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t Theat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롬 May 29. 2017

그러니 이제 그만 말을 말아라

캐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2017)

할리웃에 신파 바람이라도 부나보다. 분노의 질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이어 <캐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까지, 희생하는 아버님 배틀이라도 뜰 것 같다. 아, 가오갤2의 욘두를 다른 두 작품과 동일선상에 올리는 건 미안하겠다. 욘두의 이야기는 적어도 전체 이야기의 주제의식과 부합했고 영화는 이 캐릭터의 퇴장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출처 : 다음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처음 봤을 때, 그러니까 캡틴 잭 스패로우를 처음 영접했을 때 우리는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대항해시대 드넓게 펼쳐진 미개척 바다와 같은 존재였다. 잠잠하다가도 언제 태풍이 불어 온통 뒤집어 엎을 지 알 수 없는 변덕쟁이. 늘 럼주를 손에 들고 비틀비틀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며 다니는데도 어쩐지 이 남자와는 같은 편이고 싶었다. 게다가 배우가 조니 뎁. 이 이상가는 찰떡 캐스팅이 어디있나. 예측 불가 캡틴이 촐랑촐랑 돌아다니는 화면과 함께 모험의 시대를 알리는 그 음악, He's a pirate이 울려퍼지면 우리는 해적 놀이하는 어린 아이라도 된 것 마냥 자유를 느꼈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모두의 마음 속에 고이 접어 잠재워 둔 모험 욕구를 활활 불태우는 영화였다.


그랬었다. 그러니까, 이건 다 과거형이다.


첫 편이 나온게 어언 십여 년 전이다. 그 사이 시리즈는 동력을 잃었고 우리는 캡틴 잭을 잊어갔다. 누구의 마음 속에나 잭 스패로우 한 명 쯤은 있는거잖아, 라며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자존심에 상처만 냈다. 그러나 이대로 정말 캡틴 잭을 떠나보내야 한단 말인가. 디즈니는 잭을 이렇게 보낼 수가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또다시 잭을 소생시키려는 시도다.


그러니 이 영화는 더더욱 마음이 아프다. 내 어린 시절 우상과 같던 캡틴 잭 스패로우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거냔 말이다. 근래 이렇게 속상해 하며 본 영화가 없다.


출처 : 다음 영화




우선 윌 터너(올란도 블룸)와 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리) 커플의 자리를 물려받는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한다. 남자는 두 사람 사이의 아들 헨리 터너(브렌튼 스웨이츠)다. 훤칠하게 잘 생긴 게 올란도 블룸 못지않다. 미스 스완만큼이나 대담하고 똑똑한 카리나 스미스(카야 스코델라리오) 역시 키이라 나이틀리만큼 매력적인 영국 억양을 구사한다. 그렇다. 이 두 사람은 윌과 엘리자베스를 그대로 치환해 놓은 캐릭터일 뿐이다.


출처 : 다음 영화


새로 등장한 악당은 살리자르(하비에르 바르뎀)다.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007 스카이폴> 등에서 악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배우 아닌가. 그런 배우가 이 영화에선 물 속에 부유하는 것 같은 머리칼 외에 인상을 남기지 못하다니 이게 웬 일인가. 그는 잭에게 골탕먹어 복수심에 불타는, 지금까지 보아 온 수많은 해적들과 다를 바가 없다. 바다의 학살자라는데 대체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는걸까. 그냥 세다니 센가보다 하는 수 밖에.


그리고 여기, 문제적 아버님이 등판하신다. 헥터 바르보사(제프리 러쉬). 시리즈 내내 잭과 앙숙 관계를 형성하며 때로는 대치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함께 해 온 캐릭터다. 이번 영화는 욕심많고 저 밖에 모르는 바르보사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달라진다는 걸 보여준다. 절체 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딸을 위해 몸을 던지는 바르보사의 얼굴이 스크린을 메운다. 아, 휴머니즘이라는 게 폭발한다. 시리즈 내내 쌓아온 캐릭터를 잃고 단 한 장면의 신파를 얻었다. 이득인가?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아닌 것 같은데 제작진에겐 그랬나보다.


출처 : 다음 영화


사실 이 영화 제작진과 내 의견이 다른 부분은 하나 둘이 아니라 놀랍지도 않다. 이 영화 속 캐릭터는 껍데기밖에 없다. 매력적일 수 있는 설정을 부여만 해두고 제대로 채워내질 못했다. 심지어 잭 스패로우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구축해 온 스스로의 캐릭터를 소비만 한다. 주인공 격인 잭이 대체 이 영화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나. 그저 다른 인물들을 만나게 해주는 구심점 정도일까. 아, 물론 개그도 친다. 이 독보적인 캐릭터를 개그로만 소비하다니 대단한 배포다.


최악은 엔딩 장면이다. 언덕 위를 달려 올라가는 재회라니. 이토록 안일한 클리셰를 21세기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보게 될 줄이야. 올란도 블룸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반가운 깜짝 출연에도 전혀 벅차지 않는다. 두 사람의 재회를 지켜보며 헨리와 카리나 커플은 손을 마주잡고, 잭 스패로우는 블랙펄에서 망원경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며 내심 흐뭇해한다. 이렇게 완벽한 식상함은 오랜만이서 외려 신선하기까지 하다. 후속작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은 화룡점정이다. 정말 다음 편까지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캐리비안의 해적 : 죽은 자는 말이 없다>를 보고 나오는 길은 울적했다. 마음 속에 담아 둔 소중한 첫사랑을 세월의 흐름 속에 망가진 얼굴로 재회할 때의 슬픔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의 쿨했던 해적이 싸구려 신파로 전락했다. 직장인의 소중한 주말 시간을 빼앗았으니 괘씸하기까지 하다. 속상하다. 이제 웅장한 음악으로 거짓 감흥을 자아내는 수작에 더이상 속아주지 않을테다, 부질없는 다짐을 해보지만 잭 스패로우의 이름에 또다시 홀려버릴까 벌써부터 두렵다.


출처 : 다음 영화


매거진의 이전글 이 영화에 바라는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