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 변화의 시작
무언가를 한 번에 준비해서 ‘완성’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줄었다. 하고 싶은 일과 갖고 싶은 것들을 천천히 쪼개서 준비하다 보니 어느 새 쌓였고, 빠른 시간 안에, 그리고 한번에 완성되지 않아도 만족하는 습관이 들었다.
나는 이제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다달이 받던 삶에서 멀어졌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지금은 그때보다 월 수입이 많지 않다.
돈이 한정적인 상황이라 더더욱 함부로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돈을 위해 싫은 사람과 싫은 일을 마구잡이로 하며 그 시간을 견디고 싶지는 않았다.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외주가 끊이지는 않으니 일단 돈을 쓰지 않고 모으는 잠깐의 과정을 갖는 일부터 시작했다. 돈을 모을 수 있는 딱 좋은 시기와 여유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먼저 깨달은 사람들은 이미 입이 닳도록 했던 말인데 역시 체감을 해야 와닿는다.
그러나 나는 인내가 몹시 부족하고 사소한 일에 절망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므로, 한달치 생활비가 모인 것만으로도 안도감을 느껴 상태에서 고삐가 풀려 책이나 주방 소품을 사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작 한달치 생활비를 비축해 본 그 경험만으로도 나의 일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모아 놓은 돈을 깨는 경험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이다. 몇 달 전까지는 이사 준비 때문에 보증금을 모으고 있던 상태였으니 내 생활비는 모두 보증금이 될 예정이었지만 돈을 모으는 감각은 이미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 5만원이라도 쓰지 않고 모아둔다면 생각보다 불안감이 많이 줄어든다는 점을 실감하게 되었다.
물건이 해지고, 긁히는 일에 대한 강박도 많이 줄었다. 과거의 나에게는 ‘나중’이라는 것이 불확실하거나 거의 없는 셈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에게는 ‘나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건이 망가지거나, 많이 더러워져서 더이상 쓸 수 없을 지경이 되어도, 걱정 없이 바로 구매해 사용할 수 있다. 아끼는 물건에 대한 감정은 조금 다르지만.
냉장고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전에는 맛있어 보이는 재료를 사 놓아도 이걸 다 먹으면 다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껴 먹다 결국 물러지고 곰팡이가 핀 것들을, 돈 주고 산 음식 쓰레기 봉투에 버리기를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을 아껴도 모자랄 판에, 악순환의 반복에서 심각할 정도로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결핍에 의한 불안감은 나 스스로가 나의 기반을 만들어 해결 할 수 있었다. 돈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시간과의 타협은 늘 힘들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엔 동생이 이직한 회사로의 출근을 시작하고, 어릴 때부터 줄곧 붙어 있던 우리 자매는 최고의 금토일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나는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해 미루고 미루던 브런지 작가 신청과 브런치북 신청을 위해 일요일까지 글을 붙잡고 정리해 업로드하고 싶다. 게다가 그림을 그려 올리고 싶은 욕심까지 붙었다. 그러면 우리는 완벽하고 평화로운 주말을 함께 보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타이밍이 어쩜 이럴까. 왜 하필 동생은 월요일에 출근이고 신청 마감은 일요일인 것일까. 완벽한 주말도 보내고 싶고, 글도 얼른 정리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오후 세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팔만대장경 집필을 완료한다는 계획처럼 현실감이 없는 바람일 뿐이다. 나는 결국 10개의 글을 정리해 올리고 동생은 출근하겠지만 나는 아쉬움과 안타까운 감정에 사로잡혀 속상해 하며 주말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나의 집착 포인트는 ‘첫 출근을 앞둔 동생과의 즐거운 시간’이다. 동생의 출근도, 나의 미룸도, 이미 일어난 일인데, 이미 일어난 일이 하필 겹쳐 버린 그 타이밍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 붙잡고만 있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조롱을 하거나 심지어 분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아닌, 전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남들에게는 그저 내가 묵묵히 글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이겠지. 지금도 나는 소파에 앉아 아이패드에 붙여 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동생은 단선되기 직전의 이어폰에 스프링 같은 무언가를 감고 있고, 방 안에는 내가 타이핑 하는 소리만이 들리고 있다. 바깥에서는 저 멀리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버스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한가로운 풍경이다. 이런 가운데 나는 그저 찜찜함을 안고 무언가를 묵묵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도 이렇게 침착하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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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끈질기게 매달릴만한, 꼭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생기면 밥도 먹지 않고 일만 붙잡고 눈 앞이 하얘질 때까지 머리를 쓰고 타이핑을 하고, 화면에 이런 저런 레이아웃을 그리고, 자료를 모았다. 찜찜한 구석이 있으면 하나만 붙잡고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일을 하는 도중에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해!’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일을 하다가도 일어나 찜찜했던 가구의 구석을 털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교체했다. 먹고 싶은 음식도 하필 이럴 때 꼭 만들어 먹고 싶다. 만들어 먹지 않으면 일에 집중을 할 수 없다. 일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더 이상 나의 배고픔과 만족감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책상에 앉은지 5분만에 일어나 갑자기 양파를 썰고 토마토 캔을 꺼내고 파스타 면을 삶기 시작한다. 가지를 함께 볶아 먹으려고 보니 사 둔지 오래 지나 물러 있다. 갑자기 모든 의욕이 파스스 사라진다. 썰어 놓은 양파는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고, 토마토 캔은 다시 제 자리에 갖다 두고, 끓인 물은 컵라면에 붓는다.
