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윌헌팅 Good Will Hunting(1997), 공감과 위로
"척 기억 안나요, 척키?"
"누구요?"
"그 대사요.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 알아?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 때야'"
"아, 그, 친구? 벤 애플렉?"
"맞아요, 걔. <굿윌헌팅> 좋아한다면서요. 어떻게 척키를 몰라요."
"그러게요."
과장님과 영화 얘기를 하다가 어쩌다 <굿윌헌팅 Good Will Hunting>까지 이야기가 흘러갔다. "아, 굿윌헌팅 좋죠. 볼 때마다 울어요." 했더니 자기도 좋아한다며 영화 속 대사를 줄줄이 읊으시더라. 들으니 기억 날 것 같다. 대사와 함께 몇몇 장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실제로 나는 <굿윌헌팅>을 좋아한다. 구스 반 산트 감독 작품들을 한동안 줄줄이 찾아봤을 정도로 좋아하기도 했다.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 로빈 윌리암스도 당연히 좋아한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운 것도 사실이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는데 그런 만큼 한 영화에 유달리 큰 애정을 갖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사랑하는 영화들은 있다. 외려 그 수가 많아서 문제다. 세상엔 좋은 영화가 너무 많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다.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세세한 플롯까지 기억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마구 좋아했던 영화는, 없다고까진 할 수 없지만 손에 꼽는다. 100년이 넘는 영화 역사에 쌓여 있는 명작들이 넘친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하고 새 영화가 개봉하는 세상. 진득하게 한 영화에 오랜 애착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러고보면 나도 참 얄팍하다.
여기까지, 척키를 선뜻 기억해내지 못한 나에 대한 변명이다. 그러나 맹세코 하느님, 저는 <굿윌헌팅>을 사랑합니다.
나에게 <굿윌헌팅>은 결국 한 줄의 대사다.
It's not your fault.
이 한 마디 대사만큼은 평생, 기억할 것이다.
공감과 위로. 쉬울 것 같은데 쉽지 않다. 공감 능력 뛰어난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기도 하다. 잘못하면 "네 인생이나 걱정하지 웬 오지랖" 소리 듣기 십상이다. 게다가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도 그런 공감을 받고싶어 한다. 당연한거다. 친구의 실연에 그렇게나 구구절절이 공감하며 같이 아파해주었는데 정작 나의 실연엔 "야, 그냥 잊어"한다면 서운하지 않을리가.
나는 그 정도로 우수한 '프로공감러'는 아니지만 친구 중 한 명이 그렇다. 다른 사람 일을 마음에 안고 정말 자기 일처럼 고민한다. 일면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결국 다른 사람 인생인데 뭘 그렇게까지 신경써. 너무 마음 쓰지 마.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 나도 덕분에 위로를 받고 위안을 얻는다. 고마운 녀석.
친구에게 하소연하기도 하지만 주된 나의 속풀이 대상은 당연히 가족이다.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는 매일같이 퇴근길 나의 지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못돼먹은 딸은 다 커서도 이렇게나 응석쟁이다.
문제는 우리 엄마가 위로에 서툴다는 것이다. 내가 "이러이러해서 힘들어, 스트레스 받아, 짜증나"하면 자꾸 무언가 조언을 해주려 한다. 혹은 나의 유별남을 나무란다. 다른 사람들 다 그렇게 그렇게 사는데 너는 왜 유별나게 불만이 많니. 그래서 어떻게 사니.
맞는 얘기다. 실제로 내가 잘못해 놓고 남이 잘못한 양, 세상이 잘못한 양 비난하며 화 낸 적도 많고 별 것 아닌 일에 유독 예민져서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남들을 피곤하게 하기도 한다. 이러면 안된다고 뒤늦게 반성하지만 그때 뿐이다. 성숙해지기란 참 힘들다.
그러나 한창 심통나 있을 때는 조언과 비난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있다. 자꾸 대화가 엇나간다. 그러다보면 싸움이 된다. 서운하고 섭섭한 거다. 조언을 바라서 하소연 하는 게 아닌데. 답을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닌데. 그냥 나는 지금 들어주고 공감해 줄 사람이 필요할 뿐인데.
엄마는 엄마대로 속상하고 답답한 일이다. 딸이 이렇게나 힘들어 하니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도움을 주려 할수록 딸은 더 날을 세운다. 쏘아 붙이는 게 밉다가도 결국 또 걱정이다.
엄마와 나는 몇 번이나 이런 일로 싸웠다. 늘 같은 패턴으로 서로 상처 줬다. 그러다 뒤늦게 깨달았다. 나를
위로하고 싶어 엄마 딴에는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었다는 걸. 그냥 방법을 몰라 어려웠을 뿐인거다.
그래서 엄마에게 일러줬다. 엄마, 다 아는데, 내가 이럴 때 듣고 싶은 말은 이거야.
그래, 많이 힘들겠구나 우리 딸. It's not your fault.
얼마 전 퇴근길에 또다시 구구절절 하소연하는데 익숙한 그 패턴이 이어질 것 같더라. 내가 말했다. "엄마, 엄마는 참 위로에 서툴러" 엄마가 웃었다. "그지? 내가 그걸 참 못한다" 그 목소리에 물기에 배여 있었다. 아프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