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계단, 아비정전, 에드 시런과 함께, 그날 그 순간
그런 날이 있다. 하늘이 땡땡이 치라고 정해준 날.
4월의 어느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여차저차한 사정이 있었다. 상황이 좋게 좋게 흘러갔다. 그래서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합법적 땡땡이의 기회!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거리를 걸으며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걷다보니 드디어 와닿았다. 바야흐로 4월의 봄이었다. 낮의 햇살이 이렇게나 따사로와져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투 없이는 돌아다니기 힘들었는데. 아마 그날도 미세먼지가 창궐했을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네모난 사무실, 네모난 컴퓨터, 네모난 서류들 속에 마치 테트리스 조각마냥 파묻혀 있던 시간에서 잠시나마 해방이었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피어난 꽃나무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아마 출퇴근길 거리에도 목련이, 벚꽃이 피어있었을텐데 왜 몰랐을까. 출근길은 늘 덜 깬 정신으로 후다닥이어서, 퇴근길엔 피곤한 걸음으로 땅만 보고 걸어서였을까.
푸른 기운이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백화점을 가볼까. 바로 근처에 있는데. 늘 북적북적했지만 오늘 이 시간엔 한가롭지 않을까. 책을 많이 읽진 않지만 책 구경은 좋아하니 서점을 가봐도 좋겠다. 요즘 인기있는 신간은 뭐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발걸음이 닿은 곳은 영화관이었다.
암흑과 스크린, 내가 좋아하는 장소.
온통 검은 공간을 오직 스크린의 빛으로만 메우는 곳.
시간도 많으니 오늘은 어떤 빛들이 쏘아질지 구경이나 해볼까.
집에서 조금 멀어 자주 찾는 영화관은 아니었다. 그래서 안와본 사이 이런 시도를 한 걸 모르고 있었다. 영화관과 같은 건물을 공유하고 있는 서점이 콜라보를 하기로 했나보다. 영화관엔 서점에서 제공한 책들이 놓여져 있었다. 상영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으며 기다릴 수 있게 해둔 거다. 혹여 그렇게 잠깐 보려했던 책이 재미있으면 내려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살 수도 있겠지. 영화관과 서점 모두에게 윈-윈(win-win)이다.
기분이 괜히 좋아졌다. 놓아진 책들 중에 읽고 싶었던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책도 보고, 그 김에 영화도 봐야겠다. 마침 (당연하게도) 영화관이 한산하기까지하니 책 읽기에 딱이지 않나.
일단 책 <열한 계단>을 가지고 자리를 잡았다. 핸드폰으로 상영작을 검색해보니 타이밍 좋게 <아비정전 阿飛正傳>이 재개봉했더라. 상영시간대도 적절하다. 오늘은 역시 땡땡이 치라고 신이 점지해 준 날인게 틀림없다.
예매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시작된 채사장의 진리 탐구 기록이다. 한 계단 한 계단 함께 따라 올라가는 재미가 있다. 인문, 사회, 과학, 철학, 종교 등에 한발 한발 내딛는 그의 발걸음은 마치 수도자와 같다. 내용도 좋지만 찾을 수 없는 답을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어찌 되었든 나아가는 그의 고집이 좋았다.
책은 술술 읽혔다.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에드 시런 Ed Sheeran의 앨범도 어느 하나 빠뜨릴 노래 없이 죄다 좋았다. 흥이 절로 났다. 발을 까딱까딱, 손가락을 따닥따닥. 그렇게 책을 읽고 있는 봄날 평일의 오후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가끔 상영관 앞을 지키는 무료한 알바생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 시간에 영화관에서 책을, 저렇게 신이 나서 읽고 있지. 이상한 사람이네. 그렇게 생각했을거다. 그조차도 좋았다. 그래, 나는 지금 이상한 사람이야. 그래서 너무 행복해.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 어느덧 상영시간이었다. 아쉬운 손길로 책장을 덮고 상영관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평소라면 지루했을 기나긴 광고도 그날은 거슬리지 않았다.
양조위가 등장해 외출 준비하는 장면을 꽤나 오래 보여주는, 그 뜬금없는 엔딩이 괜스레 마음에 들었던 영화였다. 발 없는 새, 장국영의 영화 <아비정전>. 단 세 명의 관객을 위해 쏘아지고 있는 커다란 스크린의 빛 속에 사랑을 주지 않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남자 장국영이 있었다.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영원을 약속할 수 없는 아비는 순간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박제되어 잔인하게도 영원히 살아남는다. 함께하는 영원을 주지 못할 지언정 그 순간만큼은, 아비도 진심이다. 수리진(장만옥)만이 그 1분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아비도 그날 그 순간 그 1분을 수리진과 함께 했음을 죽는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상영이 끝난 영화관을 나서며 스크린을 조심스레 손으로 쓸어보았다. 4월의 어느 오후 이 스크린에 장국영이 담겼고 그 순간 내가 함께했다. <열한 계단>이 함께 했고 에드 시런의 노래가 함께 했다. 영원으로 남을 그 순간들이 너무 행복해서, 행복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일탈의 순간은 안녕.
내일은 다시, 출근이다.
+ 나는 결국 <열한 계단>을 구입했다. 서점 마케팅의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