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t Theat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롬 Aug 22. 2017

그 슬픔을 보게 하는 장소

택시 운전사(2017)

그녀가 지금 기억하는 건 행복이 아니라 그런 행복한 일들이 일어났던 장소였다. 행복은 실체가 없지만, 장소는 그 행복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 오스틴 라이트, <토니와수잔> p.170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장소


며칠 전 친구 집들이에 갔다가 저녁을 먹은 뒤 구경도 하고 소화도 시킬 겸 동네를 걸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기찻길을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었다. 비올 듯 무거운 하늘이었지만 쨍쨍한 햇빛보단 나았다. 꽤나 길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슬렁슬렁 걸어가다보니 어째 낯익은 가게가 보였다. 그러고보니 낯익은 건물도. 제대로 둘러보니 아, 한때 살았던 대학가의 동네였다. 늘 지나쳤던 밥집이 그때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였다. 휘휘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듯 익숙하다. 저 구석길로 올라가는 게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는데.


세어보니 떠난 지 벌써 7-8년이었다. 그 동네를 떠나는 날 나는 차 뒷자석에 앉아 왈칵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생각보다 그 곳을 좋아했고 그곳의 사람들을 좋아했다. 고백하자면 사실 내가 그곳에 머물렀던 건 길어야 5개월 남짓이었다. 그런데도 그렇게나 울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아빠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다. “왜그렇게 눈물이 나?” 아빠가 물었다. “모르겠어.”



영화 <택시 운전사>



엄마와 함께 <택시 운전사>를보러 갔다. 상영작을 검색해보니 우리 엄마가 안 졸고 볼만 한 영화는 이것밖에 없었다. 귀찮다, 피곤하다, 돈 아깝다며 엄마는 안 가겠다 버텼지만 굳이 굳이 팔을 붙들고 나왔다. 조조 영화라 육천원 밖에 안한다고 설득해야 했다. 엄마는 항상 영화관에 쓰는 돈을 아까워했다.


80년 5월, 그날의 광주로 달려가는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였다. 영화는 예상대로 볼 만 했다. 송강호가 몸을 움직이는 방식은 언제봐도 감탄스러웠다. 예정된 비극이 있었고 훌쩍이는 소리가 영화관 곳곳에서 들려왔다. 나는 이 영화가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유해진의 캐릭터가 아쉬웠으며 후반부의 스펙타클에 설득될 수 없었지만 엄마가 졸지 않았고 재밌게 보았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좋은 선택이었어.



슬픔에 구속된 장소



광주는 우리 역사에 특별한 장소다. 30여 년이 흘렀고 세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씻겨 내려가지 못한 비극이 머물고 있다. 사실 광주라는 장소를 아픔의 정서에 묶어 둔다는 건 그 곳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과거가 있고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에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또 미안하다.


가장 친대중적인 예술이기에 영화는 사회적으로 어떤 책임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영화는 영상의 매체라 우리를 그때의 그 장소로 데려다 주곤 한다. 스쳐 지나가는 감정을 장소는 붙들어 준다. 그것은 대단한 힘이다. 오스틴 라이트가 썼듯, 감정은 실체가 없지만 장소는 그 감정을 볼 수 있게 한다. 행복만 그러면 좋겠는데 슬픔도 그렇다.


여전히 우리는 그때의 광주로 가는 것이 두려운 오늘을 산다. 그 장소는 잊고 있던 슬픔을 보게 한다. 마주하면 또다시 분노하게 된다. 이토록 여전한 감정에 이 장소는 줄곧 매여 있었다. 광주의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과 광주의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슬픔의 장소에 묶여있는 사람들과 함께 묶여야만 하는 사람들. 어느 쪽이나 억울하다. 우리는 참 장소에 구속되어 살고 있구나. 어쩐지 이 사실이 무섭게 다가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슈퍼배드한 슈퍼배드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