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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Jul 06. 2017

마블의 세대교체자로 발탁된 철부지 히어로 성장기

스파이더맨 : 홈커밍(2017)

우리는 왜 스파이더맨을 사랑할까


스파이더맨에 대해 대중들이 가진 애정은 특별하다. 이 캐릭터는 벌써 세 번째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였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2012년부터 2년에 걸쳐 개봉했다. 원조 스파이더맨이야 그렇다 치지만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은 고작 3년 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스파이더맨을 또다시 만나고 싶어 아우성이었다. 물론 쓸쓸하게 홀로 놀 수 밖에 없었던 이 외로운 히어로가 드디어 MCU에 합류했다는 기대감이 컸을 테지만 정말 그게 전부인가.


히어로물이 범람하는 시대다. 매년 히어로 영화가 경쟁적으로 쏟아진다. 몇년새 올해의 히어로 영화 개봉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팬들의 연중 의례가 됐다. 마블과 디씨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더이상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 등 클래식한 히어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 대중에게 익숙치 않았던 신선한 얼굴들도 이제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솔로 무비를 선보인다. 관객들까지 제 멋대로 농락하는 데드풀이 성공했고, 지구를 떠나 새로 쓰기 시작한 스페이스 오페라(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성공했다. 이제 우리에겐 이름도 몰랐던 히어로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외려 보고 싶어 안달이다.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능력.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와중에 세 번째 자기소개를 하는 히어로라니. 이제 질릴 법도 한데 우리는 왜 여전히 스파이더맨을 사랑할까. 사연도 능력도 이미 다 아는데도 또 보고 싶은 이 히어로의 매력은 대체 뭘까.


인터넷에 우스개로 돌아다니는 히어로 재력 순위를 보면 1등(아이언맨인지 블랙팬선지 모르겠지만 그냥 부럽다)보다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꼴등이 있으니 바로 우리의 스파이더맨이다. 넉넉치 않은 가정 환경에서 알바로 근근히 용돈을 충당해가며 공부하는 이 소년의 장점은 똑똑하고 착하다는 것이다. 헌데 이런 특성들은 안타깝게도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기 딱이다. 소위 말하는 너드nerd가 인기있는 10대 집단은 전세계를 샅샅이 뒤져도 찾기 어려울 테다. 가난하면 생활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정의도 평화도 중요하지만 일단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피곤한 피터에게선 우리 세대 청년의 모습이 그대로 비친다.


스파이더맨의 또다른 특성은 동네 영웅이란 것이다. 대의를 위해 분기탱천하여 일어선 것이 아니라 우연히 얻은 능력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잡범들을 좀 혼내주던 것이 이 히어로의 시작이다. 아이언맨은 내 이웃이 아니지만(그 거대한 저택에 이웃이 있긴 할까) 생활비에 쪼들리는 평범한 소년 피터 파커는 정말 우리 옆집에 살수도 있을 것 같다. 스파이더맨만큼 바로 옆에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히어로가 있을까. 조금만 잘해주면 마음을 열어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스파이더맨이 우리 곁에 오래 살아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이런 평범함(혹은 찌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이라는 친밀함이 핵심인 셈이다.




자기애와 자기비하가 수없이 교차하는 10대의 세계


온 세계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톰 홀랜드의 새로운 스파이더맨은 이미 성공적인 데뷔전을 마쳤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였다. 히어로계의 최고 스타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직접 이 어리고 방정맞은 히어로를 소개했다. 짧지만 충분히 임팩트있었던 데뷔를 뒤로 하고 이제 정말 그의 이름을 단 영화가 개봉했다.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다.


일단 제목부터가 기존의 MCU 작품들과 다르다. 시민전쟁(시빌워)이라느니 울트론의 시대(에이지 오브 울트론)라느니 듣기만해도 거창한 부제들과 달리 이 영화에 붙은 부제는 '홈커밍'이다. 홈커밍이라면 미국 틴에이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봐온 졸업 파티같은 것 아니던가. 이 제목부터가 '세계 평화 정의 구현'이 아닌 좋아하는 이성 파트너와 홈커밍 파티에 멋있게 참석하는 것이 더 중요한 10대의 세계가 초점인 영화라는 걸 암시한다.



