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t Theatre

진지병 퇴치 영화 처방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by 프롬
너무 진지한 게 문제 같아.


구구절절한 고민 상담 끝에 친구가 내린 결론이었다.


너는 너무 생각이 많아. 그래서 너랑 얘기하면 재밌긴 한데 그게 너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모든 것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그 바로 이틀 전, 나는 펑펑 울었고 눈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갑갑함과 패배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라 믿었지만 외려 불편하고 찝찝한 마음은 퍼져나가기만 했다. 간만에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그날까지도 나의 상태는 여전했다. 찐득찐득한 무언가가 머리 속 어딘가에, 마음속 어딘가에 붙어 당최 씻겨져 내려가지를 않았다.


나는 내가 더 진지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파고들어, 더 진지해져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웠다. 그런 내게 그날 친구는 일러 준 것이다. 덜 진지해도 돼. 그 뒤에 덧붙인, ‘내가 보기에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말까지, 그녀는 그 시점의 내게 가장 완벽한 위로를 주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러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관람은 일종의 처방과 같은 것이었다. 진지병엔 약도 없다지만, 가오갤 정도면 극약처방 정도로 인정해줄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전편도 마음껏 즐기지 못했었다. 최종보스(1편에서는 로난)를 앞에 두고, 겁에 질린 잔다르 행성인들이 죄다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춤을 추는 주인공이라니. 낯선 우주 공간을 울리는 음질 나쁜 70년대 팝송(O-O-H Child – TheFive Stairsteps), 커다란 덩치로 촌스럽게 리듬 타는 남자 주인공. 가오갤은 지금껏 진지하게 지켜봐 온 수많은 히어로 무비들을 완벽하게 배반하는 영화였다. 그리고 나는 이 배반자를 맘 편히 즐길 자세가 안된 경직된 관객이었고.


가오갤은 외려 한 번 더 봤을 때 훨씬 즐거운 영화였다. 상대가 실없는 농담꾼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허실실 하는 놈을 앞에 두고 짐짓 근엄한 척 무게 잡을 필요가 없어진 나는 비로소 자칭 스타로드라는 주인공의 근본 없는 댄스 배틀에 맘껏 웃을 수 있었다.


가오갤 vol.2 역시 관객과 마주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인트로만 봐도 알 수 있다. 카메라의 초점은 애빌리스크와 혈전을 벌이는 가오갤의 다른 멤버들이 아닌, 이 난장판 전장을 음악을 들으며 천진하게 누비는 베이비 그루트다.


전편보다 감동 코드가 강화되었고, 화려한 볼거리도 늘었다. 베이비 그루트 캐릭터를 통해 대놓고 잔망을 부리기도 한다. 감독 제임스 건은 능숙하게 1편의 성공 코드를 재활용한다. 익숙해진 B급 개그 코드에 매력적인 새 캐릭터를 넣어 변주하고, Awesome Mix vol.1을 잇는 vol.2 역시 흥겹다. 가오갤 멤버들의 캐릭터는 한층 확고해졌고 팀으로서의 연대 역시 강해진다. 혈연보다 끈끈한 유사 가족 관계를 강조하는 주제 의식도 명확하다.


메인 빌런 활용이나 정당성 부여, 등장인물 간 감정선 설명 부족 등 아쉬운 측면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가오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가벼움의 미덕을 잃지 않는 영화다. 이 영화를 즐기려면 결국 내 태도가 중요하다.






영화뿐만 아니다. 내가 지금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과연 그렇게 진지할 만한 것일까. 어쩌면 이 녀석도 팔랑팔랑 가볍기 그지없는 놈일지도 모른다. 물론 고루하고 진지해 빠진 놈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가오갤조차도 간혹은 진지해지지 않나. (심지어 이번 편은 눈물을 뽑아내기까지 한다!) 그러니 짜증 나도록 무거운 내 앞의 문제도 가끔은 가벼워지겠지. 실없어지겠지. 그러니 그를 마주하고 있는 오늘은 나도 좀 가벼워져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너무 진지해서 덩달아 가벼워질 타이밍을 못 잡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SP9wms6oEMo

내가 가오갤2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던 또다른 이유. 사랑해마지 않는 George Harrison의 노래가 어썸믹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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