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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May 17. 2017

이 호러의, 코미디

겟 아웃 Get Out(2017)

신예 감독이 주목받기에 공포만한 장르가 없다. 공포 장르는 아이디어만 훌륭하면 배우의 이름값을 빌리지 않고 상대적 저예산으로도 관객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포는 마니아층이 확고하고, 시즌 특수를 누리는 장르이기도 하기에 상업영화 감독으로 발돋움하기에 이보다 최적의 데뷔가 없다.


대중영화의 기본은 알프레도 히치콕이 그랬듯 결국 '서스펜스'다. 공포∙스릴러 장르에서 성취를 이뤄낸 감독은 곧 서스펜스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이고, 대중상업영화를 만들 기본 자질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현재 잘 알려진 감독들 중 공포 영화로 데뷔한 케이스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샘 레이미, 데이빗 핀처, 피터 잭슨, 제임스 카메론 등의 쟁쟁한 감독들이 모두 초창기 공포 영화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연히 졸작이 많은 장르이기도 하다. 산발적인 아이디어만 가지고 신이 나 덤벼든 신예 감독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뿌린 미끼를 제대로 다 거두지도 못한 채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영화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책임감이 없다. 내가 공포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공포 영화들이 있다. <케빈 인 더 우즈>나 <드래그 미 투 헬>은 시원하게 끝까지 치달을 줄 안다. 이런 류의 영화라면 기꺼이 보아 줄 용의가 있다.





출처 : 다음 영화


역시나 신예 감독의 데뷔작인, <겟 아웃 Get Out(2017)>은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평단과 관객을 모두 사로잡았다'는 이 영화는 실제로 제작비 대비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제작비 자체가 할리웃 블록버스터 대비 훨씬 적은 편이기도 하다.) 공포 영화를 볼 때 스포일러는 금물. 대체 어떤 영화일지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다.


<겟 아웃>은 한 남자가 전화 통화를 하다 납치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자가 누구고, 납치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타이틀이 뜨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은 '크리스(다니엘 칼루야)'라는 흑인 남자다. 당차고 사랑스러운 백인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암스)'와 연애 중이다. 두 사람은 로즈네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그녀의 고향집으로 떠난다. 크리스는 사실 좀 걱정이다. 아직 남자친구가 흑인이란 것을 로즈네 가족들이 모른다는 게 찜찜하다. 보수적인 어른들이라면 기함하고 싫어하실 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즈는 '우리 부모님은 그런 분들이 아니야'라며 안심시킨다. 당당하고 여유로운 로즈 덕에 크리스도 힘을 얻는다.


가는 길에 약간의 사고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무사히 가족들과 만나게 된다. 호방한 인상의 아버지 '딘'과 자상해 보이는 어머니 '미시'가 다정하게 딸 커플을 맞이한다. 거리낌없이 환대하는 부모님에 안심하고 싶지만 어쩐지 좀 미묘하다. 흑인 정원사와 가정부를 두고 있는 백인 중산층 가정. 크리스 입장에선 여전히 불편한 게 사실이다.


그날 밤, 잠시 바람을 쐬러 나섰던 크리스는 정신의학자인 로즈의 어머니 미시와 마주친다. 다정한 듯한 대화지만 자꾸만 드는 불쾌감과 불편함.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크리스는 자신이 미시의 최면에 걸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족들의 미묘한 태도, 가정부와 정원사에게서 느껴지는 설명하기 힘든 부자연스러움, 최면에 걸린 밤...


대체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겟 아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탱되는 영화다. 도시 외곽의 한적한 환경, 가까운 이웃 하나 없이 고립된 저택, 다정함을 가장한 사람들. 이 낯설고 갇힌 환경에 놓인 우리에게 영리한 감독은 적절하게 떡밥을 던질 줄 안다. 차근 차근 깔려진 복선을 딛고 나아가다 보면 관객인 우리도 함께 주인공 크리스가 느끼는 이상한 기운을 체험하게 된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전반부를 이끌어가는 긴장감이다.


<겟 아웃>의 또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인종차별 이슈를 공포 영화의 틀 속에 결합시켰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괴생명체나 연쇄 살인마같은 특정 존재가 아니다. '아미타지 일가'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한 가족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위한 것이다. 이들 고객은 장수와 영생이라는 가치를 위해 건강한 육체를 지닌 흑인들을 이용하고자 한다. 즉 아미타지 일가로 상정된 공포의 대상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종 착취를 당연시하는 상류층 백인 집단 전체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다음 영화


이런 저런 이유들을 떠나 나를 가장 즐겁게 한 것은 이 호러스릴러 영화가 구사하는 코미디다.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감금 장면을 떠올려보자. 쓰러졌던 주인공이 정신을 차리고 단단하게 결박된 손발을 본다. 이제 무시무시한 킬러가 어두컴컴한 밀실에 등장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궁금하겠지" 물어야 할 차례일 것 같다. 그런데 <겟 아웃>은 다르다. 그의 앞엔 작은 구형 티비 하나가 놓여 있다. 지직 거리는 화면으로 보이는 것은 8-90년대에 찍었나 싶은 촌스러운 영상이다. 이 영상이 음침하고 으스스한 킬러의 자리를 대신한다. 우리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다 너희 흑인들의 건강한 몸이 필요해서야, 라는 어처구니 없는 설명이 끝난 후 나타난 화면은 찻잔과 티스푼. 티스푼을 세 번 두드리니 잔뜩 열이 올랐던 주인공은 또다시 꼴깍 최면에 빠져들고 만다.


상황만 보자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실제로 어처구니가 없어 웃기다. 그런데 영화에 몰입해 있는 우리는 그 어처구니 없는 와중에도 긴장이 된다. 앞서 잘 깔아놓은 복선 덕에 찻잔 앞에 무기력한 주인공을 납득해 버렸기 때문이다.


결말부도 마찬가지다. 혈투 끝에 탈출에 성공한 크리스는 때마침 그를 찾으러 온 로드와 재회한다. 로드는 영화에 첫 등장하던 순간부터 "백인 여자 친구 집에는 가는 게 아니야"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장했던 친구다. 어떻게 알고 왔냐는 크리스의 물음에 로드의 대답이 압권이다.


I'm TS, mother fxxking A.
나 교통안전과야 인마. 우리가 하는 일이 다 이런거라고.


코미디다. 그러나 마냥 헛소리가 아니다. 로드는 이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가장 정확하게 직관하고 있었던 친구 아닌가. 그러니 피 흘리는 친구를 옆에 태우고 로드가 하는 이 말은 마냥 실없는 헛소리로 공허하지 않다. 충분히 할 수 있을 법한 대사인 것 같다. 이상하게, 납득하고 마는 나를 발견한다.





<겟 아웃>의 코미디는 어설프게 공포에 얹혀가지 않는다. 제대로 영화에 얽혀 들어 스릴러의 긴장감과 함께 가는 데 성공한다. 이런 코미디, 아니 공포영화는 흔하지 않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극장을 한 번 찾아볼 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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