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 이동진
어렸을 적엔 분명 책을 좋아했다. 다독까진 아니었지만 꾸준히 도서실이나 서점을 찾아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신문에 책 광고가 나오면 오려서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하릴없이 서점을 구경하다 맘에 드는 제목, 맘에 드는 표지의 책 몇 권을 집어들고 사달라 떼쓰기도 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책 읽겠다는 걸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으니 주기적으로 서점에 방문하여 몇 권씩 읽고 싶은 걸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 물론 읽는 분야는 한정돼 있었다. 대개 소설이었다. 내 학창 시절 즈음 유행하기 시작했던 칙릿(Chick-Lit)을 여러 권 사모으기도 했고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같은 일본 작가 작품들을 열심히 보기도 했다. 로알드 달이나 폴 오스터 같은 작가들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가장 열정적으로 본 장르는 판타지였다. 해리포터와 룬의 아이들 세계관에 빠져 허덕거렸다. 판타지 마니아는 한 반에도 대여섯명 이상은 늘 있는 집단이었다. 새 책이 출시되면 한 명씩 돌려보며 나름의 유대를 꽃 피웠다.
판타지 소설들은 으레 열 몇권이 시리즈로 줄줄이 나오기 마련이라 이 책들을 한 권 한 권 모아 책장에 주루룩 꽂아 놓으면 기분이 좋았다. 책이란 것은 읽는 맛도 중요하지만 그 물리적 형태가 제공하는 예술적 아름다움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 당연히 깨끗하게, 구겨진 자국 하나 없이 봐야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심지어 교과서도 깨끗하게 봤다. 공부한답시고 줄 긋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서 고등학생 땐 국사 교과서를 세 권 마련했다. 한 권은 수업 시간 필기용, 한 권은 마구 낙서하며 편하게 더럽힐 수 있는 공부용, 한 권은 필기 정리용. 그러고보면 나도 참 유별나다. 아무튼 그런 성격이었으니 나의 소중한 <룬의 아이들-데모닉> 1권을 빌려갔던 친구가 한약을 쏟아 가져왔을 땐 정말이지 눈이 뒤집어 졌다. 내가 그 친구를 좋아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대판 싸웠을 거다. 아, 아니면 아예 빌려주지도 않았겠지. 어떻게 아무한테나 책을 빌려주나. 미안해하는 친구 앞에선 괜찮다 말했지만 한약 냄새가 풍겨오는, 쭈굴쭈굴해진 책을 바라보며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모른다. 그 찜찜함은 계속 마음에 남아 사라지질 않았고 결국 모아 둔 용돈을 털어 새 책을 다시 구매했다. 빳빳하고 순결한 새 책을 책장 속 비어있는 1권 자리에 꽂아넣어 시리즈를 완성하였을 때, 아, 이보다 아름다운 인테리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신기한 일인거다. 그렇게 애정을 가졌었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잊고 살 수 있는지. 나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책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신기할 정도로 사라진 거다.
뭐 재밌는 일이라도 많이 하고 돌아다녔으면 말을 안한다. 나의 대학 일상이란 것은 매우 무미건조했다. 열심히 놀지도 열심히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시간은 잘만 갔다. 할 일 없으면 책을 좀 읽어볼 법도 한데, 웅장하고 거대한 도서관이 바로 몇 분 거리에 있었는데, 책에 손을 댈 생각을 안했다. 전공 서적조차 안봤다. 대학 생활 해본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그 전공 서적이란 거 안봐도 시험 다 칠 수 있다. PPT 출력물만 봐도 충분하다. 아니, 그것만 보기에도 늘 시간이 모자랐다. 지금에 와선 후회되고 한심하다. 가장 시야를 넓혀야 할 시기에 나는 가장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미 그래버린 것을.
