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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Aug 04. 2017

슈퍼배드한 슈퍼배드 영화

슈퍼배드3 Despicable Me 3(2017)

퍼렐 윌리엄스의 Despicable Me 테마와 함께 <슈퍼배드>의 주인공 그루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본 이후 한동안 나는 '허-, 디스피커블 미'를 흥얼거리며 다녔다. 이 노래와 함께 껄렁껄렁하게 길거리를 걸으면 마치 악당 그루가 된 것마냥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제재와 제약에서 벗어난 느낌이랄까. 유독 홀로 거리를 활보하며 들을 때 흥이 나는 노래들이 있는데 이 곡과 레드본Redbone의 Come and Get Your Love(가디언즈 오브 갤럭시1 ost)가 그런 것 같다.


I'm havin' a bad, bad day
It's about time that I get my way
Steam rollin' whatever I see,
Huh, despicable me

I'm havin' a bad, bad day
If you take it personal that's okay
Watch, this is so fun to see
Huh, despicable me

- Despicable Me / Pharrell Williams
 Despicable Me / Pharrell Williams



신생 애니메이션 제작사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 Entertainment)은 출범 후 단시간에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상대적 저예산으로 시장 돌파에 성공한 일루미네이션은 2007년 설립 이래 슈퍼배드를 시리즈화했고, <씽><마이펫의 이중생활>까지 속편 제작을 앞두고 있다. 빠른 속도로 프랜차이즈화에 성공한 이 제작사의 강점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에 있다. 특히 외계어를 웅얼거리는 노란 꼬마 떼거지, 미니언즈는 주인공 그루의 인기를 뛰어넘을 정도로 사랑받았다.(외전 격인 <미니언즈>가 본 시리즈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것만 봐도.)



미니언즈의 인기에 힘입어 슈퍼배드의 흥행속도도 쾌조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개봉날 굳이 아침부터 극장을 찾았다. (여담으로 시간대 찾기 참 힘들었다. 주인공 그루 목소리를 맡은 스티브 카렐을 좋아해서 더빙보다는 자막으로 보려다보니 더더욱. 사실상 한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타 영화들 상영관은 손에 꼽게 배정됐고, 그나마의 시간대조차 극악했다. 너무한 거 아닌가.)


다만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최근의 일루미네이션의 행보가 영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마이펫의 이중생활>, <씽> 모두 나쁘지 않은 흥행을 보였지만 두 영화 모두 나에겐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게다가 <미니언즈>는 최악이었다. 귀여운 건 인정. 그러나 영화 자체는 분명 태작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슈퍼배드3>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루미네이션은 빠른 속도로 태작들을 찍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흥행 성적이 나쁘지 않으니 개선할 마음이 별로 없어보인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 분명 <슈퍼배드>를 처음 세상에 내놨을 때만 해도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말이다.



<씽>이, <마이펫>이, 그리고 <미니언즈>가 그랬듯 이번 이야기도 산발적이다.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의 영화 속에 융합되지 않고 겉돈다. 분명 지향점은 가족 영화인 것 같은데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서로의 감정에, 서로의 상황에 관심이 없다. 모든 캐릭터가 자기 이야기만 한다.


시리즈를 확장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슈퍼배드3> 역시 두 캐릭터를 새로 소개한다. 악역인 '브래트'와 그루의 숨겨진 쌍둥이 동생 '드루'다. 그러나 이들은 시리즈에 새로운 동력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영화는 많은 이야기를 여러 층으로 얄팍하게 놓았다.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그루 - 드루 : 그루의 잃어버린 동생 드루는 가문의 핏줄을 이어받아 멋들어진 악당이 되고 싶지만 악당짓에 영 서툴다. 그래서 한때 잘나가는 악당이었던 형 그루를 찾는다. 개과천선하여 악당을 잡는 일에 협력하고 있던 그루는 때마침 직업을 잃은 참이다. 어쩐지 드루의 꼬심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슈퍼배드의 과거로 돌아가려는 욕망이 꿈틀꿈틀 피어오른다.

2. 루시 : 그루와 결혼한 루시는 갑자기 세 아이의 엄마 역할을 해야한다. 당연히 어색하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만 앞선다.

3. 브래트 : 브래트는 잘나가는 아역스타에서 추락한 후 삐뚤어져 온갖 악행을 일삼고 다닌다. 자신을 무시했던 세상에 복수하는 것이 목표다. 특징이 있다면 음악적인 악역이라는 점. 첫 등장부터 마이클 잭슨의 BAD가 흘러나온다.

4. 아그네스 : 순수의 상징 아그네스가 원하는 것은 유니콘을 만나는 것이다. 그루와 루시는 딸의 동심을 헤치고 싶지 않아 안절부절한다.

5. 미니언즈 : 멋있는 악당, 슈퍼배드 시절을 그리워하는 미니언즈는 개과천선하여 재미없어진 그루의 곁을 떠나 마음껏 사고치고 다닌다. (그래도 귀엽다. 미니언즈 아닌가.)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그 얼굴, 그루가 그리워진다.


이 모든 이야기가 길지 않은 러닝타임 안에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아니, 일단 펼쳐놓고 본다. 이후는 책임지지 않는다. 이야기에도, 캐릭터에도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캐릭터는 각자의 상황만 가지고 고민하고 방황하다 혼자 결론을 얻는다. 극중에서 관계로 고민하는 인물들조차도 사실은 다른 캐릭터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시리즈 최고의 인기스타 미니언즈는 솔직히 극중에서 필요가 없다. 인기가 많으니 내보이긴 해야겠고 특별히 역할을 줄 건 없고 하니 그냥 얼굴값을 시킨다. 중간 중간 나가서 춤추고 노래하고 재롱떨며 귀여움받으렴. 제작자가 생각한 미니언즈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다시 그루에게 돌아가기로 한 미니언즈의 결정엔 어떤 계기도 없다. 게다가 미니언즈가 돌아오는 것이 극의 진행에 큰 의미를 지니지도 않는다.


이야기를 끌고가야 할 가장 중요한 인물인 그루의 서사 역시 흥미롭지 않다. 동생인 드루와의 관계도, 화려한 과거(슈퍼배드)와 현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도 왁자지껄한 소동들 속에 의미없이 부유한다. 자꾸 흩어지는 이야기 속에 주인공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슈퍼배드3>는 믿기지 않게도 지루했다. 나는 생각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지라 이런 작품들에서 큰 의미를 찾진 않는다. 그냥 순간 빠져서 낄낄대며 보고 잊어버릴 수 있으면 그만이다. 보고나서 남는 게 없어도 보는 동안 즐거웠으면 충분하다. 그런데 <슈퍼배드3>는 진심으로 그냥, 재미가 없었다. 노래하고 춤추는 미니언즈를 보며 니들이 참 고생한다, 그런 생각만 들었다.


사실 픽사도 좋은 작품내는데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루미네이션에 명작을 기대하긴 무리가 있다. (픽사가 2010년 <토이스토리3>를 내놓은 이후 <인사이드 아웃>이 나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인사이드 아웃> 이후 주목할만한 작품이 없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일루미네이션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애초부터 좋은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없어 보인다는 거다. 잘 만들고 싶었지만 미끄러진 것이 아니라 그냥 미니언즈의 인기를 이용해 한번 더 관객몰이를 해야겠다는 의도로 나온 영화인 것이 너무 빤히 보인다.


속상한건 그럼에도 여전히 이 시리즈에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슈퍼배드>가 '정말로' 좋았다. 일루미네이션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어봐도 되는걸까. 다음 작품을 보러 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이 찝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어쩐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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