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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May 22. 2017

마음에서 형태로

목소리의 형태(2016)

소년은 죽기로 결심한다.
성실하게 죽음을 준비한다.
D-day는 정해져 있다.
하루하루를 X로 지워가며 그날을 맞이한다.

그러나 죽지 못한다.

X의 나날은 이제 끝났다.
소년은 찢어진 달력에 공백으로 덧대어진 시간들을 맞이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wcQZKXZ_A8


The Who - My Generation(1965) : 어린 쇼야의 학창시절을 스케치하는 오프닝에서 나오는 노래. 영국 락 밴드의 전설 '더 후'가 1965년 발표한 노래로 기타리스트인 피트 타운센드가 작곡했다. 보컬 로저 달트리의 말을 더듬는 듯한 창법과 '늙기 전에 죽고싶다(I hope I die before I get old)'는 가사로 유명하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과 젊은 세대가 겪는 혼란을 표현한 곡.




<목소리의 형태(2016)>는 주위 사람들을, 다가오는 시간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지워버린 소년의 이야기다. 이 소년, 이시다 쇼야는 왕따의 가해자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알아주는 짓궂은 장난꾸러기였던 쇼야는 어느 날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학생 소녀를 만나게 된다. 니시미야 쇼코라는 이름의 소녀는 선척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다. 쇼코는 공책을 통해 반 친구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차 바보같이 늘 웃기만 하는 쇼코가 답답하고 불편해진다. 쇼야는 앞장 서 쇼코를 괴롭히고 아이들은 그런 쇼야를 보며 즐거워 한다. 쇼코는 결국 학교를 떠나고 남은 아이들은 왕따의 주동자로 쇼야를 지목한다. 그때부터 쇼야에게는 '가해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고 새로운 왕따의 타겟이 된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쇼야는 자살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쇼코를 찾아간다. 다시 마주하게 된 쇼야와 쇼코, 그리고 그때 그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출처 : 다음 영화




쇼야와 쇼코는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인 동시에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모든 비극이 자신으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상황의 최종 해결책은 자살이다. 그들은 자꾸 아래를 본다. 고개를 들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마주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마주하는 것이 이들에겐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는 곳은 다리와 발이다. <목소리의 형태>에는 특이할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하반신만 잘라 보여주는 씬이 많다. 이 아이들의 다리는 이야기하고 있다. 망설이고 부끄러워하고 화를 낸다. 눈으로 목소리로 전달되지 않는 그 모든 감정들이 아이들의 어쩔 줄 모르는 발로 드러난다. 그리고 결국 쇼야와 쇼코가 진심으로 소통하게 되는 장면에 이르면 둘은 주저 앉아 낮은 위치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늘 감정을 숨기지 못했던 다리가 있던 위치에서 이제 제대로 눈을 마주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출처 : 다음 영화


<목소리의 형태>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서툴다. 자꾸 오해한다. 용기내어 뱉어낸 좋아한단 고백은 하필 하늘에 떠오른 달로 오해되고, 니시미야의 연하 애인인 줄 알았던 유즈루는 알고보니 여동생이다. 뻔히 명확한 진실들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제대로 듣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다. 소통이란 이다지도 어렵다.


X는 끝이다. 엑스표가 그어지는 순간 살아내는 시간과, 마주하는 얼굴과 단절된다. 아이들에겐 해내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 그것은 답답하고 화가 나고 불편한 이야기지만 해야만 한다. 바뀌겠다 결심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고개를 들고자 한다. 그 여린 마음을 다하여 전력으로 애쓰는 그들의 모습이 결국 어떤 형태가 되어 서로에게, 그리고 관객인 나에게 다가온다.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형태가 되어 닿는다는 것은 이렇게나 엄청난 일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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