책을 좀 읽어야 겠다, 읽고 싶다 생각한 건 얼마 안됐다. 몇 개월 정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꼽자면 둘 정도일 것 같다. 첫째 무식해서, 둘째 허무해서. 이 두 이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자면 부끄럽고 쪽팔리는 이야기를 한가득 풀어놔야 겠지만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러지 않기로 하겠다. 아무튼 책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런데 결심만으론 쉽지 않았다. 일단 뭘 봐야할 지를 몰랐다. 잘 모르니까 인터넷 서점 베스트 셀러나 스테디 셀러 항목을 휘휘 둘러보았다. 워낙 오래된 고전이라 제목만은 익숙한 책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낯선 작가와 책들이었다. 고민 끝에 책 한권을 펼쳐 들어도 문제는 이어졌다. 활자와 멀어진지 너무 오래되어 그런지 눈이 활자를 쫓아가지 못했다. 집중력도 엉망이었다. 한 페이지 읽다 핸드폰 켰다, 또 몇 페이지 읽다 딴 생각하다를 반복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을 시도해보고, 책 좀 읽는다는 친구가 빌려준 책을 도전해보기도 했다. 몇 번은 성공했고 몇 번은 실패했다. 반절 정도 읽은 채 내팽겨친 책이 방 구석에서 눈에 띨 때마다 조금 자책감이 들었지만 역시 다시 손이 가진 않았다. 다행히 쉽게 읽히는 책들이 위안을 줬다. 주로 에세이류였다. 누구나 할 법한 고민,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을 담은 책들은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갔다. 약간의 공감과 위로,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완독해냈다는 뿌듯함.
요즘은 이 뿌듯함에 용기를 얻어 조금씩 분야를 확장해가는 중이다. 좋아했던 영화나 음악에 대한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고, 최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과학이나 수학에 대한 책도 도전해 보고 있다. 여전히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다만 이 성공과 실패는 '완독'을 기준으로 한 것일 뿐, 그냥 몇장을 넘겨 읽었더라도 남는 게 있을 것이라 생각하려 한다.
딱 요정도 수준의 독서력을 갖춘 나에게 신간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예담)>이다. 나에게 이동진 평론가는 막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할 때 가장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주었던 사람인지라 독서 쪽도 믿어볼 만 할 것 같았다.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벌써 몇년째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공인된 독서광이기도 하지 않나. 게다가 말했듯 나는 '예쁜 책'에 가치를 많이 두는 편이라 이 책이 더더욱 가지고 싶었다. 책의 크기가 적당하고 무게가 가벼우며, 표지의 색도 부담스럽지 않게 예쁜 빨강이다. 제목의 글씨체, 배열도 마음에 들고, 표지에 그려진 작가의 캐릭터도 귀엽게 잘 어울린다. 이렇게 예쁘면 일단 나는 갖고 싶어 진다.
얼마 전에 tvN <어쩌다 어른>에 나와 독서법과 관련된 강의도 했다는데 아마 그때 한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일 거다.(나는 그 방송은 보지 못했다.) 책은 세 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생각' 편은 이동진이 생각하는 독서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은 독서인지를 조언하는 파트다. 평소 평론가로 보여왔던 모습과 마찬가지로 강요나 강조는 없다. 다만 본인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보았던 독서인으로서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조언을 전달한다. '깊이'보다 '넓이'를 이야기하는 점이 흥미롭다. 작가는 넓게 알아야 깊게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의 나 역시 그런 시각에 동감하고 있는 참이어서 힘이 되었다.
2부 '대화' 편은 씨네 21 이다혜 기자가 진행하는 이동진 작가 인터뷰를 담고 있다.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모두에게 책이란 매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1부에서 언급된 내용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책 뿐만 아니라 이동진이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인터뷰일 듯 하다.
3부는 추천도서 목록이다. 내가 이 책을 구매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분야별 추천 도서 제목과 작가명만 간략히 나열되어 있다. 하나 하나의 책들도 궁금하지만 책을 분류한 기준에서 이동진이란 사람의 관점이 보이는 느낌이라 더욱 흥미롭다. 저자는 흔히 사용되는 기준(인문교양/과학/심리/소설/에세이/만화 등)으로 책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 1부에서 책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류해보는 것도 좋은 독서법 중 하나라고 소개하고 있으니, 실제로 이동진이 어떻게 책을 분류하고 있는지를 이 추천목록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그가 제시한 도서 분류는 다음과 같다.
감각과 감정
대화와 독백
법칙과 체제
살아가는 나날
시간과 공간
악과 부조리
언어와 일상
역사의 그 순간
예술과 예술가
우주와 자연
이야기와 읽기와 쓰기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죽음이라는 수수께끼
외국 소설
한국 소설
한국 시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내내 강조하는 것은 책의 제목과 일맥상통한다. 재밌게 읽으라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책을 읽기로 결심했던 것은 사실상 목적 독서에 가까웠던 지라 이 말이 새삼 의미있게 다가왔다. 목적독서는 결국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나는 조금씩 재미를 느껴가고 있다. 여전히 5-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보면 압박을 느끼고 책을 완독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읽는다'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이 내 안에 다시 자라나기 시작하고 있다. 다행이다. 무언갈 좋아한다는 건 행복해질 이유가 늘어나는 거니까, 아마 나는 하나의 가능성을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