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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Jul 17. 2017

적나라한 젊음의 얼굴

아메리칸 허니 : 방황하는 별의 노래(2016)

길 위의 청춘이 마주한 현실의 민낯


동생들과 쓰레기를 뒤져 그날의 끼니를 해결하려는 텍사스 소녀 스타(사샤 레인)의 상황은 갑갑하기만 하다. 무책임한 양엄마와 성폭행을 일삼는 아빠, 아직 어린 두 동생들까지 모두 이 어린 소녀의 어깨를 아프게 짓누른다. 탈출구가 절실한 그녀의 삶에 어느날 제이크(샤이아 라보프)가 불쑥 나타난다. 월마트의 계산대에 올라가 리한나의 'We found LOVE'에 맞춰 춤을 추는 제이크와 그 친구들의 모습은 스타에게 자유 그 자체로 다가온다. 결국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제이크의 패거리에 합류한 스타는 크리스탈(라일리 코프)의 지휘 아래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잡지를 파는 일을 시작한다.



영화 <아메리칸 허니 : 방황하는 별의 노래>는 핸드 헬드 카메라로 현대 미국 10대들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현실감 있게 담아 낸 로드 무비다. 사실상 앵벌이 사기 집단과 같은 이들 패거리는 부촌, 빈촌을 가리지 않고 온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이 시대 미국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들이 마주하는 가식적인 카톨릭 신자, 남아도는 게 시간과 돈인 늙은 카우보이들, 검은 욕망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 석유 노동자, 마약에 빠진 부모와 그 아래 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모두 미국이 당면한 현실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메리칸 허니>는 결국 10대와 꿈에 대한 영화다. 꿈 꾸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소녀가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16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속에 꾸밈없이 드러난다.


아메리칸 허니, 순수했던 그 시절


스타는 제이크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도 탈출구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된다. 그녀는 자유롭고 분방한 제이크에 빠져들고 그와 함께 미래를 꿈 꾸기를 고대한다.


제이크는 이미 길 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다. 집단 내 베스트 세일즈맨으로 손꼽히는 제이크는 노련하게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현혹하여 결국 잡지를 구독하게 만든다. 그러나 제이크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 된 스타의 눈에 이런 그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뭔가 다를거라 믿었던 그는 현란한 말솜씨의 사기꾼처럼 보일 뿐이다. 제이크의 모습을 내심 깔보는 듯한 기독교인 아주머 위선 앞에서 스타는 참지 못하고 신랄한 독설을 쏟아낸 후 문을 박차고 나온다. 그런 스타에게 제이크는 화를 내지만 한편으론 감동한다. 가식을 견디지 못하는 스타의 모습에서 제이크는 자신이 잃어버린지 오래된 순수의 흔적을 발견한다. 스타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순수한 '아메리칸 허니'와 같다.


아메리칸 허니(American Honey) : 미국 남부 출신 여성을 이르는 말로 순수한 시절을 보낸 시골 출신 사랑스러운 여성을 뜻한다. Lady Antebellum이 부른 동명의 곡이 영화 속에 삽입되기도 했다.



반짝이는 것, 희망


자신을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와 준 스타에게 제이크는 몰래 훔쳐 온 반지를 선물한다. 사실 제이크에겐 꿈이 있다. 2년여 동안 길 위를 헤매이며 꾸준히 반짝이는 보석들을 수집해(훔쳐) 왔다. 언젠가 이 보석들로 조용한 숲 속에 집을 짓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꿈이다. 반짝이는 것이 곧 그의 희망이다. 그는 스타에게 이 꿈을 공유한다.



'스타', 별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제이크에게 희망과 같다. 밤하늘을 반짝이는 별, 스타는 그의 꿈을 이루어 줄 존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름은 우리 모두 죽은 별의 잔해라는 의미에서 그녀의 엄마가 붙여 준 것이다. '스타'의 이름엔 희망과 절망이 공존한다.