강박적이고 혼란스럽고 산만한 일상은 로봇 청소기와 식기세척기, 더 큰 세탁기와 냉장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해 공간을 넓히고, 집안 곳곳에 앉을 곳을 만들고, 시간이 되지 않을 때는 냉동 전이나 만두, 컵라면, 닭가슴살 소시지와 방울 토마토를 일단 집어 먹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의 조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는 게 정확히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파악해 나가고 있다. 남들이 옳다는 것, 남들이 구질구질 하지 않다고 인정해 주는 일이 아닌, 내 일상을 직접 살고 있는 현실의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일,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가진 시간, 내가 가진 돈, 그리고 좋은 컨디션. 이것들이 마치 영화 ‘토르: 다크월드’에 나오는 컨버전스처럼 완벽하게 겹쳐지는 딱 좋은 타이밍이라는 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였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퇴근한 동생에게 저녁을 차려 주다 심하게 화를 내는 나날을 반복하기도 했다. 동생이 나의 짐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을 때 쯤 나는 다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일들이 떠올라 혼자 화가 나기 시작하면 아령을 들거나 스쿼트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들이 확연하게 줄었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은 날, 두통이 심한 날, 속이 좋지 않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기운이 없는 날에는 그저 누워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불안과 공황을 완화해 주는 약도 꾸준히 처방 받아 먹고 있다. 전보다 긴장은 많이 줄었고, 꺼려지는 일에 대한 신체 반응이 줄어드니 마치 감정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감정에 휩쓸려 쉽게 지치는 경우도 줄었다. 잠도 금방 들었다. 그러다 보니 한번에, 비교적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저런 긍정적인 변화들이 맞물려 컨디션은 연쇄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배가 너무 고파 눈 앞이 하얘지고 신경질이 나기 직전까지 버티지 않고 라면이라도 먹는 일, 자기 전에는 샤워 하기, 생각이 복잡할 때 씻으면 기분이 나아졌던 경험의 반복, 스쿼트 고작 다섯 번, 아령을 들고 등 근육 운동 열 번… 긍정적인 영향을 조금이라도 주는 일들이 습관이 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지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요리조차도 하지 못해서 한끼도 먹지 않고 있다가 겨우 일어나 전자렌지로 감자 조림을 만들어 먹었을 때의 기분과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일단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 지쳐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쉬운 일부터 찾아서 실행해보자. 라면만 먹으면 건강에 나쁘니까 라면을 먹으면 안 된다고? 마음에게 물어보자. 나는 라면이라도 먹고 싶다. 요리를 할 기운도 없고, 치우는 과정을 생각하기만 해도 벌써 피로하다. 요리도 싫다. 그럴 바엔 차라리 라면이라도 먹고 힘을 내서 다음을 생각할 기운이라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의 몸을 일으켜 세우는 연습을 먼저 해야 한다. 일단 일어나고, 씻고, 신선식품이 아니더라도 뭐라도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을 먹어 보자. 그 다음은 먹고 나서 생각해 보자.
이렇게 조금씩, 하나씩 천천히 개선하며 쌓여가는 시간의 힘을 계속 떠올린다.
지금 당장, 그동안 하찮게 생각했던 일, 너무 하찮아서 하나마나라고 생각했던 일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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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면 정말 좋은 책
<우울할 땐 뇌과학> 앨릭스 코브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