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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Sep 03. 2022

현대판 왕좌의 게임, 석세션 시즌3

OTT 감상기록(wavve)


석세션 시즌3를 얼마 전에 정주행 완료했다. 시즌2 이후 얼마나 기다렸던지! 지난해 연말쯤 방영됐던 걸로 알고 있는데 웨이브에는 지난 달인가, 아무튼 얼마 전에야 들어왔다. HBO max의 한국 진출이 기약 없어진 상황에서, HBO 작품을 보려면 여러 OTT들을 기웃기웃거릴 수 밖에 없어 안타깝다.

(여담으로 '피스메이커'와 '결혼의 풍경'도 드디어 드디어 웨이브에 들어왔다!! 한동안 볼만한 작품 찾아 여기저기 헤고 다니지 않아도 될 듯.)


석세션은 제목 그대로 상속과 후계 구도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거대 언론 기업의 창시자인 로건 로이 회장이 80세 생일을 맞이하면서 본격적인 후계 논의가 활발해지는데, (장남 1명을 제외한) 그의 자녀 3명을 포함하여 몇몇 측근들이 후보로 오르 내린다. 둘째 아들이자 실질적 장남 역할을 하고 있는 켄달, 시니컬한 입담으로 소심함을 숨기려 하는 기회주의자 로만, 똑부러지고 가장 현실적이지만 약점을 숨기지 못하는 시브, 이 세 자녀는 자신이야말로 이 제국을 이어받을 적임자임을 증명하고 얽히고 설킨 권력 구도 안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각설하고, 시즌2가 그랬듯 시즌3도 마지막화가 무척 강렬하다. 시즌2가 켄달의 통쾌한 한 방이었다면 시즌3는 그에 대응하는 로건의 뒷통수 쯤 되시겠다. 이 아버지는 정말이지 자비가 없다.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딸, 아들을 농락하는 아버지 캐릭터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물론 부모 자식간 대립이야 별별 막장극에서 자주 다뤄론 소재이긴 하지만, 로건 로이만큼 자녀를 마치 언제든 변절할 수 있는 사업 파트너 대하듯 하는 캐릭터는 흔치 않다.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너무나 '적극적으로' 넷이나 되는 자식들을 이용하고, 이간질하는데 진심이란 지점이 봐도봐도 놀라울 뿐. 설마 아무리 그래도 부모인데 이 정도까지? 하면 그보다 늘 한 발 더 나간다.


그런 아버지에게 당하고 또 당하면서도 아버지의 인정을 획득하고 싶은 열망에 불타는 세 자녀의 안간힘을 보고 있자면 안타까움이 솟아오름과 동시에 '그래, 너넨 아직 못이겨, 그정도론 아직 안된다구! 더해봐! 더 강해져 보라구!'를 외치게 된다. 로건 로이를 제대로 이겨먹으려면 그렇게 맘 약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리고, 결단을 못하고, 그래선 안된단 말이다. 어설프게 이겨서는 안된다. 철저하게 이기지 않는다면 시도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로건 로이를 상대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로건은 정말이지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인간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극 중 내내 이야기되듯 업계의 '레전드'인 것 만큼은 틀림없다. 그가 인간적으로 진저리나게 싫은 것과 별개로 나는 로건이란 캐릭터 자체는 무척 마음에 드는데, 그 이유는 조금 뜬금없겠지만 '탑건 매버릭'이 좋았던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한창 때는 물론 애저녁에 지났다. 이제는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로건은 몸 상태도 좋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만든 제국의 황제직을 끝끝내 붙잡고 놓지 않는다. 처음에 그건 오만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즌이 전개되어 갈수록 어떤 면에선 그의 선택은 무척 합리적여 보이기까지 한다. 로건 자신보다 더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 자녀들 뿐만 아니라 후보로 오르내리는 모두가 그렇다. 철저하게 비즈니스맨으로 살아온 그는 스스로 만들어낸 이 거대한 제국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고 능력도 증명하지 못하면서 서운하다고 징징대거나 배신할 명분만 찾고있는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에게 넘겨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한 물 갔다해도, 그런 자기만도 못하니 어쩌란 말인가. 내가 쭉 붙들고 있거나, 차라리 내 손으로 끝장을 보거나, 둘 중 하나 뿐이다.


이미 황혼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 여겨지던 매버릭이 젊고 창창한 파일럿들의 대장이 되어 작전을 수행하는 것과 이 지점에서 약간 닮아 있는데, 매버릭이 대장이 될 수 밖에 없던 것은 다른 어떤 이유들을 다 떠나서 그가 가장 비행을 잘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고 긴다 하는 세계 최고 파일럿들이 모여도, 매버릭만 못하 어쩌겠. 이번에도 매버릭이 대장 노릇을 할 수 밖에. 예우 따위가 아니라 진짜 그가 제일 잘난 캐릭터라는 게 나는 너무 좋았다.


물론 매버릭은 기본적으로 선고, 다른 누군가를 케어하고 또 살리려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로건 같은 금세기 최악의 아버지로 꼽힐 법한 인물과 비교 대상 삼을 순 없겠지만, 두 캐릭터가 여전히 현역에서 젊은이들과 싸워도 이겨먹을 수 있는 캐릭터라는 점 만큼은 닮았고 나는 그게 마음에 든다.  진짜 예우는 이런 것 아니겠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파장의 시즌 3 끝에 이어질 시즌 4가 더더욱 기대된다. 누구라도 로건 로이를 이겨먹었으면 좋겠는 마음 반과 절대 쉽게 무너지지 말고 자식 녀석들 더 혼쭐을 내줬으면 좋겠는 마음 반으로 지켜볼 예정이다. 물론 모두가 지는 엔딩도 나쁘지 않겠다. 사실 그 쪽이 현실 세계에선 대중을 위한 해피 엔딩일테니까.


+) 자기들끼리 그렇게나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면서도, 정작 진짜 힘들 때는 서로를 찾아 기대는 세 남매의 모습이 이상하게 짠하고 조금은 귀엽기도 하다. 시즌3에서 켄달이 심정적으로 무너져 내릴 때, 결국 그가 솔직한 심정을 말하고 의지하는 대상이 로만과 시브였다는 게 이 남매의 꼬이고 꼬인 애증을 잘 보여주는 장면 같다. 셋 다 징글징글한 캐릭터지만 그래도 니들한테 서로가 있어서 요만큼은 다행이라는 느낌.


+) 그외 캐릭터들의 관계도 독특하고 흥미로운데, 특히 톰과 그렉. 처음엔 짜증났었는데 이젠 둘이 나오는 장면은 그냥 웃게 된다. 석세션의 모든 인물이 그렇지만, 둘은 특히나 멋있는 점이 단 한 군데도 없는 캐릭터들이다. 그런 둘이 작당을 꾀하는 게 웃기고 그 안에서 권력구도가 잡혀 있다는 것도 웃기고, 톰의 이중성도 웃기고, 그렉의 줏대없음도 웃고, 그냥 안 웃긴 지점이 없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들이 최후의 승자가 될까봐 약간 두렵기도 하다는 게 제일 웃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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