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로 관찰하는 현대 뱀파이어의 일상
친구가 교생 실습 중이다. 걱정이 태산이더니 잘해내고 있는 것 같다. "넌 뭘 가르치는데?"했더니 중학교 국어 교과서를 보여줬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수업을 맡았단다. "한번 읽어볼래?"하기에 요즘 교과서는 얼마나 달라졌나 궁금해 훑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니, 이 소설이 이렇게 절절한 연애 소설이었단 말인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왜 몰랐지.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다섯 살 옥희의 시점으로 본 엄마와 사랑 손님 관찰기다. 옥희는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고 쑥스러워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화가 났다고 오해한다. 옥희의 시선 바깥에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지만 아이는 알지 못한다. 이런 걸 우린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 배웠었다.
생각해보면 관찰만큼 주관적인 게 없다. 신기한건 실험과 관찰을 토대로 세워진 학문, 과학을 우리는 객관적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물론 과학이 귀납적 방법론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 교양서 몇 권을 읽다보면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실험을 종종 접하게 된다. 원자 세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주장들이 제기되기 시작하자 그에 대한 반발로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고양이를 밀폐된 상자에 가두고 방사선 핵이 들어있는 기계와 독가스를 함께 넣는다. 이때 핵이 한 시간 안에 붕괴할 확률은 50%인데, 만약 핵이 붕괴하여 방사선을 방출하면 독가스가 흘러나오는 시스템이다. 즉 방사선이 방출되면 고양이는 죽는다.
그렇다면 이 상자 안 고양이는 어떤 상태일까? 양자역학의 답은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다'이다. 고양이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가 살아있는 상태의 파동함수와 죽어 있는 상태의 파동함수 두 개의 중첩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고양이의 생사는 뚜껑을 열어 직접 확인하는 순간, 즉 '관찰'하는 순간 확정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살아있는데 죽어있고 죽어있는데 살아있는 상태? 나도 과학엔 문외한인지라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다행인 건 아인슈타인도 그랬다는거다. 이게 웬 개소리냐.
그런데 이게 사실이다. 실제로 소립자가 관찰 여부에 따라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는 게 확인되기도 했다. 이미 현대 물리학은 나 같은 범인이 이해할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니 그냥 그러려니 할 수 밖에. 어쨌든 그 견고하게 쌓아올려진 과학적 진리마저 '관찰'로 좌지우지되는 세계라는 게 핵심이다.
영화는 그 자체로 관찰의 예술이다.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시선은 연출자가 설정하고 카메라로 표현된다. 네모난 화면이 눈을 대신한다. 연출자는 우리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도록,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도록, 가까이 얼굴을 마주보도록, 멀리 숨죽여 지켜보도록 유도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감독의 눈을 이식받은 옥희와 같다.
영화가 우리에게 베풀 수 있는 자비로운 혜택 중 하나는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감각할 수 없는 세상을 관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영화,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 What do we do in the shadows 2014>처럼.
제목부터 길고 특이한 이 영화는 모큐멘터리, 즉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뉴질랜드의 한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뱀파이어들을 찾아가 취재한다는 설정이다. 네 명의 뱀파이어들은 한바탕의 요란 법석을 겪으며 싸우고 친해지고 화해한다. 이게 내용의 전부다. 이 영화는 수백살 먹은 뱀파이어들이 현대 도시에서 어떻게, 뭐하면서 살고있나, 그걸 관찰하는 재미로 보는 영화다.
우리가 뱀파이어에 대해 알고 있는 여러 특성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햇빛을 보면 활활 타 재가 되므로 저녁에 일어나 밤의 도시를 활보한다.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십자가를 무서워 한다. 허락해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공간에 들어갈 수 없다. 무엇보다 흡혈을 해야 하며 별다른 사고가 없는 한 영생을 누린다. 이런 조건으로 살아가는 독특한 존재들의 일상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영화는 이 설정에 B급 코미디를 듬뿍 끼얹어 지켜보는 재미를 준다.
사실 이 영화에서 뱀파이어보다 더 흥미로운 건 뱀파이어의 주변인들이다. 재키는 영생을 얻고자 뱀파이어 디콘의 하인이 되어 옛 남자친구를 제물로 바칠 정도로 온 정성을 다한다. 인간의 피로 온통 더러워진 옷가지와 집 안을 청소하는 건 모두 그녀의 몫이다. 제물로 바쳐졌다 어찌어찌 뱀파이어로 재탄생한 닉은 뱀파이어가 되어서도 절친한 스튜와 멀어지고 싶지 않다. 닉을 따라 뱀파이어 소굴에 드나들던 스튜 역시 다른 뱀파이어들과 친구가 된다. 늑대인간, 마녀, 좀비 등 온갖 몬스터가 등장하는 파티도 열린다.
카메라는 자주 덜컹거리고 (가짜)제작진은 가끔 극 안으로 말려든다. 이 뱀파이어 소동을 지켜보는 우리도 함께 덜컹대고 극 중을 배회한다. 즐거운 경험이다. 우리는 카메라맨이 되어 뱀파이어들과 밤 거리를 활보하고 몬스터들의 파티에 참석한다. 그들의 세상을 훔쳐보며 허무맹랑한 소동극을 잠시 즐기다 나와보니, 몇백년 씩 산 뱀파이어들도 별거 없더라. 상자를 열어보기 전엔 무시무시하고 음침할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덤 앤 더머가 따로 없다. 역시, 관찰하면 세상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