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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Nov 12. 2023

태어나길 잘 했어

내가 나라서 미운 날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한다면?



 프랭코님께서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를 추천해 주셨다. 평소 같으면 이런 제목에서부터 마음이 따뜻해져 관심이 가는데, 이번엔 자신을 얼마나 미워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영화를 봤다.


 주인공 춘희는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네 집으로 들어간다. 춘희를 반겨주는 사람도 공간도 없다. 춘희가 어디서 잘지 옥신각신하다 결국 난방이 되지 않는 다락방이 춘희 방으로 결정된다.


 

춘희는 다한증이 있다. 손발에 땀이 많아 학교에서 포크댄스를 출 때도 포크 댄스를 포기한다. 집에서 걸어 다닐 때도 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춘희의 땀을 닦아주는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다. 아무도 춘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어른이 된 춘희는 마늘 까기 아르바이트한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터라 마늘도 야무지게 잘 깐다. 매일 3만 원씩 일당을 받아 돈을 모은다. 그 돈으로 다한증 수술을 하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춘희는 터널을 지나다 벼락을 맞는다. 벼락을 맞은 후로부터 고등학생이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일상에서 자주 고등학생이던 춘희가 나타나 그 시절 자기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마늘을 까고 식당에 마늘을 전달하러 가는 길에 ‘내 안의 나를 마주 보는 법’이라는 집단 상담 치료 프로그램에 참관하게 된다. 거기서 주황을 만난다. 주황은 말을 더듬지만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춘희는 주황의 말을 듣고 “말씀을 잘하시네요.”라고 말한다. 주황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발화보다 메시지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진심이었다. 주황은 자기 내면을 알아봐 주는 춘희를 좋아하게 된다.


 

 웃을 일이 거의 없던 춘희에게 봄이 왔다. 이제 겨우 행복해지나 싶더니 춘희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비워야 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내 안의 나를 마주 보는 법’ 워크숍에 가기 위해 모아둔 돈을 다 썼는데 알고 보니 사기였다. 나쁜 일은 언제나 재난처럼 예고도 없이 온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릴 적 춘희는 불쑥 튀어나와 땀에 쩔어 있는 발로 집을 누빈다. 어린 춘희에게 잔인한 말을 쏟아낸다. 이후로 어린 춘희는 나타나지 않는다. 주황에게도 이별을 고한다.


 어린 춘희에게 가혹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부모님의 죽음, 아무도 반기지 않는 삼촌네 가족, 학교에서도 어울리지 못한다. 마음속에 쌓인 상처를 하소연할 사람도 속 시원히 화를 내거나 울 장소도 없다. 춘희는 모진 말을 들어도 울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땀을 흘린다.

 “저는 좀 쩔어 있어요. 땀에.”


  춘희에게 땀은 마음속 응어리와 고단함이 아닐까.

 그녀는 즐거워보이지도 그렇다고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한다.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만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일상을 유지하는 춘희. 하지만 마음속 응어리는 언제나 있다. 삶에 변화가 생기려면 번개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벼락을 맞아 보지 않았지만, 실패나 실수한 후의 느낌이지 않을까. 마음이 얼얼하고 회복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지치기도 한 시간.


 벼락을 맞은 후 어린 춘희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살면서 한번은 마주했어야 할 과제였다. 춘희의 인생을 연극이라 비유하면 다음 막으로 가기 위한 전환과 마무리가 필요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은 쉽지 않다. 번거롭고 신경 쓰이고 하기 싫고 괴롭다. 춘희가 사기를 당하고 살고 있는 집을 비워야 하는 소식을 들었던 날은 벼락 맞았던 날보다 더 아프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삶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겁던 날 어린 춘희에게 모진 말을 한다.

“왜 너 혼자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이렇게 만들어. 그때 같이 죽었어야지.”


 삶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기대마저 없어지면 함부로 대한다.

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 모든 게 허무하다. 내 일상을 지탱해 오던 운동, 독서, 글쓰기, 식사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이걸 왜 해야 하지?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다고.’라고 생각하면 누구든 시작도 전에 힘이 빠진다.


 춘희가 어린 춘희에게 모진 말을 했듯 나도 16살, 20살, 23살, 27살의 나에게 모진 말을 했다. 그때가 훨씬 위험하고 어려웠는데 그때마다 나는 버텼다. 지금 나는 서른 살인데 지금보다 어린 나보다 겁은 많아지고 자신감은 없어진 것 같다.

 

 영화 끝에는 춘희가 이사가면서 나레이션으로 마무리가 된다.


 “생일의 눈을 맞은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앞으로 네게 하얗고 반짝거리는 일들이 일어나겠구나. 그 약속 못 지켜줘서 미안해 춘희야. 그런데 세상엔 하얗고 빛나는 것 말고도 더 많은 색깔들이 칠해져 있더라고. 내가 세상에 왜 나타났을까. 끊임없이 질문하던 그때, 너를 통해 만난 여러 빛깔의 사람들처럼 나도 나만의 쓸모와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아졌어. 삶에 쩔어 있고 삐걱거릴 때면 우리가 서로를 꼭 안아주었던 그때를 떠올릴게. 춘희야, 태어나길 잘했어.”


 영화를 보고 나서 잔잔한 영화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계속 생각나는 영화다. 춘희가 어린 춘희를 껴안는 장면보다 식탁에 앉아 모진 말을 한 후, 어린 춘희가 집을 나간 장면이 맴돌았다. 가끔,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내가 지겹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땐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좋으니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내가 어떤 말에 상처를 받는지 치밀하게 안다. 그런 모진 말들을 내뱉는다고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어린 춘희가 나간 후 적적한 기분이 든다. 나를 사랑하는 건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나에게 모진 말을 하지 않고 지냈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자신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지겹거나 미운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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