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흘려버려 진 나의 노력들, 진심들
상대가 모두 알아보길 바라고 진심을 전하는 건 아니지만 모르고 지나가도 괜찮은 정도가 있다.
알아봐 주길 바라면서 애초에 왜 줘? 할 수 있지만 그런 생색이랑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알아봐 지지 못해 상처받은 마음까지 결국 내 탓으로 돌렸었다.
내 노력이 부족했을 거야.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잘했다고.
노력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그렇지만 그건 아니었다.
상대도 내게 그만큼 했나? 하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이상하게도 이런 고민을 하게 한 관계의 상대는 내게 무관심한 편이며 늘 테이커(taker)였고,
이런 고민을 한 번도 하지 않게 하는 상대는 오히려 내게 늘 관심을 보여주는 기버(giver)에 가까웠다.
먼저 찾아가고 어려울 때 들여다 봐주는 노력, 먼저 관심을 보여주는 노력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은 관계엔 그야말로 '현타'가 오기 마련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듯 상대가 굳이 예쁜 말을 하지 않아도 먼저 다정하고 애정 어린 표현을 건넸었다.
사람으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는 마치 교통사고 후유증 같았다.
상처를 받은 직후엔 자존심과 분노 등으로 벌떡 일어나 씩씩 거리며 잘 걸어 다니는 듯했었다.
그러나 몇 달, 몇 년이 흐른 뒤 통증이 서서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올라왔다.
교통사고는 피해자, 가해자가 대게 명백하게 구분이라도 된다.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들은 상처를 준지도 모르고, 상처를 받은 걸 이해하지도 못한다.
회복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몫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관계에서 들인 정성들은 '참견과 오버'가 되고 그래서 한 발 빠지면 '무심함'이 되었다.
나를 아껴주는 관계에선 단 한 번의 정성으로도 '섬세함'이 되고 한 발 빠져 있는 건 '지켜봐 줌'이 되었다.
나는 같은 사람인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즉, 어떤 관계에선 어떻게 해도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고, 어떤 관계에선 좋은 사람인 것이었다.
그럼 굳이 전자의 관계를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나를 아껴주는 이들에게 내가 밑 빠진 독이 되고 있진 않은지 신경 쓰는 편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반면교사, 실패의 장점.
내게 관계적 힘듦을 주는 이들은 좋은 관계를 놓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나침반 역할이다.
정성도 정성을 들일 사람들에게 들이고 마음을 알아봐 주길 바람도 바랄 사람들에게 바래야 했다.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 고마움과 노력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