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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ul Jul 17. 2024

명예가 뭘까?

방황만 하고 있는 내게 명예란

어릴 때부터 명예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명예는 커녕 이도저도 아닌 어른이 되었다.

차라리 돈 욕심이 있었다면 돈이라도 어느 정도 모아 뒀을 텐데 말이다.

그 좋아하는 명예를 갖기 위해 죽기 살기로 끝장을 본 게 없기 때문에

과연 명예를 정말 갖고 싶었는지도 의문이다.

아니 어쩌면 더 근원적인 답부터 알고 시작해야 했다.

명예가 뭔데?

전문직, 인플루언서, 사업가, 정치인, 연예인 등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예로운 직업들이 있다.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막연하게.

나이가 들면서 높은 명예만큼 높은 책임감과 고충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대단하고 화려해 보이는 그들도 매일의 현실엔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다.

누군가의 가르침이 아닌 스스로 보고 느끼게 되면서 원래 갖고 있던 꿈과 목표에 대해 그나마 있던 열정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감당해야 할 것'들을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마음'으로 살게 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내가 스스로 인정해 주는 나로 사는 게 명예였다.

지금 당장 과정과 노력 없이 누구나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명예로운 위치가 된 나를 상상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일을 살아가는 나를 상상했다. 막막했다.

나 스스로에게 증명할 노력의 과정이 없으니 명예가 명예가 아니었다.

방에 이불 하나를 개고 뿌듯해하는 순간의 내가 더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장기적으로 큰 만족을 주기엔 무리가 있다.

스스로 인정해 줄 정도의 내 모습이 소위 말하는 '명예로운 직군'에 있을 확률이 더 높았던 것이지

명예로운 직군이라고 내면의 만족을 갖고 살아갈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합리화하려는 건 아니다.

스스로에게 인정받기 위해선 내 꿈을 이뤄야만 하고 그 꿈이 이루기 어려운 난이도인 것엔 변함이 없다.

다만 명확히 하고 싶었다.

그 직업의 타이틀을 갖고 싶은 건지, 그 직업을 가진 후의 긴 삶을 기꺼이 살 마음이 있는 건지.

목표 지점에 푯말이 서있는지, 풍선 장식이 되어있는지도 모른 채 달리면 여러 종착지 중 어느 곳인지

모르고 달리는 것과 같다.

방황의 겉모습은 낭비와 닮았지만 명확함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원하는 걸 이룬 후의 내 모습은 어떨지,

진짜로 원하는 게 맞았는지 방황하고 방황한다. 그러면서 생각하고 생각한다.

이제 달릴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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