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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Jun 19. 2017

누군가는 조선의 개새끼를 이야기해야 한다

박열(2017)

스쳐지나가듯 보았어도 기억에 남을만한 포스터다. 마치 늑대같은 이제훈의 얼굴 위로 강력하게 내리꽂힌 붉은 이름, 박열(朴烈). 그 옆에 자리한 메인 카피는 다음과 같다.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


출처 : 다음 영화


이준익 감독의 신작 <박열>은 제목에서 보여지듯 흥미로운 한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역사극이다. 배경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조선인대학살이 일어났던 시기의 일본. 민중의 분노를 조선인에 돌리고자 했던 일본이 희생양으로 점 찍은 자가 바로 박열(본명 박준식)이었다.


박열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조선과 일본을 오가고 남한과 북한을 넘나들었던 그의 인생은 무척이나 드라마틱하다. 이준익 감독은 그 중 이십 대 초반 청년 박열에 집중한다. 젊고 패기만만했던 한 청년이 법정에서 일제와 당당히 마주했던 바로 그 시기다.


영화는 꼬임없이 직설적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메시지는 2시간 남짓의 영화 속에 모두 고스란히 표현된다.


영화의 시작은 한 남자의 뒷모습이다. 이어서 그의 발걸음이 보인다. 탁 탁 탁 탁 땅을 밀어내며 나아가는 남자의 발은 초라하지만 힘이 느껴진다. 이 영상 위에 여성의 목소리로 시 한 편이 울려퍼진다. 박열이 쓴 <개새끼>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 박열, <개새끼>


우리는 곧 이 남자(이제훈)가 박열이며, 시를 읽고 있던 여성은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 곧장 이어진다. 후미코는 첫 만남에 불쑥 박열에 동거를 제안한다. 두 사람은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다.


출처 : 다음 영화


영화가 중요 인물을 등장시키는 방식이 이렇다. 박열이 왜 일본 땅에서 인력거를 끌고 있는지, 왜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가네코 후미코야 말로 더욱 궁금한 인물이다. 일본인인 그녀가 왜 조선인들과 어울리며 조선어를 말할까. 어떤 연유로 그녀는 천황의 제국을 등지게 되었을까. 역시 영화는 알려주고 시작하지 않는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는 가운데 단편적인 정보들이 추가되며 추측케 하긴 하지만 어쨌든 영화는 그 시점의 한 남자와 여자의 인생에 갑자기 확 뛰어드는 방식을 취한다.(그러니 인물에 대한 정보를 조금 찾아보고 가는 쪽을 추천한다)


그럼에도 인물들을 큰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이 영화의 인물들이 캐릭터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감독의 전작인 <동주>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동주>가 윤동주의 시(詩)와 같은 영화였다면 <박열>은 박열의 인생만큼이나 만화적인 영화다. 박열은 소년 만화에서 흔히 보아 온 열혈남아, 가네코 후미코는 4차원 무대포 미녀 캐릭터다. 이것이 이 영화가 독특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대부분의 역사적 실화를 다룬 영화들은 정극의 방식을 취한다. 진지하고 진중하게 어떤 사건을 감내하고 겪어내는 인물들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이 과연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의미였는지, 얼마나 복잡한 고민이 엮여있는지 체험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 볼 기회를 얻는다.


출처 : 다음 영화


그러나 이 영화는 역사 속 인물들을 캐릭터화하여 소개한다. 특히 영화의 중반에 이를 때까지는 말 그대로 만화책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캐릭터와 연출이 모두 그렇다. 장면 장면을 캡쳐하여 만화책으로 만들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것 같다. 모든 인물이 타입캐스팅이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다. 못된 일본인 역할은 못된 일본인처럼 생긴 배우가 맡았고, 얄미운 일본인 역할은 얄미운 일본인처럼 생긴 배우가 맡았다. 이 경우 등장하는 캐릭터를 공들여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쉽게 인물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특정한 캐릭터로 인물을 인식하게 되면 인물에 깊이 있게 다가가기 힘들다. 실제의 인간은 캐릭터가 아니다. 모두에겐 강한 면이 있으면 나약한 면도 있고 진보적인 면이 있으면 보수적인 면도 있다. '열혈'이란 말로 한 사람을 모두 설명해 낼 수 없고 '4차원'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박열>은 시원하게 이 캐릭터성을 끝까지 고수하며 밀고 간다. 물론 영화의 후반부로 접어들며 두 사람에게도 고뇌하고 고민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드러나지만 영화는 끝까지 당당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캐릭터를 그리는 데 집중한다.


이러한 영화의 선택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영웅으로 기록된 역사의 이면에서 고뇌하는 인간을 발견하고자 했던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사 속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흥미로운 캐릭터를 발견하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제목이나 포스터만 보자면 박열이란 인물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있을 것이라 예상하기 쉽지만 실제 영화는 가네코 후미코를 박열만큼이나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영화를 관람한 나에게 박열보다 흥미롭게 다가 온 인물이기도 하다. 제목과 포스터를 비롯한 마케팅에 가네코 후미코가 배제되어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선택이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박열>의 가네코 후미코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특히나 이런 역사극에서 만나보기 힘든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이라 더욱 감흥이 크다. 그녀는 박열에게 먼저 반하여 동거를 제안하고 감옥에 남기를 스스로 선택하며 옥 중에서도 글을 써 세상에 남긴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부분은 있다. 박열의 동기가 아나키스트이자 피지배민족으로서 일제에 항거하는 것이었다면 가네코 후미코의 동기는 박열에 대한 사랑인 것처럼 표현되고 있는 점이다. 법정에서 박열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제 권력에 울분을 터뜨리고 가네코 후미코는 최후 변론에서 박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물론 실제로 그녀에게 박열과 일심동체로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성 캐릭터의 역할에 대한 관점에서 조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박열>은 읽고 싶은 만화책이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고 거대 권력 앞에 반말을 내뱉는 통쾌함이 있으며 피식민지배의 슬픈 역사를 울분 속에 담아 터뜨리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나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배경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원했던 사람들이라면 그 기대를 모두 채워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라는 이름을 잘 몰랐던 혹은 잊고 있었던 이들의 마음에 되새겨 주기에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 듯한 이준익 감독의 행보가 감동적이다.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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