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루강을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해버렸다.
반짝반짝.
제 할 일을 마친 오늘의 해는 존재감이 뚜렷하다.
온 세상에 따뜻함을 안겨준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물가에 반짝임을 두고 간다.
태양이 물 위에 남기고 간 빛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어찌나 반짝거리는지, 때로는 보석을 뿌리고 간 건 아닐까. 소중한 걸 두고 간 건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해본다.
해와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유독 빛나는 물결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곳이 있다.
도루강.
대서양으로 흘러가기 직전의 물을 볼 수 있는 곳.
도루강에 떨어진 햇빛은 유난히 더 빛났다.
물이 맑아서는 아니었다. 포르투갈이라고 다른 해가 뜨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도루강을 처음 본 순간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것을 보아도 유독 더 예쁘게 느껴진다면, 그건 사랑일 테지.
나는 도루강을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해버렸다.
첫 번째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도루강이었다.
가격과 인테리어만 보고 결정한 숙소는 포르투 중심지까지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막상 지도에 ‘도보 한 시간’이라고 적힌 걸 보니 역시 조금 멀리 잡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에게 숙소는 접근성보다 내가 머무르고 싶은 곳인지가 더 중요했다.
중심지까지 가는 방법에 택시나 버스는 선택지에 없었다. 택시는 사치라고 생각했고, 버스는 타는 방법을 몰랐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포르투를 구석구석 둘러볼 기회였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몽글몽글한 구름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층고가 낮은 건물들 덕분에 하늘을 자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얀 태양빛을 머금고 한층 눈부신 연녹을 뽐내는 나무들은 도시 가운데 줄지어 있었고,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피어난 다홍색 꽃나무는 선물처럼 피어있었다. 도시에 내려앉은 봄기운에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사람 키를 훌쩍 넘은 크기의 쓰레기통,
각기 다른 무늬와 색의 옷을 입은 건물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노란색 단체복을 입은 학생들.
익숙한 것 하나 없는 풍경이었다. 눈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발걸음은 자꾸 멈췄다. 거리 구경에 이어 가게 구경까지 하다 보니 도루강에 두 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렇게 보고싶었던 풍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골목 끝에 푸른색의 강물이 반짝였다.
양옆의 건물이 태양을 가려 만든 그늘을 따라 걸었다.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도착한 곳은 그림 속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도루강 Río Duero
머리에 붉은 모자를 얹은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 Mosteiro de Santo Agostinho da Serra do Pilar
온몸을 단단한 철골로 휘감은 동 루이스 1세 다리 Ponte Luís I
명화 속 풍경을 보는 듯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클래식 기타 연주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 강가에 앉아 환하게 웃는 사람들,
아무 걱정 없는 표정으로 누워 그 순간을 오롯이 만끽하는 사람들.
나도 이 그림 속 한 장면이 되고 싶었다.
세하 두 필라르 수도원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는 길에 사 온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 나타를 하나 꺼내 물었다.
이상하다.
사람들처럼 길거리에 앉아 ‘포르투갈 대표 디저트’까지 먹고 있는데도, 어쩐지 나만 어색했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귀에 이어폰을 꽂아 노래를 틀어보았지만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여유를 흉내 내는 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그림을 그리다가 실수로 튀어버린 물감이 된 것 같았다.
내 것이 아닌 여유를 그만 놓아주었다.
내가 보낸 시간은 여유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타 2개를 삼키면 끝나버리는 시간이었다.
여기에 머무는 날이 길어지면
나도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까.
미래의 나에게 물었다.
아직 들을 수 없는 답을 차분히 기다려본다.
여행의 끝에서 기대하는 답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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