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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Oct 31. 2021

게으름 늪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상자에 던지고 싶은 건 게으름이다


 코키루니카의 그림책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상자>에서 시작은 옆방에 시끄러운 소리와 귀찮게 매달리는 동생, 그 동생을 뿌리쳐 엄마에게 혼이 나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혼나고. 뭔가 안 되는 날은 계속해서 일이 꼬여버린다. 짜증나고 서럽고 억울하던 날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상자를 발견한다. 


 만약 나에게도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상자'가 생기면 무엇을 넣을지 상상해 보았다.


 먼저 고치고 싶은 문제도 삼켜서 해결이 될까 의심부터 들었다. 삼키고 싶은 거라면 싫어하는 것, 피하고 싶은 것 단점과 부정적인 것인데 아무런 노력 없이 지워져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상자에 담아도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 이것만 제거된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에 조금 속도가 붙을 수 있을 것 '게으름'이다.     


 생각은 많고 빨리 흘러가는데 게으름을 피우느라 행동이 생각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 스스로를 자책하고 혐오하는 시간이 지겹고 멈추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게으름이 없다면 이 과정이 유연해질 것 같다. 

 예전에 방송에서 코미디언 이경규씨가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라는 말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게으른데 자기비하와 혐오가 심한 사람도 무섭다. 둘 다 본질적인 문제는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고집과 아집만 부려 스스로를 나락에 빠트린다. 


 나의 게으름이자 미루는 과정은 ①일단 계획을 세워 놓고 미룬다. ②마음 한 구석에 바로 시작해야 미래의 내가 덜 고생 할 것을 알지만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 ③마음 한 구석에 압박감으로 딴 짓을 하며 없는 척, 까먹은 척 한다. ④진짜 해야 하는 상황일 때 할 일은 하지 않고 '난 안 되나, 틀렸어' 자기비하와 혐오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집중해야 할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기비하와 혐오가 깊어진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나면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상황은 많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게으름을 피울 것이냐 말 것이냐 선택의 연속이다. 기상, 이부자리 정리, 청소, 양치, 식사(밥을 챙겨 먹는 과정, 메뉴 선정, 재료구입), 옷 입기(입을 옷을 선택하기, 갈아입기), 노동, 빨래, 과제, 공부, 관계 등.


 일상을 원만하게 굴러가기 위해 무엇 하나 소홀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할 일에 붙는 이유는 ‘한다’ 밖에 없다. 게으름을 피하고 싶을 땐 이유가 무궁무진하다. ‘날씨가 좋아서, 날씨가 안 좋아서, 할 기분이 아니라서, 환경이 깨끗하지 않아서, 커피를 안 마셔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배고파서,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유튜브 알람이 울려서’ 등등.


 일을 하기 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로 해내는 감각만 있다면 어떨까. 게으름을 피우거나 또는 싸우는 에너지가 오롯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쓰여 일의 능률이 오르고 더 나은 사람이 될까.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왠지 24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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