실제로 이번 스파이더맨의 가장 큰 차별성은 어리다는 거다. 지금까지의 스파이더맨도 늘 어렸지만 이번엔 더 각별히 어리다. 고작 15살이다. 이 어린 소년이 소코비아 협정을 두고 대립하게 된 원숙한 히어로들의 판에 끼었으니 그게 얼마나 신기한 경험이었겠는가. 토니의 인도 하에 시빌워에 참여하게 된 이 꼬마는 요즘 10대답게 종일 캠코더를 들고다니며 진짜 어른들의 세계를 체험하러 온 관광객이 된 것 마냥 기록을 남기는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일단 일손이 부족해 스파이더맨을 섭외했었다지만 아이언맨은 아직 너무 어리고 미숙한 스파이더맨을 진정한 동료로 맞이할 생각이 없다. 일련의 사태들이 어느정도 마무리된 후 토니는 매정하게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이미 한번 눈이 트였는데 조그만 퀸즈 동네에서 잡범들이나 상대하는 일이 성에 찰 리 없다. 피터는 토니의 마음에 들어 정식으로 어벤져의 멤버가 되기 위해 동아리고 뭐고 만사 다 제쳐두고 히어로 활동에 매진한다. 그래봤자 토니 눈엔 애송이일 뿐이지만 말이다.


토니의 무시에 익숙해져가던 어느 날, 짝사랑하는 소녀 리즈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받아 갔다가 우연히 불법무기 밀거래 현장을 포착한 피터는 누군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을 에너지원 삼아 위험한 무기를 제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위기에 빠진 스파이더맨을 구해주러 온 아이언맨에게 뭔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열변을 토하지만 토니는 괜히 일 키우지 말고 제발 잠자코 있으라며 휑하니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제대로 활약하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낼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피터는 친구 네드의 도움을 받아 수트의 제어를 해제하고 업그레이드된 수트와 함께 범인을 쫓아가기 시작한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자기애와 자기비하가 쉴새없이 교차하는 10대라는 특별한 시기에 들어서 있는 히어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이전의 스파이더맨들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토비 맥과이어나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 탄생기에 가장 중요한 서사는 벤 삼촌의 죽음이었다. 삼촌의 죽음에 죄책감을 품게 된 이 어린 영웅의 가슴 속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이 뿌리 깊게 새겨진다. 그래서 이들의 스파이더맨은 어린 나이임에도 진중하게 고민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홈커밍의 스파이더맨은 훨씬 철부지다. 토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뒷감당 생각없이 악당들에게 덤벼들어 사고를 치고 대책 없이 친구들을 바람 맞히기도 한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은 넉넉치 않는 가정 환경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으며, 똑똑한 공학도 캐릭터 역시 별로 강조되지 않는다.(기술적으로 머리 써야할 부분은 외려 친구 네드 몫이다.) 벤 삼촌의 죽음도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갈 뿐 특별한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도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자존감 낮고 내성적이지만 좀 더 진지하고 현실적이었던 기존의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사랑해왔던 팬들이라면 이렇게 수다스럽고 무게감 없는 새 스파이더맨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홈커밍에서 벤 삼촌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명백히 토니 스타크, 아이언맨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의 성장을 (의도 하지 않았건) 조력한다. 벤 삼촌과 관련된 서사를 통해 스스로 고뇌하고 성장해 나갔던 기존의 스토리와 아이언맨이라는 우상을 닮고 싶어하고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10대 소년의 성장담 중 더 큰 감흥을 일으키는 쪽을 고르라면 단연 전자다. 홈커밍은 스파이더맨 솔로 무비이고, 아이언맨의 등장시간은 길어야 10여분이겠지만 영화 내내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의 그늘 아래에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미워하긴 힘들다. 톰 홀랜드는 간혹 민폐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어수룩함을 사랑스럽게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감춰야 하는 걸 알면서도 불쑥불쑥 자신이 스파이더맨이란 걸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를 느끼며 갈등하는 소년의 모습은 충분히 공감되어 귀엽게 다가온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톰 홀랜드는 원없이 매력을 발산한다. 아마 이 영화를 통해 상당한 팬몰이를 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 정복 야욕보다 내 가족 밥 먹이는 게 중요한 빌런


그러나 영화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새로운 캐릭터 해석은 악역 벌처(마이클 키튼)에게서 나온다. 스파이더맨이 생활인의 향기를 잃은 대신 이 빌런이 그 아쉬움을 메우는 듯도 하다. 벌처는 가족을 부양할 의무를 지닌 가장이다. 그가 불법 무기 밀매업에 뛰어 들게 된 것은 사회가 그가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갔기 때문이다.(좀 더 정확히는 토니 스타크가 그의 기회를 앗아간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악역의 동기이다.


