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2유로는 부적이었다.
어느덧 버스 타는 일이 익숙해졌다.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맑은 날은 물론이고 흐리고 비 오는 날에도 거의 매일 히베이라 광장으로 향했다. 문제는, 내가 예약한 두 숙소 모두 그곳과 멀었다. 첫 번째 숙소에서는 걸어서 1시간, 두 번째 숙소에서는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 구글맵이 안내해 준 대로라면 그 정도가 걸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늘 그보다 더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새로운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풍경이 익숙해지고 나서도 제시간에 도착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구글맵이 잘못 알려준 게 아닐까. 알려준 시간대로 도착하려면, 다리가 10cm는 더 길어야 할 것 같았다.
애꿎은 구글맵 탓을 하다가, 내 탓을 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나는 걸음이 느린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포르투에 와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해지고 있었다.
이곳에 온 지 사흘째까지는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모든 길이 새로웠다. 관광지와 한참 떨어진 숙소까지 걸어가며 포르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욕심쟁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며칠이 지나자 새로웠던 거리가 익숙해져서, 그 시간에 다른 곳을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닷새째부터는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내 걸음으로 1시간이 걸리는 거리도 버스로는 15분이면 갈 수 있었다. 시내로 나갈 때면, 숙소 앞에서 602번 버스를 타고 ‘Cordoaria’ 정류장에서 내렸다. 602번 버스가 안 올 때는 301번을 탔다.
내리는 정류장은 같았다. 내가 탈 수 있는 버스 번호를 외우고, 늘 같은 곳에서 내리는 일. 이 순간만큼 나는 명예 포르투 주민이었다.
“올라.”
인사와 함께 건넨 2유로는 버스 티켓 한 장이 되어 돌아왔다.
“오브리가다.”
기사님은 내 인사에 턱을 살짝 끄덕이며 문을 닫았다. 그 쿨한 인사가 좋았다. 어제저녁에 본 기사님인 것 같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생각에 버스 타는 일이 즐거웠다.
몇 번 타다 보니 버스 요금이 2유로라는 걸 정확히 알았다. 하루에 두 번씩 출퇴근하듯 버스를 타고 다니는 자칭 명예 포르투 주민에게는 중요한 정보였다. 가끔 안단테 카드(포르투갈 교통카드)가 단말기에 태그가 되지 않을 때는, 기사님께 2유로를 현금으로 건네야 했다.
그래서 늘 2유로를 손에 꼭 쥐고 탔다. 한겨울에 붕어빵을 사 먹겠다고 주머니에 2천 원을 꼭 쥐고 다니던 것처럼, 포르투에서는 2유로를 품고 다녔다. 내게 2유로는 부적이었다. ‘이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잘 갈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을 담은 동그란 부적.
‘해변 옆 아파트’로 숙소를 옮긴 뒤로는 버스 타는 시간이 더 즐거워졌다.
마토지뉴스에서 500번 버스를 타고 포르투 시내까지 가는 15분은 왜 이리 짧은지.
창밖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500번 버스 창밖의 풍경은 그림 같았다. 가로로 긴 창밖엔 하늘과 바다가 푸른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2유로에 미술관 입장권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포르투의 버스는 목적지까지 금방 데려다주는 걸로는 부족했는지, 승객들에게 멋진 풍경화까지 선물해 주었다.
버스를 타는 것도 여행의 일부였다. 걷는 여행만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저녁에는 붉게 물든 바다가 그려진 풍경화를, 내일 아침에는 흐린 하늘에 차분한 바다가 그려진 풍경화를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은 푸른 빛깔의 시원한 풍경화를 선물로 보여준 버스에서 내리면서, 다음 작품을 상상했다.
버스 타는 일에 익숙해져서 자칭 명예 포르투 주민이라는 칭호를 달았건만.
그 칭호가 무색하게도 나는, 이 풍경을 일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여행자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음에 포르투에 다시 온다면 그땐 포르투 주민처럼 살아봐야지.
익숙한 듯 거리를 누비면서도, 매일 마주하는 하늘과 바다의 반짝임을 알아보는 사람으로.
*2019년 기준 요금입니다.
*2019년의 기록을 담은 글이지만, 그때 남겨둔 사진이 많지 않아 몇 장은 2022년 포르투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사랑의 순간으로 가득했던 포르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매주 금요일에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