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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Aug 17. 2017

그냥 한바탕 즐기는 거죠

에세이 <살아갑니다> / 권성민(MBC 예능PD) 

뭐라도 되겠지


나는 김중혁 작가를 소설보다 에세이로 먼저 접했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빌려 읽은 책이 에세이집 <뭐라도 되겠지>였기 때문이다. 제목부터가 취향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 타입에 공통점이 있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달았는데, 얼마나 고뇌하고 고심하여 작품을 만들었던지 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지나치게 진지해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굉장히 좋아하는 인터뷰가 하나 있다. 한창 비틀스의 인기가 하늘로 솟아오르던 시절 기자가 폴 매카트니에게 물었다. 비틀스가 문화예술사에 어떤 의미를 지닐 것 같나요. 매카트니는 이렇게 답했다.


“(문화예술사라니) 농담하는거죠? 이건 그냥 한바탕 즐기는 거에요!(It’s just a laugh!)”

*꽤 오래 전에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본 인터뷰였던지라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비슷한 내용이었다.


나는 저 인터뷰를 보고 폴 매카트니에게 완전히 빠졌다. 물론 그 전부터 빠져있었지만 just a laugh라는 한마디는 정말 강력했다.


<뭐라도 되겠지>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김중혁 작가는 기본적으로 무게잡는 글을 쓰는 타입이 아니다. 그 이후로 몇 편의 에세이와 소설을 더 읽어보았지만 모든 글이 그렇다. 마냥 가볍지는 않지만 활자에 부여된 무게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힘겨운 어떤 책들과는 분명 다르다. 간혹 팔랑거리고 자주 헤실댄다. 나는 그런 작가의 태도가 좋았다.



그보다 더 직관적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그 책의 한 대목이었는데, 이미 돌려줘버린 책이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밥 딜런 다큐멘터리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BBC와 합작하여 연출한 <노 디렉션 홈 : 밥 딜런>이란 다큐였다. 한창 6-70년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시절에 굳이 굳이 찾아보게 된 다큐로, 자막이 없어 얕은 영어 실력으로 고생하며 봤었다. 이 다큐 챙겨본 사람은 대한민국에 천 명도 채 안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김중혁 작가라는 걸 발견하게 된거다. 얼마나 반갑던지. 게다가 200분이 넘는 다큐에서 하필 내가 가장 즐겁게 본 파트(밥 딜런의 젊은 시절 컨퍼런스 인터뷰 부분)를 콕 집어 에세이에서 언급하고 있었다. 그 에세이를 본 순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미지의 작가 김중혁이란 사람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간혹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은 영화, 같은 노래, 같은 작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영혼의 저 끝 어딘가가 맞닿은 것 같은 설렘을 느끼는 순간. <뭐라도 되겠지>를 읽으며 이런 독자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를 김중혁 작가에 나 혼자 가까워졌고 그는 나에게 조금 특별한 작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안 챙겨본 책이 더 많다만.)



살아갑니다


얼마 전 <뭐라도 되겠지>를 빌려줬던 그 친구가 또 다른 에세이 한 권을 추천했다. MBC 권성민 PD가 쓴 <살아갑니다>라는 책이었다. 아직 다 읽진 않았는데 초반 몇 편만에 이미 저랑 너무 닮아 반해버렸다고. 아, 너도 그 경험을 하고 있구나. 내가 김중혁 작가 에세이를 봤을 때 같은, 그런 경험.


광복절 연휴를 맞아 마침 고향에 내려갈 예정이었던지라 가는 길 기차 안에서 가볍게 읽을 만할 것 같아 가방에<살아갑니다> 책을 챙겨 넣었다. 어째 무게가 느껴지는 제목이라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일단 작가가 예능 PD라니 믿어볼 만 하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하여 초반부 몇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알았다. 내 친구는 여기서 이미 마음을 뺏겼겠군.


아직 젊고 창창한 권성민 PD의 직장 생활은 파란만장하다. 14년 여름 온라인에 올린 글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 그 이후 올린 웹툰 세 편으로 해고를 통보받는다. 불합리한 조치에 법적 공방이 이어졌고 대법원의 해고 무표 판결 후 16년 5월 다시 복직했다. 이제 좀 안정을 찾나 했더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새다. 검색해보니 얼마 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 인터뷰로 또다시 징계 얘기가 오갔나보다.


어렵게 공부하고 노력하여 지상파 PD가 되었을텐데 정작 연출하고 편집할 수 없는 공허한 상황. 오늘도 내일도 일은 할 수 없지만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해야 하는 ‘유배’ 생활 속에서도, 불합리한 해고를 통보 받아 ‘백수’의 시기를 보낼 때에도 이 젊고 능력있는 청년은 담담하고 흔들림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의 시점까지 아우르는 여러 편의 글들이 하나로 모여질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이러한 캐릭터가 일관되게 책 속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직하고 뚝심있다. 



KTX 안에서 읽다가 눈물을 쏟아낼 뻔 했던 ‘빚지다’를 비롯하여(정말 참아내느라 애먹었다) 작가는 항상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하고 되새기는 태도를 보인다. 스스로에게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혼란스럽고 불합리한 사회를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더욱 귀기울이게 된다.


에필로그 ‘부끄러움이 가까이 왔다’에서 작가는 ‘말빚’이란 표현을 쓴다.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쓸 수 있는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저런 기회로 말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건 고스란히 빚이었다.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어깨 위로 기어올라가 그 무게만큼 나를 지그시 누르는 것 같았다. ‘말뿐인 녀석’이 되는 것만큼 두려운 건 없었다. 그렇다고 시키는 말을 딱 잘라 거절할 용기가 넉넉하지도 못했다. 적당히 비겁하게 찾은 타협안은 ‘말을 조심해서 하자’ 정도가 되었다. 너무 강하게 말하지 않기, 말해도 되겠다 싶은 것들만 말하기. 그런데도 이걸 책임지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찌됐던 나는 역시 재미있게 일하는 예술가가 좋다. 예술의 궁극은 결국 유희정신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성민 PD가 아무 고민없이, 그저 재미있게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회가 되어주면 좋겠다. 그러니 피디님, 앞으로는 예능길만 걸으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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