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김신회

by 프롬

짱구는 못말려를 좋아한다. 일찍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투니버스에서 하는 짱구를 볼 수 있는 날이 간혹 있는데 그럴 때는 저녁 먹으면서 짱구를 보곤 한다. 딱히 집중하고 보는 건 아니다.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다. 짧은 에피소드 중심이라 놓치면 놓치는대로 내버려 둔다. 익숙한 성우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씻고 청소하고 밥도 먹는다. 일종의 백색 소음같다. 그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면 그냥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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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끔 짜증날 때가 있다. 짱구 녀석이 철수를 놀릴 때다. 자유분방한 사고뭉치 짱구와 똑똑한 모범생 철수는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인생에 심각할 것 없는 짱구는 고지식한 철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짱구는 철수를 자주 놀려 먹는다.


실제로 철수는 좀 답답한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짱구와 철수를 비롯한 유치원 친구들은 어느 날 떡잎마을 방범대를 조직하기로 하고 떼 지어 마을을 순찰하고 다닌다.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마주 친 선생님 눈엔 이 모습이 너무 귀엽고 기특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준다. 짱구, 유리, 훈이, 맹구는 즐거워하며 그 자리에서 아이스크림을 까먹는데 어쩐 일인지 철수만 안절부절이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방범대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철수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얼른 도착하지 않으면 아까운 아이스크림을 못먹을테다. 그러나 결국 아이스크림은 녹아내리고 만다.


이런 철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으이구, 헛똑똑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짱구 눈에 얼마나 재밌는 놀림거리일까. 그런데 나는 그렇게 철수가 놀림받을 때면 속이 상한다. 왜 그런지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짱구는 못말려를 볼 때마다 유독 철수에 이입하곤 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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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수와 닮은 점이 많다. 모범생 콤플렉스와 허세가 있다는 게 비슷하고 감춰진 덕후 기질이 있는 점도 닮았다. 나 역시 철수처럼 이상한 데서 고지식하게 굴고, 얕은 지식으로 아는 척 하는 걸 즐기며, 하나에 꽂히면 정신없이 빠져 허우적댄다. 나도 철수가 답답하다는 걸 안다. 철수도 자신이 쓸 데 없이 미련하게 군다는 걸 알 것이다. 똑똑한 애니까. 그런데도 어쩔수가 없다. 그런 성격으로 나고 자라 버렸는 걸.


짱구는 앞으로도 그런 철수를 이해하지 못할 테다. 그러니 그렇게 놀리는 거겠지. 미련한 줄 알면서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걸 짱구같이 유연하고 세상 심각할 것 없는 사람이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얄밉다. 나도 매사 속 편하게 살고 싶지만 안되는 걸 어떡해. 안그래도 서러운데 왜 자꾸 놀려. 그러니 철수 좀 그만 놀려라 짱구 놈아. 그렇게 종종 짱구를 원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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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짱구는 못말려가 그랬던 것처럼 김신회 작가에겐 보노보노가 있었나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작가가 보노보노 만화책을 보며 느낀 점을 자신의 인생과 접합하여 쓴 에세이집이다. 소심한 보노보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작가는 일, 꿈, 관계, 가족 등을 주제로 보노보노에게서 얻은 깨달음과 위로를 공유한다.


서점에서 처음 표지를 보고서는 말랑말랑해보이는 책이네 했었다. 실제로 보노보노만큼 보들보들한 글들이 모여 있지만 의외로 몇 군데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 통찰이 보노보노 만화책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술술 읽어나가는 와중에 보노보노에서 등장한다는 대사들이 너무 좋아 몇 구절은 베껴 써놓기까지 했다. 보노보노 이거,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었네. 나보다 어른스러운가봐.


그 중 철수처럼 고지식하고 보노보노처럼 걱정 많은 내게 위로가 된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보노보노, 살아 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어.
살아 있는 한 무조건 곤란해.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어.
그리고 곤란한 일은 결국 끝나게 돼 있어.
어때?
이제 좀 안심하고 곤란해 할 수 있겠지?

- 야옹이 형


이런 류의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소설이나 자기계발서, 인문교양서와는 다르다. 나와 같은 인간이 있다는 것, 그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안심하는 거다. 고민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전해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실 아닌 쪽이 더 좋기도 하다. 이 사람도 해결 못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외려 더 위로가 된다. 그래, 다들 해결 못 할 고민을 고민하며 살아가는구나. 보노보노의 한 구절에 위로받으며, 짱구의 실없는 장난에 실실대며. 그러니 좀 안심하고 곤란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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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보니 보노보노 캐릭터가 유달리 사랑스럽다.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했더니 보노보노가 새겨진 컵을 하나 사은품으로 줬는데 이 컵에 물을 따라 마실 때마다 조금 위안받는 기분이 들 것 같다. 너도 나만큼 걱정이 많다며? 꿀꺽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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