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사랑이었어요 <9>
지난주, 그러니까 옥수수가 알알이 여물어가는 어느 날에 막냇동생의 공지 사항이 삼 남매 단톡방에 올라왔다. 부모님이 가꾸시는 작은 정원의 이름을 짓자고 했다. 막냇동생의 의견은 아니었고 부모님이 상품을 걸고 일종의 작명 공모전을 연 것이다.
공지가 있자마자 둘째는 이런저런 이름들을 쏟아냈다. 시크릿 가든, 비밀의 정원, 너의 이름은 등. 가만 보니 다 어디선가 본 이름들이었다.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의 제목이기도 했던 이름들이 아닌가.
부모님의 정원 가꾸기가 시작된 건 농사를 줄이는 일과 관련이 있었다. 작년 초 난치성 폐질환을 진단받은 아빠의 건강이 올해 들어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더 이상의 농사는 다들 반대했다. 그러나 아빠에게서 농사를 뺏는 건 인생을 빼앗는 의미였을까. 아빠는 올해도 결국 모를 심었다. 며칠 뒤 바로 후회하시긴 했지만 말이다.
체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도 줄일 겸 밭 일부를 정원으로 꾸미기로 했던 거다. 아빠는 시골집 마당에 오랫동안 키워온 분재를 하나둘 창고 옆 밭으로 옮겼고 얼추 모양새를 갖추어 지금에 이르렀다.
- 만중, 인숙의 이름을 따서 인중은 어때? 인중 정원?
나는 이때다 싶어 농을 했다. 아빠가 아픈 뒤로 다들 웃을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동생들은 내 유치한 말장난에도 메신저 안에서 깔깔 웃었다. 투고에 대한 횟수 제한이 없었기에 이후 각자 예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 정원 이름을 생각날 때마다 메신저에 남겼다. 그렇게 일주일 사이 제법 많은 이름이 후보로 등록됐다.
심사위원은 아빠였고 진행은 막내가 맡았다. 나와 둘째는 메신저를 통해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받기로 했다. 응모작은 총 14편. 여기에 엄마가 한 편을 더했다. 두두두두 하는 북소리는 없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기에 나름 긴장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빠의 취향이 궁금했다.
마침내 당선작이 결정됐다. 막내가 보내온 결과 사진을 보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짧은 순간 여러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당선자는 엄마였다. 아빠에게 선택받은 정원 이름은 ‘숨터’. 이 이름 안에는 남편이 편하게 숨 쉬길 바라는 마음을 담겨 있었다.
요즘 들어 산다는 게 통속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특별하고 싶었던 내 삶도 결국 통속의 어느 장에 속해 있었음을 인정하려고 한다. 결국 웃고 우는 순간은 다 통속에 속한다. 나는 그 통속에 속하지 못해 웃을 때 웃지 못하고 울 때 울지 못한 이방인이 되어왔다. 통속에 속한 감정을 무디게 하고, 거기서 벗어나 있다고 여긴 감각의 날을 벼리는 일에만 골몰했다. 그래서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함을 걱정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어쩌면 내 아빠도 그랬을 터, 정원 ‘숨터’에서 우리의 숨과 감정이 함께 트였으면.
어떤 예행연습일까. ‘숨터’가 적힌 사진을 보며 조금 울었고 그 이름에 담긴 바람이 하늘에 닿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