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 이기주
흔치 않은 보라색이다. 원고지 모양의 네모 반듯한 칸 속에 제목만 간결하게 적어넣은 표지. 프린트된 글꼴일 뿐인데 소중한 사람에게 편지라도 쓰는 마냥 꾹꾹 정성들여 쓰여진 것 같은 이 책의 제목은 <언어의 온도>다.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불쑥불쑥 떠올라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이 있다. 학창시절 나는 꽤 시니컬한 학생이었다. 사실 지금도 한 까칠 하는 성격이니 그냥 타고나길 그런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음에도 기꺼이 다가와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러나 표현은 못했다. 사실 나도 그만큼 좋아했었는데.
그날 나와 친구는 급식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맥락의 대화가 흘러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가 그랬다. "어우 야,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신기할 정도로 애정 표현을 잘 하던 친구였다. 그에 대한 나의 반응도 늘 그랬듯 한결같았다. "웃기지 마. 좋아하긴 뭘 좋아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연히 기분은 좋았다. 여기까지라면 늘 그랬던 대화 패턴 그대로였다.
그런데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이상하게 그날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넌 아무나 다 좋아하잖아. 마음이 싸네.
'싸다'라는 말이 내 입에서 발음되어 나가는 순간 굳어지던 친구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스스로도 놀라 흠칫했다. 어, 이게 아닌데.
친구가 홱 돌아섰다. 겉으론 무뚝뚝하게 굴지만 의외로 소심한 나는 다행히 사과만큼은 빨랐다. "야, 그게 아니고, 그런 의미가 아니야. 그냥 너는 두루두루 다 친하게 지낸다고." 변명하듯 쏟아내니 착한 친구 녀석은 눈을 내리깔며 불퉁한 목소리로 "나 진짜 상처받았어"하더라. 나라면 대꾸도 안했을텐데 그래도 대꾸는 해주는구나 싶어 그런 거 아니라는 말만 자꾸 했다. 진심으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던 친구는 감사하게도 곧 마음을 풀어주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러나 친구의 용서가 전부는 아니었다. 상처받은 건 친구 뿐만이 아니었다. 여태 그 기억을 잊지 못하는 나도 마찬가지다. 내 입으로 뱉어낸 단어에 나는 스스로 상처받았다. 그런 말을 하다니. 심지어 나 좋다고 웃어주는 친구의 얼굴을 앞에 두고. 나 진짜 못돼먹은 애구나. 생각보다 나는 훨씬 못된 애였어. 내 자신이 정말 실망스러웠다.
<언어의 온도>에는 경북 예천에 있는 언총(言塚)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표지석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 '말 무덤'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부터 각성바지들이 모여 살던 마을로 사소한 말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문중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자 마을 어른들이 원인과 처방을 찾던 중 지나가던 과객이 예방책을 일러준대로 말무덤을 만든 후 마을이 평온해져 현재에 이르고 있음.
쓸데없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을 모아 말무덤에 묻었더니 평화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 <언어의 온도> 중 '말의 무덤, 언총'
이 구절을 읽으며 어찌나 찔리던지. 내 입에서 나와버리고 말았던 수많은 실언들이 떠오르며 절로 고개가 떨궈 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나의 쓰라린 말들을 묻느라 애써야 했을까.
<언어의 온도>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가거나, 책이나 영화 혹은 일생생활에서 경험한 말을 찬찬히 곱씹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길지 않은 글들이지만 어쩐지 책장이 급하게 넘겨지지 않는다. 작가가 고심하여 고르고 정제한 문장인 게 느껴져서다. 글 하나하나가 바르고 단정하다. 책의 내지엔 마치 잉크를 떨군 듯한 자국이 군데 군데 자리하고 있다. 일러두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창작자의 의도라고. 손에 묻어 나는 종이 냄새와 썩 잘 어울린다.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책을 들어 표지를 바라보니 보라색이 참 예쁘다. 빨강의 뜨거움과 파랑의 차가움이 적절히 조합된 색. 흔치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니 참 적절한 온도를 담은 색인 것 같다. 앞으로 이 색을 만날 때마다 '적절한 온도'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말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