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과 우주, 누군가의 팬으로서의 기록
한창 기획을 공부했던 이십대, 나를 매료시킨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의 사랑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된 여러가지의 사랑의 단상(短想)이다. 그 맘 때 즈음, 아니지 좀 더 시간이 흘러 파스텔뮤직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앨범 <사랑의 단상>이 세상에 나온 후부터는 이따금 책 구절을 검색해보고 싶으면 바르트의 이름을 붙여야 했던, 그때. 서두가 길었지만, 어쨌든 이 책은 내가 겪은 단편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대개의 인간관계를 맺을 때에 있어서 알게모르게 영향을 미쳤다. 좋아하는 구절이야 많고 많지만 그랬다간 내가 정말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시작 못할 것 같다.
내가 우주에 매료된 건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2017년 이후부터이다. 사실 날짜까지 기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말 잊을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2017년 6월, 밤을 새며 텔레비전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그날을 기억하고 있고, 그로부터 한 달은 넘게 시도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정말 힘들어 했다. 지금은 결과 조작사건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린 거대인원의 연습생을 데뷔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 전 국민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프로그램에 나는 푹 빠져있었다. 사실 프로그램이라기 보다는, 거기에 출연하는 한 연습생, 그러니까 이미 데뷔를 한 번 한 적 있었던 아이돌에게 빠져있었다고 하는 게 좀 더 맞을 것이다. 나는 그 애의 모든 것이 좋았다. 검고 큰 두 눈, 둥근 코, 웃을 때 양 옆이 근사하게 벌어지는 모양과 발음이 희한하게 뭉개지는 목소리 - 뭐 그런 것들이 참 좋았다. 그 애는 마침 국민프로듀서들에게 적잖은 호감과 인지도를 쌓았으므로 나는 데뷔를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종종 회자되는 '만약에'라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이제서야 정말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고 한없이 애달팠다.
새벽 네 시, 생방송이 끝난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울면서 그랬던 것 같다. 이제 보고 싶어지면 나는 어디서 얘를 봐야해?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애는 연예계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 애가 원래 속해있던 그룹도. 나는 가열차게, 정말 행복한 '덕질'을 했다. 그 애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었다. 원래 덕질이란 게 그렇다. 나는 사실 초등학생 때부터 유구한 '덕력'을 쌓아온 '아이돌 덕후'였다. 감정 소모가 적지 않은 취미 활동이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그리고 덕질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우주가 좋아졌다.
From the moon, to the stars, 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그 애가 참여한 듀엣곡이다. 노래 가삿말도 참 예뻤다. 우주를 헤매다 서로를 알게 된 우리에 대한 노래였다. 나는 사실 우주공포증이 있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 때 즈음,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기 시작한 건 어찌 보면 우연이기도 하지만, 저 노래가 아니었다면 별 대수롭지 않게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때때로 우주에 대한 쉬운 과학입문서를 찾아 읽기도 하고, 우주와 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트위터 계정을 팔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드넓은 우주의 매력에 빠졌다. 나는 정말이지 잘 빠진다.
우주에 대해 알게된 여러가지 정보를 얼기설기 모아 쓴 글들도 있다. 여기엔 절대 올릴 수 없지만, 여튼 그렇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얘기는 명왕성과 그의 위성 카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알다시피 명왕성은 2006년, 태양계로부터 방출되었는데, '행성'으로 분류되기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는 왜소행성으로 분류되었으며 다섯 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다. 특이한 건 그 중 하나인 '카론'이라는 위성이다. 카론은 명왕성의 절반 크기로 위성치고는 매우 큰데, 명왕성과 카론 사이의 질량의 중심이 둘 사이의 우주 공간에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이중 행성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나는 그게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낭만은 그뿐만 아니었다. 태양계뿐만 아니라 이 미지의 우주는 너무나 넓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수억 개의 별들이 있었다. 지금 보고 있는 별의 빛이 실제로는 아주 먼 과거로부터 온 것이라거나, 태양계 행성을 여행하고 있는 탐사선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런 걸 듣고 보고 있자면 마음 한 켠이 짠해지는 것이다.
하여간 우주에 대한 나의 애정은 때때로 그 시작점, 내가 좋아했던 그 애를 넘어서기도 한다. 좋아하는 마음 역시 별 같다. 폭발과 함께 뜨겁게 탄생되어 일정한 시간 동안 타오르다가 서서히 식어가는 것 말이다. 그래도 그 때의 뜨거웠던 여름의 온도와, 찬란했던 7월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우리는 어쩌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여전히 누군가가 내게 좋아하는 책이 뭔지 묻는다면 가장 먼저 대답할 책이다. 앞서 언급했듯 발췌하고 싶은 문장은 너무나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는 이것이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랑의 행위를 통해 내가 체득하게 되는 지혜는, 그 사람은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의 불투명함은 어떤 비밀의 장막이 아닌 외관과 실체의 유희가 파기되는 명백함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미지의 누군가를,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남아 있을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는 마음과 이해의 정도는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때로 사랑하면 할수록 그를 이해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어떤 것-를 사랑한다는 건 내 마음 한 켠에 그 사람-그 것-의 자리를 만들어두고 열렬히 살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건 마주 본 채 빙글빙글 돌아가는 명왕성과 카론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좋아하는 유명인의 행복과 평안을 비는 팬의 얼굴이기도 하고, 또 하늘 위 반짝이는 과거로부터 온 별빛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