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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May 25. 2017

Why So Serious?

레고 배트맨 무비 The Lego Batman Movie(2017)

이젠 하다하다 레고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네. 영화관에 비치된 <레고 무비> 팜플렛을 슬쩍 들춰보곤 그렇게 생각했다. CG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죽은 사람도 되살려내는 시대에 네모난 조각으로 이뤄진 세상이 흥미로울리 있나.


근데 어째 들려오는 평이 좋더라. 게다가 목소리 출연진들도 대단하다. 크리스 프랫, 리암 니슨, 모건 프리먼, 엘리자베스 뱅크스, 윌 페렐... 아니, 이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토이스토리>도 아닌 장난감 영화에.


정말 궁금해서, 봤다. 굳이 이런 영화까지 봐야할까 하는 마음을 한켠에 두고. 그리고 반성했다. 나는 그 이후 한동안 Everything is awesome을 머릿 속에 자동 재생으로 플레이하고 다녔다. 아침에 일어나 멍하니, 자기 전에 뜬금없이, 이 노래가 울려퍼졌고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tTqXEQ2l-Y

The Lego Movie OST- Everything is Awesome(Tegan and Sara feat. The Lonely Island)


유치할거라 생각했던 <레고 무비>는 실제로 유치했다. 그런데 이 유치함은 나쁘지 않았다. 허를 찌르는 명쾌함과 단순함이다. 곳곳에 아이디어가 번뜩하고 패러디와 오마주가 넘쳐난다. 애초에 레고를 소재로 했으니 영화는 마음껏 유치할 수 있는 자유를  즐긴다. '뭘 이런 영화까지 만드나, 할리웃도 갈 데 까지 갔네'하며 심드렁했던 태도는 어느새 '역시 할리웃, 워너가 이런 애니를 만들다니'라는 감탄으로 바뀌어 있었다.


당연히 후속작을 기다리는 마음은 달라질 수 밖에. 극장에서 개봉예정작 팜플렛 중 <레고 배트맨 무비>가 눈에 들어오자 마자 얼른 집어들었다.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으와, 드디어! 개봉 언제냐!


출처 : 다음 영화


정확히는 시리즈의 후속편이 아닌 스핀오프다. <레고 무비>의 정식 후속편 <레고 무비 2>는 2019년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레고 배트맨 무비> 역시 재밌다. 전작만큼 뻔뻔하게 유치하고 유머러스하다. 물론 전작을 처음 봤을 때만큼의 임팩트는 없다. 그러나 신선도는 떨어졌을 지언정 동력은 여전하다. 충분히 즐겁다.


시작부터 어둠의 기사 배트맨이 또 한건 한다. 상대는 당연히 오랜 숙적 조커다. 고담시에 폭탄을 설치한 조커는 "너의 최대의 적을 잡는 것과 고담시를 구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배트맨을 도발한다. 그러나 씨알도 안먹힌다. 배트맨은 "너는 내 최대의 적이 아닌데?"라며 쿨하게 조커를 놓아주고 폭탄을 하러 간다. 조커는 진심으로 상처 받는다. 배트맨과 자신 사이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조커는 복수를 다짐한다.


출처 : 다음 영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세로 살아가는 배트맨에겐 누구도 중요치 않다. 적은 때려잡으면 그만, 고담 시민들은 도와주고 구해줘야 할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떤 관계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 배트맨은 일도 당연히 혼자 한다. 도와준답시고  오는 사람들은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그런 배트맨에 고담시의 새 청장으로 부임한 바바라(고든의 딸)와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라며 배트맨을 동경하던 소년 딕 그레이슨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바바라는 더 이상 솔로 플레이는 안된다며 협력을 요청하고 딕은 자신도 모르는 새 양아들이 되어 귀찮게 쫓아다닌다.


그런데 어쩐지, 나쁘지 않다. 의외로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여전히 저 잘난 맛에 사는 배트맨이지만 차츰 이들에게 정이 든다. '함께'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한편,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배트맨에 삐친 조커는 복수를 결심하고 악당 무리들과 다시 고담을 습격할 계획을 세운다





DC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구현해 온 배트맨은 그 어떤 히어로보다 진중하고 고독한 캐릭터였다. 배트맨은 고뇌하고 숨고 사라진다. 우리가 지켜봐 온 배트맨은 늘 그래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기존의 캐릭터성을 재료삼아 배트맨을 신나게 가지고 논다. 여전히 배트맨은 백만장자고,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히어로지만 무게감을 한껏 덜어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오명도 뒤집어쓰던 '다크 나이트'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재치있는 캐릭터 놀음은 늘 진지하게 배트맨을 바라봐야 했던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출처 : 다음 영화


장난감 세상의 재미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융합된다는 것이다. 조커가 모아온 빌런팀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반지의 제왕>의 사우론,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뿐만 아니라 킹콩, 크라켄, 심지어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까지 등장한다. 한가닥 하는 이들을 그 어떤 영화에서 한번에 만나 볼 수 있겠나. 실사로는 절대 불가능할 그 일을, 요 귀여운 레고 영화가 해낸다. 이렇게 기특할수가!


<레고 무비>가 그랬듯 영미 대중문화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면 훨씬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일단 배트맨 실사 영화 시리즈를 스스로 패러디한다. 영화의 문을 여는 하이재킹 씬부터가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떠올리게 한다. 알아야 보이는 이 수많은 패러디들은 그 자체로 팬들에게 흥미로운 선물이다.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를 자신의 곡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인트로부터 시작해 <세렌디피티 Serendipity>나 <제리 맥과이어 Jerry Maguire> 등의 영화도 언급된다. <세렌디피티>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결국 사랑을 쟁취하는 남녀의 이야기고, 제리 맥과이어는 "You complete me"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로맨스 영화다. 세상에 나만 중요한 남자 배트맨이 사실은 내심 관계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들이다.(조커가 낄낄대며 비웃는 대목이기도 하다.)


출처 : 다음 영화




<레고 무비> 시리즈는 마블 세계관에 갑자기 등장한 우주 악동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비슷하다. 진지하진 않지만 의외로 명확한 주제 의식이 있고 매력적으로 캐릭터를 소개하고 조형할 줄 안다. 정신없고 산만한 와중에 스토리가 진행되는 걸 보면 대단할 건 없어도 내러티브가 엉성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유치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유희정신이 닮았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먹어가며 성숙해야 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유치할래. 너도 사실은 재밌을걸?'이라고 말하는 이 영화를 끝내 사랑하게 되고 마는 나는, 아직 철들고 싶지 않은가보다. 그러니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에 조커의 말을 빌려본다.


Why so serious?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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