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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신 Nov 18. 2023

건강해서 몰랐던 사실들

어째서 잃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을까?



 한동안 나는 성공한 사람들이 권장하는 삶과 반대로 살았다. 


1. 늦게 일어나기

2. 불규칙적으로 식사하기
(나는 한동안 냉동식품을 주식으로 먹었다. 매일 브이콘을 먹었다.)

3. 부정적인 사고방식

4. 부정적으로 말하기

5. 휴대폰 오래 보기

6. 일기 쓰지 않기

7. 감사하지 않기

8. 책 읽지 않기

9. 운동하지 않기

10. 햇빛 보지 않기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일상을 건강하고 즐겁게 만드는―독서, 운동, 일기, 규칙적인 생활, 건강한 식습관―생각과 행동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내 안에 어린 자아는 늘 질문한다. 

 “왜 운동해야 해? 왜 일기 써야 해? 왜 책 읽어야 해? 왜 건강하게 먹어야 해?”

 이전에는 성실하게 대답했지만, 지금은 이 어린 자아에게 상처를 내고 싶어 혈안이 된 사람처럼 모질게 대답한다. 대체로 대답은 “~해 봤자 소용없어.”


 언어에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 사실을 부정적인 이 시기에 잊어 버렸다. 그래서 결국 입맛도 잃고 심한 두통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편두통으로 시작했다. 가벼운 편두통은 늘 있으니 견딜만했다. 내가 잘 견디니 두통의 강도는 조금씩 높아져 갔다. 5일 정도 지나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래도 참았다. 그날 밤 오한과 발열이 시소 타듯 했다. 다음 날 진통제를 먹었다.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니 속이 울렁거렸다. 통증은 참아도 속 울렁거림은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통증의학과에 갔다. 진료를 보고 피검사 후 주사를 맞았다. 두통이 이상하게 오전에는 괜찮은데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머리가 쪼개지듯 아팠다. 병원에 다녀온 밤 또 오한과 발열은 시소를 타고 두통이 너무 심해 속이 안 좋았다. 다음 날 아점을 먹고 그대로 다 게워 냈다.

 약 효과가 없어 또 병원에 찾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약을 더 추가해서 처방해 주셨다. 

 “약을 하나 더 추가해 드렸는데요. 여기 빨강과 초록이 반반 되어 있는 무시무시한 약을 추가해 드렸어요. 이 약의 부작용은 어지럼증인데, 드시고 어지러우시면 빼고 드세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죠?”

 무시무시한 약.

 무시무시한 두통엔 무시무시한 약밖에 없다. 모 아니면 도인 약이 왠지 든든했다.

 약 처방 받고 나오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버스를 바로 타지 않고 몇 정거장을 걸었다. 오랜만에 햇빛을 받고 좋은 기분을 느꼈다. 


 집 가는 길 한식 정식을 먹었다. 늘 카레와 냉동 핫도그만 먹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었다. 아직 입맛이 돌아오지 않아 입 안이 꺼끌거리고 쓴맛이 났지만 꼭꼭 씹어 먹었다. 식후 즉시 먹는 무시무시한 약을 먹었다. 날이 어둑해져 가는데도 머리가 안 아팠다. 오랜만에 아프지 않은 상태라니! 그날 밤에도 아프지 않았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프지 않았다. 


 아프지 않은 아침이라니! 일어나자마자 돌돌이로 침대를 구석구석 밀고 이불을 반듯하게 정리했다. 한동안 쓰지 않던 일기장도 폈다. 아프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복둥채(처음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붙여준 집 이름이다)에 대해 감사 일기를 썼다. 


 피검사 했을 때 다른 건 다 정상인데 염증 수치가 있다고 했다. 냉동식품과 브이콘이 한몫했던 것 같다. 건강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마트로 갔다. 당근, 달걀, 토마토, 고구마를 사 왔다. 당근을 깨끗하게 씻어 껍질을 벗기고 잘게 썰었다. 토마토도 깨끗이 세척 후 당근과 토마토를 올리브 오일에 볶았다. 고구마도 깨끗하게 씻고 전기밥솥에 쪘다. 흙이 묻어 있는 채소들을 깨끗하게 씻고 껍질을 벗기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마음이 정갈해졌다. 


 갓 만든 당근&토마토 볶음과 달걀 스크럼블을 먹었다. 달짝지근하면서 당근과 토마토 향이 은은하게 났다. 다 먹고 나서도 허기가 졌다. 허기가 지고 또 다른 무언가가 먹고 싶다는 사실이 좋았다. 고구마 반 개를 신나게 까먹었다. 


  건강한 심신과 생활의 소중함을 한 번 잃고 나서야 잘 굴러가는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었다. 

 지난주에 봤던 영화<태어나길 잘했어>에서 벼락 맞은 춘희처럼 나는 벼락 맞은 듯한 두통을 세게 맞았다. 만약, 신(神)이 있다면 이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한 것 같다.

‘심신 이 자식, 건강하게 잘 살고 있으면서 불평불만이 많구나. 어디 한 번! (두통 한 스푼 콸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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