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 예술가의 술 사용법 / 조승원
잊을 만 하면 연예뉴스 탑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이 있으니 바로 술, 마약, 막장 애정사다. 어차피 남의 일이라 가쉽으로 읽고 가볍게 넘기지만 궁금하긴 하다. 돈도 명예도 인기도 다 가졌으면서 대체 왜. 빡 돌으면 다 때려치우고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으로 즐겁게 놀고 먹으며 살 수 있을텐데. 굳이 그 많은 돈을 술이며 마약같은 데 꼴아 박으며 몸과 마음을 축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럴거면 그 돈, 그 재능 나나 주지 말이다.
사실 이러한 예술가들의 기행에는 참으로 유구한 역사가 있다. 세상에 수만 가지 흥미로운 놀이들이 널리고 깔려 있어도 술과 마약을 이길 수 없는 걸 보면 이들이 가진 뭔가 특별한 힘이 있긴 한가보다. 짧은 시간에 가장 빨리 제정신을 벗어날 수 있는 효율적인 일탈이어서일까.
비틀스에 처음 관심 가지기 시작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이 댄디한 영국 신사들이 실상은 날라리(!)였단 거다. 게다가 매우 정석의 날라리라 술, 마약, 담배에 여성 편력까지 웬만한 조건들은 골고루 다 갖추고 있었다. 이들에게 대마를 처음 권해준 것은 얼마 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간을 놀라게 했던 바로 그 밥 딜런 되시겠다. 너도 스타, 나도 스타,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하여 주선된 자리에서 밥 딜런이 비틀스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바로 대마초였다. 신세계를 맛 본 그날 폴 매카트니는 흥분하여 매니저에게 말했다 한다. 세상의 진리를 깨우쳤으니 당장 받아 적으라고.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본 메모에는 뭔 개소리가 적혀 있었단다.
폴 매카트니는 비틀스 멤버 중 가장 대마초에 빠져든 사람이었다. 반면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은 이후 더 강력한 세계에 눈을 뜨는데, 바로 환각류 마약 LSD다. 치과 의사의 소개로 어느 식사 자리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는데 이날의 경험은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이맘때는 급격하게 비틀스의 음악색이 변화하던 시기이기도 하여 자연히 그들의 음악에도 마약의 영향이 묻어난다. 사이키델릭한 색을 마구 뿜어대는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속칭 '페퍼상사'가 이때 탄생했다. 이 앨범에 실린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는 공개 직후부터 마약을 암시한다는 공격을 받았다. 곡의 몽롱한 분위기와 더불어 제목의 약자가 LSD라는 점까지 의심가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었다. 존 레논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루머를 일축했지만 믿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비틀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락스타, 예술가들이 술과 마약에 대한 찬가를 늘어놓는 것을 보고 있자면 대체 이들이 그 일탈을 통해 만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약은 불법이므로 이쪽에 대한 호기심은 고이 접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자. 그래도 하나는 남는다. 술. 요건 불법이 아니니 우리도 즐길 수 있다. 과연 이 예술가들은 무슨 술을 얼마나 마시고 어떤 세상을 본걸까. 그건 나도 만날 수 있는 세상인 걸까.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다람)>은 팝 스타와 술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책이다. 앞서 언급한 비틀스나 밥 딜런같은 전설적 뮤지션부터 현대 팝의 역사를 이끌고 있는 제이지와 레이디 가가까지, 이름높은 악동들이 줄줄이 등장하여 독자에게 술 잔을 들이민다. 그들이 사랑했다는 서던 컴포트, 잭 다니엘, 돔 페리뇽, 제임슨의 향기가 활자 속을 스쳐간다. 입담이 좋은 저자는 원래 재밌는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풀어낸다. 읽다보면 음악과 술, 이 환상의 조합에 자연히 설득되고 만다. 당장 나가서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들이 즐겼다는 기네스 맥주라도 한 캔 사와야 할 것 같다.
이 책엔 서문보다 앞서 쓰여진 문구가 한 줄 있다.
이 책을 故 신해철 씨에게 바칩니다.
그 연유는 뒷장에서 설명된다. 2004년 MBC 시사매거진 2580의 기자였던 저자는 '대마초는 마약이다?'라는 아이템을 준비하며 신해철에게 연락하게 된다. 탐탁치 않아하는 신해철의 작업실에 직접 찾아가 설득하려는데 웬걸, 설득은 커녕 두 남자가 붙어 앉아 동이 틀 때까지 팝 스타들과 술, 마약에 대한 잡담으로 킬킬댔다는 거다. 작업실을 나서는 저자에게 신해철이 그랬단다. 우리가 나눴던 이 이야기들, 책으로 한번 써보라고.
그 약속을 지키기까지 참 오래 걸려 버렸다. 어찌어찌 마음을 먹고 써보려 노력하던 차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며 기자 신분으로 한가롭게 이런 글이나 쓰고 있을 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손을 놓고 원고를 방치해 둔 지 6개월, 마왕 신해철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은 뒤늦게 저자가 지켜낸 약속의 증표다. 시종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것은 아마 이 책이 그 날 두 사람이 함께 나눴던 대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어서일 테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마주 앉을 수 없는 그리운 사람과 흥겹게 대화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가길 추천한다. 물론 음악과 함께 해야 한다. 이상한 해방감과 함께 왠지 조금, 목이 말라오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