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시런, 가을에 만나요
이번 주가 시작되던 날부터 쭈욱 긴장타고 있었다. 웬만하면 회사 달력에 개인 용무는 잘 적어놓지 않는 편이지만 이것만큼은 빨간 별을 잔뜩 그려 표시해뒀다. 6월 15일 낮 12시, 에드 시런 티켓팅.
나는 음악을 좋아는 하지만 많이 듣지도 넓게 듣지도 않는 편이라 힙한 가수들을 바로 바로 캐치하고 즐기는 부지런함은 없다. 에드 시런을 알게 된 것도 우연이었고 그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가수였다.
얼마 전 주말 아침에 침대에 늘어져 티비 채널을 돌리는데 MTV였던가, 에드 시런 공연을 방영하고 있었다. ÷(Divide) 앨범에 꽂혀 한 달이 넘도록 전곡 재생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사실 에드 시런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몰랐다. 공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건 물론이다. 제대로 본 건 그날 방송이 처음이었다. 첫인상은 뭐랄까, 잘생겼다고 말하면 뻥일테고 그냥 음악이랑 외모가 어울리더라. 신기하게 가수들을 보면 외모, 밴드명, 목소리 그 모든 게 참 그들의 음악답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펀(Fun.) 음악을 처음 듣고 프론트맨 네이트 루스 얼굴을 찾아봤을 때도 그랬다. 어쩜 저렇게 펀 노래답게 생겼을까. 딱 Carry on 같은 노래 부르게 생겼네.
물론 반대 케이스도 많다. 대표적으로 오아시스(Oasis)의 리암 갤러거. Wonderwall의 그 곱디 고운 목소리 주인공이 그렇게 생겼을 줄이야. 지금은 익숙해져서 얼굴과 목소리가 매칭이 되지만 당시엔 정말 신기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에 두껍고 짙은 눈썹의 마초적 외모라니. 이런 조합도 가능하구나. 나중에 알고보니 리암 갤러거는 거친 언행으로 유명한 사고뭉치 락스타의 아이콘이었다.
한 사람을 더 꼽자면 롤링스톤즈(Rolling Stones)의 믹 재거 경. 나는 롤링스톤즈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공연 실황 다큐멘터리 <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로 처음 접했다. 가수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감독에 대한 관심으로 보게 된 다큐였던지라 당시의 난 롤링스톤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하긴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샤인 어 라이트>가 2007년작이니 당시에도 이미 믹 재거는 환갑을 넘긴 가수였다. 뭣도 모르는 내 눈에는 빼빼 마른 할아버지 한 명이 얄쌍한 스키니진을 입고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게다가 이상하게 야한 느낌을 풍기는 흐느적대는 몸짓까지. 아무튼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중후한 저음을 기대하며 지켜보는데 아니,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이 목소리는 대체..! 이 파릇파릇한 젊은이의 목소리는 뭐란 말인가. 이럴 순 없는 거였다. 무슨 노인네 목소리가 이래? 눈으로 보이는 모습과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 이 둘은 절대 한 사람의 몸에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가수의 콘서트 다큐를 홀린 듯 끝까지 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쌩쌩한 목소리를 여전히 유지하고 계신 걸 보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아들을 보신 것도 그럴 만 할 것 같다.
뭐 다 쓰잘 데 없는 이야기였고 오늘의 이 글은 그 분을 위한 것이다.
치열한 티켓팅을 뚫고 내 한 몸 끼일 자리를 사수해 준 신의 손, 당신.
직장인의 소중한 점심 시간도 반납하고 대학 수강 신청 때보다 경건한 자세로 열두시를 기다렸다. 1초 1초가 얼마나 숨이 막히던지 속이 다 울렁거리더라. 그거 안가도 안 죽는데 이 순간만큼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대망의 11시 59분, 새로고침을 누르고 크게 심호흡했다. 곧 화면이 전환되고 예매 버튼이 생기겠지. 그럼 천천히, 천천히 하는거야. 보안번호 틀리지 말고 답답하다고 여러 번 클릭하지 말고 차분하게 차근차근. 승천을 하루 앞둔 이무기의 심정으로 도를 닦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1분, 2분, 3분이 지나도록 화면이 바뀔 생각이 없는거다! 다급해져서 핸드폰으로 그제야 인터파크앱을 깔고 떨리는 손으로 로그인하는데 그때 이미 모든 평정심은 공기 중으로 증발한 상태였다. 광탈의 슬픈 예감이 머릿 속을 뿌옇게 메워가기 시작했다. 컴퓨터는 여전히 먹통인 가운데 의외로 모바일은 느리지만 어찌어찌 진행이 되어 갔다. 드디어 자리 선택의 시간. 딴에는 빛의 속도랍시고 이미 텅텅 빈 공백 속 몇 가닥 남아있는 희망을 쟁취해 보려 필사의 클릭질을 반복했으나..! 고르는 것마다 이미 선택한 좌석이라더라.
절망에 빠져 모든 걸 포기하려는 찰나, 신이 깜빡 잊을뻔한 자애를 내려주셨다. 진동하는 카톡 알림. 그것은 희망의 울림이었다. 혹시 몰라 티켓팅 좀 도와줄 수 있겠냐 부탁해뒀던 친구가 성공의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것도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번호의 자리를! 꼬르륵 소리 나는 배를 잊을만큼 감동과 환희가 몰려들었다. 그 순간 그 친구는 나의 영웅이었다. 나폴레옹이 다 뭐야. 내 친구가 최고지!
콜드플레이 티켓팅 때도 그랬지만, 평소에 뭘 얼마나 좋아했다고 이렇게 티켓팅 결과에 목숨을 거는지 나도 내 자신이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진짜 티켓팅에 매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가수 최고의 팬이다. 오기와 성취욕이 뒤엉켜 나를 그렇게 만든다. 이 죽일 놈의 티켓팅.
사실 오늘은 회사 일도 바쁘고 특히 하기 싫은 일이 많아 짜증이 솟구쳤는데 순식간에 세상 모든 일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애로운 기분이 되었다. 세상이 나를 조금만 위해주면 나도 이렇게 온순하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을. 그러니 좋은 일 좀 자주 내려주세요 하나님.
어쨌든 그리하여 나는 에드 시런 콘서트 티켓을 쟁취하였다.
행복하다.
기꺼이 소중한 시간을 나에게 빌려주었던 모든 친구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너희들 말이야, 바로 너.
재밌게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가사 꼭 다 외워가야지! 에드 시런, 가을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