸고 좋은 (좋다고들 하는) 후추, 소금, 그리고 그것들을 담을 멋진 접시, 그리고 플레이팅을 완성해  멋진 커트러리생각과 망상은 끝이 없었다. 욕심은 많은데  돈은 한정되어 있고, 요리할 시간도 없을 때가 많았고, 시간이 나더라도 나는 이미 다른 일에서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애매하게  하나를 샀다가 아껴 먹느라 방치해 버리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것이 무언인지, 어떤 때에 어떤 요리를 해야 지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있을지,  입도 마음도 만족할 만한 방향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


당장 달걀 밥에 간장만 뿌려 먹어도 일단 먹고 힘을 내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주에 치여 주말까지 일하던 지난 한 달 동안의 식사는 그정도로도 됐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나를 방치하지 않고, 뭐라도 먹어서 에너지를 냈다. 그러면 된 거야. 마음속 목소리는 무시하자. 그러자 마음에 약간 여유가 생겼을 때, 관성에 휩쓸리지 않고 일어나 다른 요리를 할 탄력성이 생겼다. 다시 그럭저럭 괜찮은 베이컨과 그럭저럭 괜찮은 올리브 오일과 코스트코 다진 마늘, 할라피뇨, 소금과 후추를 꺼내 파스타를 만든다.


 없을  끓여 먹던 미역국 라면이 아예 공산품으로 출시되고, 고기가 하나도 없어서 싸구려라는 표현이 자주 붙던 김치 볶음밥이 건강 요리가 되고, 마늘과 기름 뿐이라며 주류가 되지는 못했던 알리오올리오 파스타가 라면처럼 후다닥 만들어 먹는 간단하고 맛있는 요리가 되고, 간장 국수니 들기름 메밀 국수니 하는 요리가 초라하거나 소박하기만 한 음식이 아닌 건강하고  편한 끼니로 ‘인정받은 것처럼, 브런치 스타일이나 식이요법 메뉴가 아니어도, 그저 빵과 대충 구운 닭가슴살과 이것저것을 대충 올린 평범한  접시도 미개한 유럽식 식사가 아닌 일상적이고 평범한 레시피가 되어 버린 날이 오지 않을까? 그냥,  어떻게 먹든 그런가보다 하는 흐름이 자리잡는  좋겠지만 말이다.


오늘도 내 취향이 어떻든, 내 모습이 어떻든, 일단 먹고, 에너지를 얻고, 해야 할 일을 해 보자. 아주 작은 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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