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음악을 만나다

싱 스트리트 Sing Street(2016)

by 프롬

못생긴 손이 늘 콤플렉스였다. 짧고 통통한 손가락, 고르지도 반질반질하지도 않은 손톱. 이런 손엔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잔뜩 박힌 웨딩링을 끼워도 예쁘지 않을거야.


출처 : 네이버 영화


악기와는 연이 없었다. 배워본 건 아주 어렸을 적 피아노가 전부였는데 수업가기를 정말 싫어했다. 선생님이 바로 아랫집에 사셨기 때문이다. 곡을 연습한 만큼 악보책에 바를 정(正)자로 표시를 해가야 했는데 연습하는 소리가 그대로 들릴테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좀 뻥을 친대도 모르셨을거다. 그러나 어린 마음엔 여덟 번 친걸 열 번으로 부풀리면 귀신같이 알아채실 것 같았다. 잔뜩 심통이 난 채로 뚱땅뚱땅 두드리곤 했던 그 피아노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지금에 와선 좀 더 잘 배워놓을 걸, 후회되지만 되돌아간대도 마찬가지겠지.


또다시 악기를 배울 기회가 생긴다면 무조건 기타라고 생각했다. 기타는 그냥 멋있었다. 현악기가 원래 좀 잘생겼지 않은가. 우아하게 흘러가는 곡선과 팽팽하게 당겨진 직선, 기타의 그 아름다운 모양새는 나를 압도했다. 그러나 정작 배울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 붙은 기타 강습 전단지를 보며 한참을 고민했던 여름의 어느 오후가 잊혀지지 않는다.


몇 년만에야 용기를 냈고 싸구려 기타 하나를 구입했다. 16만원. 조악한 합판으로 이루어진, 칠 때마다 손 끝이 저릿저릿 아픈 기타였다. 그런데도 좋았다. 내게는 세상 하나 뿐인 '내 악기'였다. C코드, G코드, A코드... 기본 코드에도 버벅대고 손가락은 도무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손가락 끝이 발개지고 곧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했다. 원래 못생겼던 손이었다. 이유없이 못생겼던 손이 이유있이 못생기게 되는 게 맘에 들었다.


가장 좋은 건 기타가 끌어안고 연주하는 악기라는 점이었다. 침대에 누워 품 안 가득 기타를 감싸 안고 줄을 드르르르 쓸어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포근해졌다. 체온이 느껴졌다. 주위에 '반려 기타'라 얘기하곤 했는데 마냥 농은 아니었다.






<싱 스트리트 Sing Street(2016)>는 음악을 통해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다. 수줍음 많고 소심한 소년 코너(페리다 월시-필로)는 기타가 있어 친구를 사귈 수 있었고 음악이 있어 소녀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젖살도 미처 다 빠지지 않은, 아직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을 가진 이 소년이 학교를 뒤엎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힘도 결국 음악이다.


198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는 80년대 히트곡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듀란 듀란 Duran Duran의 <Rio>, 더 잼 The Jam의 <Town Called Malice>, 더 큐어 The Cure의 <Inbetween Days>, M의 <Pop Muzik>...


이 중 소년이 만난 음악은 '락'이다. 젊음을 발산하는 음악. 어른들은 재즈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무렵 등장한 로큰롤을 잠시 스쳐갈 유행으로 여겼다. 실제로 척 베리, 리틀 리처드,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스타를 탄생시키며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로큰롤은 50년대 말에 접어들며 기세가 꺾이고 만다. 그러나 한 번 표출의 쾌감을 맛 본 젊은 에너지는 그렇게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60년대 비틀스, 애니멀스, 롤링 스톤스가 일으킨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전세계를 로큰롤 에너지로 폭발시켰다. 그 후 락의 역사는 수많은 영광과 굴곡을 겪어내야 했지만 그 음악이 젊은 층에게 상징하는 바는 여전하다.


자유 그리고 반항.




출처 : 네이버 영화


신기한 일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 몇몇 악기와 목소리로 이루어진 그 음악을 듣는 것 만으로, 사랑하는 것만으로 '나'라는 사람이 달라지는 느낌. 손에 기타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 이 음악이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 나는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호감가는 소녀에게 말을 걸 수 있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수 있고, 나의 안전한 울타리를 뛰어 넘어설 수 있게 된다. 락의 형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지만 이 음악은 늘 그런 역할을 해왔다. 50년대 로큰롤에 열광하던 소녀들에게도, 60년대 러브 앤 피스를 외치던 히피들에게도, 80년대 더블린을 살아가는 영화 속 소년에게도.


2017년 여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그럴거라 믿고 싶다. 아직 고작 1년, 기초 주법도 다 떼지 못했다. 최근엔 쓰리핑거 기본 연습곡을 배우고 있는데, 아. 정말 너무 어렵다. 이 둔한 손가락은 도무지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위치를 차지하는 법을 모른다. 뻣뻣하게 힘을 주고 연습하다보니 몇 마디 치지도 않았는데 온 몸이 결려온다. 그럴 때면 그대로 침대에 드러 눕는다.


기타를 끌어안고 한 줄 한 줄 툭, 툭, 툭.

미 라 레 솔 시 미.

서서히 잦아 들어가는 줄의 떨림을 느껴본다.

살아 있구나, 너.

나를 느끼고 진동하는 그 에너지.

아마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fuWTcmjnEGY

싱스트리트 OST 中 Drive It Like You Stol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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