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벌어졌다. 오후 7시, 리버뷰 식당.
사건이 벌어졌다.
오후 7시, 리버뷰 식당.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손 쓸 틈도 없이 범인이 눈앞에서 날아갔다.
똘망한 눈, 하얀 깃털, 자유롭게 하늘을 가르는 날갯짓.
이 사건의 범인은, 갈매기였다.
사건 발생 1시간 전
배가 고팠다. 어느덧 저녁이었다.
한국인이 많이 간다는 식당을 검색했다. 포르투에서의 첫 끼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도루강과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식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테라스 자리에 앉으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팁도 얻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당장 목적지로 가고 싶은데, 지도를 봐도 길 찾기가 어려웠다.
구글맵은 직진하면 된다고 알려줬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앞엔 돌담뿐이었다. 돌담을 넘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한 바퀴를 빙 돌아,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렇게 찾아 헤맬 땐 보이지 않더니만. 벽을 어항 삼아 푸른색 물고기 기념품을 빼곡히 붙여둔 가게를 구경하고 나오니,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5분이면 되는 길을 30분이나 헤맸다. 중간에 포기할 뻔했지만, 첫 끼만큼은 꼭 이곳에서 먹고 싶었다.
낯선 도시에서 의지할 건, 앞서 포르투를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뿐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블로거들이 남긴 글을 무작정 믿었다. 태어나 처음 해외에서 혼자 먹는 밥이었기에, 그들의 경험을 나침반으로 삼았다.
다행히 테라스에 한 자리가 남아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은 자리에 홀랑 앉았다.
"뭐 먹지...?"
식은땀이 흘렀다. 식당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뭘 먹을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영어와 포르투갈어가 섞인 메뉴판엔 사진 한 장 없었다. 아무리 쳐다봐도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한참 동안 메뉴를 고르지 못했다.
구글 번역기도 친절하지 않았다.
직원이 닦달한 것도 아닌데, 빨리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쫓기듯 주문했다.
아무거나 손으로 가리키며 주문한 메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차가운 고기 요리였다. 스튜 같기도, 반쯤 익힌 스테이크 같기도 했다.
그동안 고기 요리는 뜨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테이크도, 스튜도, 치킨도.
내게 식어도 맛있는 건 닭강정뿐이었다.
조리가 덜 된 음식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에는 이런 요리도 있는 거겠지 싶어서 그냥 먹었다. 리뷰가 많은 식당에서 날고기를 내놓진 않겠지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신중하게 고르지 못한 내 손가락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함께 주문한 와인도 실패였다. 여유를 즐기고 싶어서 주문했지만, 술맛을 모르는 내게는 그저 쓰고 진한 물이었다.
다음엔 꼭 미리 메뉴를 보고 와야지,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사진을 보여줘야지.
식사하는 내내 다짐했다.
먹는 데 속도가 나지 않았다. 주문한 메뉴가 모두 입에 맞지 않은 탓이었다. 그래도 배는 채워야 했기에 와인 한 모금에 고기 한 조각을 조금씩 삼켰다.
포르투에서 먹은 첫 끼는 비록 원하던 맛은 아니었지만, 식당 위치만큼은 최고였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두 눈 가득 음미하던 그 순간.
식당에서 장식해 둔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힘없이 툭툭 뽑혀 나왔다.
갈매기였다.
‘갈매기가 꽃을 좋아하던가? 꽃을 자꾸 뽑아버리네, 어쩌지. 쫓아 보내야 하나.’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꽃을 뽑던 갈매기가 도망갔다.
이유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푸른 하늘에서 커다란 갈매기 한 마리가 내 눈을 보면서 날아왔다.
짱구 갈매기였다. 감자 머리라거나 숯검댕이 눈썹이 있던 건 아니다.
못 말렸다.
말릴 틈도 없이 내 와인잔 위에 덜컥 내려앉았다.
연약한 와인잔은 갈매기의 무게와 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쨍그랑-‘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큰맘 먹고 시킨 와인이 그대로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하.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구나.’
꽃을 보고 날아오다가 착지를 잘못한 걸까, 나를 놀리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와인을 먹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와인을 엎지르고 도망간 갈매기를 쫓아가 왜 그랬냐고 따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사실은, 민망했다.
이 민망함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누구라도 함께 있었으면 이런 일도 다 있다며 웃고 넘겼을 텐데, 나는 혼자 온 여행객이었다.
애꿎은 짱구 갈매기만 속으로 얄미워했다.
직원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웃으며 자리를 정리하고 새 와인을 가져다주었다.
부지런히 잔을 비워내던 내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당황한 나를 챙겨주는 다정함이 고마웠다.
하지만, 안에서 먹겠냐는 물음엔 고개를 저었다.
괜히 그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이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다시 올 테면 와봐라. 그땐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
별다른 대책도 없으면서 주먹만 꼭 쥐었다.
혼자 여행한다는 건,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그걸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차가운 고기의 맛도,
아직은 어려운 와인의 씁쓸함도,
갈매기가 떠나고 난 뒤에 남은 민망함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매주 금요일, 사랑의 순간으로 가득했던 포르투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