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당신으로부터 도착한 답장

마종기 시인의 시들

by 김안나

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던 스물셋의 언젠가, 내가 마종기 시인의 시를 알게된 건 어쩌면 나의 이십대를 통틀어 가장 행운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대학 때 문창과 수업을 몇 가지 들었었는데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건 시작(詩作)이었다. 시를 읽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타과생이었던 내가 느낀대로 말을 하자니 주변에서 전공생들이 조그맣게 웃는 소리도 들렸다. 시 감상에는 정답이 없을텐데 그 애들은 왜 내 얘기를 듣고 웃었을까?

그때부터 시는 나에게 아주 어려운 문학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학생 때 즐겨찾던 서점에 들리는 날이면 빠지지 않고 시 코너에 가서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찾았다. 짤막한 문장과 명료한 단어들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강렬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알게 된 마종기 시인의 시는 '이름 부르기' 였다. 그때 나는 한창 글쓰기에 푹 빠져 있었고, 함께 글을 썼던 언니의 글에 저 시의 일부분이 실려있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

시치미 떼고 옆 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로 바람도 만들었다. (마종기, 이름 부르기)


이 시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충격이란. 그리고 나는 그가 낸 시집을 틈틈이 모았다. 본래 의사였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의사 체험과 외국 생활을 모티브로 한 시가 많다. 거기에는 어떤 그리움의 감정도 있고 다정하고 따뜻한 정서가 있으며 무척이나 슬픈 감수성도 있어서 이따금 먹먹해질 때가 많았다.


집 없는 새가 되라고 했니?

오래 머물 곳 없어야 가벼워지고

가벼워져야 진심에 골몰할 수 있다고

설레는 피안으로 높이 날아올라

구름이 하는 말도 들을 수 있다고,

이승의 푸른 목마름도 볼 수 있다 했니?


잎 다 날린 춥고 높은 우듬지에서

집 없는 새의 초점 없는 눈이 되어야

우리 사이의 복잡한 넝쿨이 풀어진다 했니?

망각의 틈새에서 적적하고 노쇠한 뼈들이

몇 개 쯤의 상처는 아예 손에 들고 살라 하네.

외지고 헐거운 삶의 질곡을 완성한다고.

욕심 부를 유혹의 금줄을 쓸 수 없게 한다고.


문을 열면 나를 맞아준 것은

질서 없이 도망간 흔한 변명뿐.

수척한 추위에 떨며 나를 안아주었네.

노을이 붉어질수록 깊이 잠기는

저녁 근처의 너는 벌써 새가 되었니?

아프지, 그게 진심만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야.

아프지, 그게 오래 서로 부르고 있다는 증거야. (마종기, 상처6)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시는 '바람의 말'이다. 이 시는 읽을 때마다 늘 새로운 감각으로 좋았다. 심지어 이 시가 담겨있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의 타이틀도 좋았고, 오래전의 인쇄본으로 문학과지성사 특유의 납작한 표지와 끝이 뾰족한 인쇄 글씨체도 좋았다. '바람의 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스물네살 때, 스물 여섯살 때, 서른살 때, 서른 두살 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 그게 누구든, 그가 어디에 있든, 대상은 늘 바뀌었을지언정 감정은 유사했기 때문에 나는 어느샌가 애틋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대상)이 생기면 이 시를 가져다 붙이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마종기, 바람의 말)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보고싶어질 때마다 화자는 언제나 나였다. 내가 사랑하는, 아끼는 사람(대상)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이 짧은 시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나는 언제나 착한 사람이 좋았고, 그 사람들이 지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아주 이상적인 얘기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나는 대학동기로부터 프로젝트를 하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장르 상관없이 기존의 것(예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를테면 2차 창작을 하고 책으로 엮는 것이었는데 나는 주저없이 나의 소재를 마종기 시인의 시로 골랐다. 위에서 언급한 '상처6'이었다. 그 시를 바탕으로 내가 떠오르는 문장들을 엮어 글을 썼고 심지어 내 글이 마종기 시인에게도 보내졌다. (!)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때 썼던 글이, 사실 아주 잘 쓴 글도 아니었고, 온갖 허세가 범벅이 된 글이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나의 선생님 시인은 내 글이 좋았고, 아주 강한 힘이 느껴진다고 하며 피드백을 보내왔다.

나는 어쩌면 아주 약간의 인정과 애정이 필요했던 걸까. 하지만 내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좋아했던 예술가에게 나의 존재를, 그것도 보잘것없는 글을 내보이기까지 하며 알렸으니 아주 부끄러웠다.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무모한 용기였던 셈이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나를 알릴 때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꽤 오랫동안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글쓰기를 다시 하고 싶어서였는데 무작정 시간이 또 이렇게 흘렀다. 그간 나에게는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마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난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여서 나는 요즘 집에서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

만약 지금 다시 시인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면 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지금의 내 상황과 기분에 대해 적은 후, 당신은 잘 지내고 계신지를 묻고 싶다. 스무살, 스물네살, 그리고 스물여덟살 때보다 더 불투명한 나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 너무 답답하다고 말이다. 그럼 착하고 다정한 나의 시인은 이렇게 답장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아프지, 그게 진심만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야. 아프지, 그게 오래 서로 부르고 있다는 증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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