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옮길 생각이 없었다.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이동할 자신도 없었다.
이삿짐을 꾸리듯 캐리어를 챙겼다.
숙소를 옮기는 날이었다. 여덟 밤을 지낸 나의 작은 다락방. 첫 번째 숙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한 층을 더 올라가야 하는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있었다. 그래서 천장이 사선이었는데, 덕분에 아늑한 아지트 같았다. 천장에 비스듬히 난 창문을 열면 빼꼼 보이는 이웃집의 빨간 지붕. 그 풍경을 보는 시간이 좋았다.
비 오는 날이면 두 명이 앉기 좋은 아담한 소파에 담요를 덮고 쪼그려 앉아 일기를 썼다. 토독토독 들려오는 빗소리에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저녁은 뭐 먹지 고민하며 보내는 이 시간이 일상이 되기를 바랐다. 나타와 일기장이 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동그란 원목 테이블, 요리를 해보겠다고 사온 고기를 굽다가 눌러버린 프라이팬을 보며 곤란해하던 작은 주방. 자취하는 기분으로 매일을 보냈다.
이제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이 되어 준 이곳을 떠나야 했다. 아껴두었던 초콜릿을 하나 꺼내 천천히 녹여 먹는 듯한 설렘이 마음을 간지럽혔다. 초콜릿이 사라지는 게 아쉽지만, 달콤한 맛에 금방 기분이 좋아지고 마는 게, 내 기분이 딱 그랬다. 아쉬움을 뒤로 남겨두고 설렘을 꺼내어 숙소를 나섰다. 버스 타는 법을 몰라 사흘 동안 부지런히 걸어 다녔던 거리와도 안녕을 나누면서.
원래는 숙소를 옮길 생각이 없었다.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이동할 자신도 없었다. 머무르던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다음 숙소의 체크인 시간까지 캐리어를 가지고 있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두 번째 숙소를 예약한 이유는 단순했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해변 옆 아파트’라는 숙소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푸른색의 청량한 바다 사진이 아닌, 살짝 회색빛을 머금은 바다 사진을 숙소 대표 사진으로 걸어둔 호스트의 감성에 홀렸다. 인테리어가 마음에 쏙 드는 숙소는 아니었으니, 홀린 게 맞는 듯했다.
포르투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머물 수 있다니. 여행이 끝날 때쯤, 사흘은 이곳에서 머무르면 좋겠다 싶어 예약을 금방 끝냈다.
“숙소에 조금 일찍 도착할 것 같은데,
가능하면 체크인 전에 짐만 두고 나갈 수 있을까?”
“그럼, 당연하지! 도착하면 메시지 줘.”
첫 숙소 체크인 날 아침,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체크인 전날 숙박객이 없는 걸 미리 확인하고 용기를 냈다. 여행에 서툴러서, 체크인 전에 짐만 미리 보관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새로운 걸 자꾸 배운다. 두 번째 숙소도 가능하지 않을까? 배운 걸 금방 응용해 보았다. 첫 번째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기 전, 두 번째 호스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혹시 전날에 게스트가 없었다면,
얼리 체크인이나 짐만 먼저 두고 나가는 게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알려줘!”
“응, 바로 와도 좋아. 곧 만나!”
다행이었다. 캐리어 보관이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호스트들의 배려 덕분에 무거움을 덜 수 있었다. 짐 걱정을 내려놓았으니, 이제 이동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첫 번째 숙소에서 두 번째 숙소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갈 자신은 없어서, 처음으로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기사님은 캐리어와 함께 있는 나를 보자마자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트렁크에 캐리어를 직접 실어줬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그는 나보다 먼저 내려,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번쩍 꺼냈다. 마지막에는 사탕을 하나 손에 쥐여주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즐거운 여행 하길 바라!”
그의 바람처럼, 나의 여행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출발 전에 했던 걱정들이 무색할 만큼, 숙소 이사도 생각보다 수월했다. 입국심사 다음으로 제일 걱정이었던 일을 해결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사흘 동안 나의 동네가 될 곳과 눈인사를 나눴다.
골목 끝에서 불어온 바람에 짭짤한 바다 냄새가 실려 왔다. 포르투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바다를 품은 동네. 마토지뉴스 Matosinhos에 도착했다.
‘바다다!’
바다가 정말 코앞에 있었다. ‘해변 옆 아파트’라는 이름은 과장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바다는 사진에서 본 것처럼 회색빛이 아니었다. 푸르렀다. 수평선으로 갈수록 진한 파란빛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쏴아아-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두근거렸다. 얼른 짐을 내려놓고 바다 구경을 실컷 하고 싶었다. 숙소 하나 옮겼을 뿐인데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듯했다.
이렇게 작은 노력으로 익숙한 도시에서 새로움을 만날 수 있다면,
숙소를 바꾸는 일은 언제든 내게 즐거움이 되어주겠지.
다음 여행에는, 이사를 몇 번 해볼까?
사랑의 순간으로 가득했던 포르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매주 금요일에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