한편 스타는 제이크와의 관계가 틀어지며 제이크가 선물한 반지를 다른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건네주고 만다. 제이크의 희망은 스타의 손을 떠난다. 이는 두 사람이 같은 희망을 공유할 수 없는 관계임을 암시한다.


잃어버린 순수의 시대


동정을 얻어 잡지를 팔아 먹으려는 제이크와 다른 친구들의 전략과 달리 스타는 '척'을 못한다. 스타는 자신의 방식으로도 잡지를 팔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제이크가 보는 앞에서 카우보이 노인네들의 차에 올라타 쌩하니 사라져 버린 스타는 노인들의 시시덕거림에 동참해주며 결국 잡지 계약을 따내는데 성공한다. 한편 늑대 울음 소리를 흉내내며 그녀를 찾아온 제이크는 노인들에게 총을 꺼내들고 협박하며 다소 과격하게 스타의 손을 이끌고 현장을 빠져나온다.



노련하고 영악한 제이크가 스타에 대해 보이는 비이성적인 행동들은 스타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그러나 자신은 이미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한다. 영화의 후반부 스타가 순수를 잃고(석유노동자에게 몸을 판다) 꿈을 이야기할 때(이곳을 떠나 집을 짓고 함께 살자 제안한다) 그는 또 한 번 광분하고 그녀를 떠나간다. 스타는 제이크와 함께하기 위해 순수를 잃는 선택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으로 제이크를 떠나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그라들 수 없는 생명력


영화의 주인공은 스타이지만 사실 길 위를 함께 방황하는 그들 모두가 '아메리칸 허니'다. 기댈 곳 없는 가정을 떠나 길 위에 올라선 그들은 함께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최면을 걸지만 내면에 자리한 불안과 고독을 숨길 수 없다. 자유를 위장한 이들의 사회는 사실 내부의 엄격한 규율에 매여 있으며 패배를 용서하지 않는다. 실적이 가장 나쁜 두 사람은 맨 몸으로 엉겨붙어 서로에게 주먹질해야 하며('루저의 밤'이라 불리는 이벤트다) 대장의 눈 밖에 나면 언제든 길거리에 홀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불안정하게 헤매이는 젊은 영혼들은 표현하지 않지만 모두 알고 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배회할 수 만은 없다는 것을. 결국 이 곳을 떠나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영화는 자주 벌레의 모습을 인서트한다. 쓰레기에, 차에 엉겨붙은 벌레들, 창문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벌, 나방. 이 벌레들은 스타와 크루들, 더 나아가 방황하는 모든 젊은 영혼들과 동일시된다. 스타는 갇혀 있는 벌레를 두 차례에 걸쳐 창 밖으로 해방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돌아온 제이크는 스타의 손에 새끼 거북 한마리를 전한다. 스타는 거북을 받아들고 강가로 걸어간다. 거북을 놓아주자 물 속으로 돌아간다. 제이크 역시 스타를 돌려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새끼 거북이 그랬듯 스타 역시 천천히 강으로 걸어들어 간다. 온통 물 속에 잠기고 정적. 순수도, 젊음도, 희망도 이대로 끝버리는 걸까.


그러나 영화는 그 순간 다시 시작된다. 검은 강 위로 솟구쳐 오르는 스타의 실루엣. 아메리칸 허니로 돌아갈 수 없어졌음에도, 순수의 시대는 끝났고 희망은 길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끝낼 수 없는 어떤 생명력이, 여전히 그녀 안에 살아 있다. 한마리의 반딧불이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Lady Antelbellum - American Honey



아름다운 촬영이 인상적인 영화라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 장면이 많지만, 무엇보다 lady antebellum의 American Honey를 밴 안의 모두가 함께 열창하는 부분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때 카메라가 비추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너무나 적나라한 젊음 그 자체여서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영화를 보고 한동안 American Honey를 들을 때마다 울컥했다. 그 얼굴들이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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