이 악역을 보다 더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은 그가 영웅들에 직접 대적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계 정복의 야욕 따윈 없다. 그냥 무기들을 빼내와 돈을 벌면 그만이다. 아이언맨을 비롯한 어벤져스 멤버들의 눈은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들이 몰려오면 이길 도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조그맣고 왜소한 스파이더맨 꼬마가 앞을 가로막고 아이언맨의 시선까지 끌려하니 상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거다. 그나마도 제대로 혼내주고 싶다기보단 그냥 입 닫고 모른척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커 보인다. 웬만하면 전투는 하고 싶어하지 않는 악역이라니. 수많은 히어로물을 봐온 내게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다.


대단한 야망을 지닌 빌런이 아님에도 이 악역에게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것엔 배우의 몫이 크다. 마이클 키튼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중년 가장의 모습과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빌런의 모습을 모두 설득력있게 표현해냈다. 특히 홈커밍 파티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피터와 대화하는 장면은 이 배우가 가진 무게감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마이클 키튼은 장년층에 접어든 요즘에 외려 필모가 훨씬 좋아지고 있다. <버드맨>과 <스포트라이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데다 최근작인 <파운더> 역시 무척 좋았다. 그러고보니 새와 유달리 인연이 많은 것 같다. 배트맨, 버드맨을 거쳐 이번 벌처까지..!





아이언맨의 후계자


<홈커밍>은 <아이언맨3>과 유사한 면이 많다. 토니 스타크가 아맨 정체성의 핵심이 온갖 기능이 탑재된 최첨단 수트가 아닌, 그 수트를 만들 능력이 있는 천재 공학도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렸던 <아이언맨3>는 시리즈 최고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하무인 독불장군으로 살아온 토니 스타크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홈커밍>의 스토리 줄기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제어할 줄 모르고 천방지축 까불던 10대 소년 히어로가 토니 스타크가 선사한 최첨단 수트를 잃은 상황에서 위기를 맞는다. 맨몸으로 나약해진 스파이더맨은 좌절에 빠지지만 이내 토니가 남긴 교훈을 되새기며 각성에 이른다.


토니와 인공지능 자비스의 관계가 피터와 캐런으로 이어지는 등 영화 내내 아이언맨의 그림자가 깔려있는데다 <아이언맨3>를 꼭 닮은 플롯 설정까지 부과한 것을 보면 마블의 세대 교체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음이 와닿는다. 아이언맨은 여전히 마블 유니버스의 인기 왕좌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지만 원로의 자리로 조금씩 물러서고 있는 느낌이다. 배우의 입장에서도 언제까지나 아이언맨에 매여 있을 수는 없는 일,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았겠지만 그의 퇴장을 맞이해야 할 순간이 분명 다가오고 있다.



여담으로, 토니와 자비스의 관계가 친구이자 조력자같다면 피터와 새로운 인공지능 캐런의 관계는 극중에서 피터가 지칭하듯 누나와 동생같다. 이 인공지능 누나는 피터에게 사적인 연애 조언까지 건네는 친절한 누님이다. 창고 안에 갇혀 하릴없이 둘이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영화 <그녀>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외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연상되는 장면도 있는데, 후반부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피터가 멍해진 귀로 사고 현장을 둘러보는 부분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그 유명한 초반부 해변 장면을 닮았다.




MCU가 구상하는 다음 페이지


새로운 스파이더맨에서 가장 크게 눈에 띠는 변화는 결국 캐릭터와 극의 분위기 전환이다. 인자함의 상징이었던 메이 숙모는 여전히 조카를 지극히 챙기는 자상한 분이지만 훨씬 젊고 매력적인 이탈리아계 여성으로 바꼈다.(다양한 인종의 등장도 이 영화의 차별성 중 하나다) 메이퀸과 같았던 MJ 역시 시니컬하고 아웃사이더적인 면모가 강조된 새로운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주인공인 스파이더맨은 여전히 친밀한 모습으로 어필하지만 지금껏 보지 못했던 철딱서니 없는 매력을 장착했다. 기분 탓인지 스파이더 수트의 색감도 훨씬 밝고 산뜻해진 느낌이다. 스파이더맨 특유의 분위기를 잃었다는 아쉬움과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즐거움이 이율배반적으로 공존한다.


어쨌든 <홈커밍>은 마블 세계관 안에 스파이더맨의 자리를 확고히 마련하는 영화이다. <홈커밍>에선 스파이더맨이란 캐릭터 자체보다 마블 히어로의 세대교체자로서 수행하게 될 역할이 더 중요해 보이기도 한다. 훨씬 젊고 명랑해진 이 젊은 세대가 과연 MCU의 미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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