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날들
맛있는 식재료 그리고 농수산물 커넥션과 저절로 생기는 쌀과 이것저것들이 없는 일상.
고춧가루 커넥션에 대한 글을 보았다. 엄마와 아빠와 시골이 없는 일상은 이렇다. 집에 항상 쌀과 맛있는 참기름과 고춧가루와 김치는 없다.
혼자 사는 일상은 이 환경을 스스로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했다. 뭐든 저절로 생기는 것은 없다. 치약이나 비누 같은 생필품을 제때 사다 보면 어느 새 엄마가 갈비찜이나 콩나물 무침 같은 것을 놓고 가는 일상 따위는 없다.
아무튼 집에는 저절로 쌀과 이것저것이 생겨나 있지 않는다. 입에 맞는 맛있는 김치도, 김치를 담글 풍미 좋은 고춧가루도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모두 돈이다.
게다가 좋은 물건을 납품하는 곳과의 비밀스러운 네트워크가 없다면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그나마 가장 취향에 맞는 제품에 안착하게 된다. 이런 안목이 어떤 세계에서는 흉이 되기도 해서, 또 이런 일로 나의 모든 것이 싫어지기도 했다.
어릴 땐 원래 항상 집에 있었던 것들, 그리고 부모님이 살아오며 이미 만들어 놓은 환경—투도어 냉장고, 크고 깨끗한 세탁기, 세탁 세제와 같은 생필품은 말할 것도 없고—는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혹은 부모님이나 이것들을 가끔씩이라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면—그러니까, 집에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을 때 최후의 보루가 되는 울타리 같은 곳이 전혀 없다면—현금 500만원을 모으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억울함과 아쉬움을 떨쳐내며 나를 챙기고 경제적 환경을 만드는 일은 이미 만들어진 기반에서 내가 나고 자라야 보통의 수준으로 힘겨운 것이 되었다. 밑빠진 독을 수리하기 전까지는 에너지를 들여서 물이 새는 속도보다 붓는 속도를 빠르게 해 남들이 물을 채워 놓고 쓰는 수준까지 내 손으로 어떻게든 밑빠진 독을 밑 안 빠진 독처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건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핑계’라고 할 것이다. 이것 짊어져야 할 운명 같은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남들은 이미 독에 물을 채워 다음 단계를 진행하고 있는데, 나는 물이 채워진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셈이다.
잔머리를 굴려 다른 방법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역시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 그걸 찾을 줄을 몰랐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마지막 남은 동그랑땡을 팬에 부쳐 먹던 날로부터 집에 있던 당연했던 것들은 영영 사라졌다. 어느 순간엔 보증금 3,000이 500이 되어 있었고, 그 중 겨우 건진 내 몫은 200이었고, 냉장고도 세탁기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양문형 냉장고를 다시 집에 들이게 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왜 더 빨리 생활을 낫게 만들지 못했냐고 조롱하는 목소리들이 또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러게요…)
집에 당연히 있는 것, 있는 줄도 모르고 쓰는 먹는 것, 당연하게 그곳에 있고 당연하게 몸을 뉘이고 있는 것들, 이것을 제 손으로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던 게 나의 20대였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미 에너지를 소진해서 남들 만큼 열심히 하는 걸로는 부족한 게 ‘당연했다’는 사실을 아주 늦게 깨달았다. 이럴 때는 차라리 빨리 체념하고 내 속도를 알고 내 여건에 맞춰 사는 법을 더 빨리 깨달았더라면…하는 이제와서는 쓸모 없고 가벼운 생각을 한다. 마음속 먼지는 좀처럼 가라앉을 줄을 모른다.
불안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장기적으로 생각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이상한 반응이 아니었다는 점을, 과거의 나와 같았던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들었던 말이다. 그러니 스스로라도 스스로의 편이 되어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