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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atre
by 프롬 Sep 14. 2017

턴테이블 위를 질주하다

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2017)

모든 장면을 음악이 지배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플레이되는 턴테이블 위에 올라타 있다. 자동차는 그 자체로 커다란 아이팟이다. 턴테이블 위에서 아이팟을 타고 질주한다. 당신이 음악을 사랑한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 줄거리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양아버지 조셉과 함께 살고 있는 베이비(안셀 엘고트)는 끝내주는 운전 실력으로 일찌감치 박사(케빈 스페이시)의 눈에 들어 온갖 범죄의 탈출 드라이버로 활약한다. 마침내 빚을 청산하고 사랑스런 웨이트리스 데보라(릴리 제임스)와 만나게 되면서 베이비는 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로 한다. 그러나 박사의 협박과 팀원들과의 갈등 속에 다시 작전에 투입되고 이 계획은 예상치 못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단 하나 뿐인 당신의 음악

: MOM & Debora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는 베이비의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이어폰을 나눠끼고 함께 듣게 된다. 간혹 그의 몸에서 아이팟이 떨어지게 되더라도 베이비는 어떻게든 음악을 찾아낸다.(최악의 상황이라면 스스로의 맥박 리듬이라도 느껴야만 한다.) 베이비가 이토록 음악에 집착하는 것은 엄마로부터 기인한다. 엄마는 아마추어 가수였고 음악을 사랑해 어린 베이비에게 아이팟을 처음 선물한 인물이다. 그러나 차를 타고 가는 도중 아빠와 말다툼을 벌이다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만다. 뒷좌석에서 엄마가 선물한 아이팟으로 애써 싸움 소리를 피하고 있던 베이비만이 살아남지만 그 역시 끊임없이 울리는 이명으로 고통받는다. 이명을 이겨내기 위해 베이비는 계속 음악을 듣는다. 그는 음악을 들어야만 세상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흘러가는 음악 위에 주변의 소리들이 자연스럽게 얹혀 그의 귀로 전달된다. 베이비의 이어폰은 단절이 아닌 소통의 수단이다. 


엄마는 음악을 선물하고 음악을 남겼다. 베이비는 그녀를 음악으로 기억한다. 엄마와 같은 레스토랑(Bo's Diner)에서 일하며 Carla Thomas의 B-A-B-Y를 부르며 다가와 베이비의 녹음기에 목소리를 남기는 데보라는 사실상 엄마와 동일선상에 있는 캐릭터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베이비는 데보라에게 T.rex의 Debora를 선사한다. 즉 데보라도 엄마도, 베이비에게 세상 단 하나뿐인 음악(MOM 카세트테이프와 Debora 송)으로 존재한다.



관계 

: 버디와 베이비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계는 버디(존 햄)와 베이비 사이에 있다. 영화 초반 팀 동료 중 한 명이 엘리베이터에서 버디와 달링을 장난스레 '아빠', '엄마'로 지칭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부모님이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영화엔 아빠의 영향이 묘사되지 않는다. 베이비에겐 엄마에게 소리치며 싸우는 친아빠보다 말 없이 음악을 함께 들어주고 눈빛과 몸짓으로 대화할 수 있는 양아버지 조셉의 존재가 훨씬 중요해서 일지도 모른다.


베이비의 실력을 직접 확인한 이후 버디는 기본적으로 베이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뱃츠(제이미 폭스)가 베이비를 못마땅해할 때 그를 편들어주기도 한다. 함께 이어폰을 나눠끼고 베이비의 킬러 트랙이라는 Queen의 Brighton Rock을 들을 때 버디는 자신도 예전에 너와 같았다고 말한다. 방식이 좀 다를지언정 연인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점 역시 같다. 어쩌면 버디는 베이비가 도달할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맥을 같이 하던 그들은 결국 갈라선다. 후반부 적이 되어 달려들 때 한 사람은 사랑의 복수를 하고자 하고 한 사람은 사랑을 지키고자 한다. 승자는 베이비다. 그는 그의 뿌리(아빠)이자 미래인 버디를 이겨내고 살아남는다. 또한 이로써 그는 가명인 '베이비'에서 벗어나 본명 '마일즈'를 되찾는다.(범죄의 세계를 떠나 재판장에 섰을 때 비로소 본명이 밝혀진다.) '베이비'의 미래는 버디였지만, '마일즈'의 미래는 버디가 아니다.



영화라는 설득력

 : 당신이 감상성에 굴복한 순간


종반부 우리를 가장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박사의 캐릭터다. 최악의 상황에서 베이비는 박사를 찾아가 도와달라 요청한다. 우리는 가장 야비하고 속물적인 인물인 그가 베이비를 신경써줄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박사는 베이비를 돕는다. 심지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게다가 그가 베이비를 돕겠다 결심한 이유는 무려 '사랑'이다.


이러한 캐릭터 붕괴는 관객에게 큰 혼란을 남긴다.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과정에서 신경쓰지 못한 부분일까? 스토리상 어쩔 수 없이 캐릭터를 포기한걸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이상하게도 나에겐 이 반전이 다분히 의도적여 보였다. 스토리상 '돈'을 동기로 삼을 수 있는 길이 분명 열려 있었음에도 감독은 '사랑'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대단히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화이지만 의외로 레트로한 감성이 느껴진다. 노래 선정 뿐만 아니라 대사들도 그런데, 할리웃 로맨스 영화나 범죄 영화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사들이 가득하다. 내일 뭐하냐는 베이비의 질문에 "네가 정해서 알려줘봐"라고 대꾸하는 데보라의 대사라던가, "여긴 네가 어울리는 세계가 아니야"(베이비), "나도 사랑에 빠졌던 적이 있었지"(박사) 등 감상적으로 한껏 멋을 부린 대사들이다.


박사의 마지막 행보는 수많은 영화들에서 배워온 감상성을 작위적으로 극대화시킨 것 같다. 전형적 악당이었던 그는 온갖 멋있는 척을 다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토록 촌스러운 감상성이 결국 주인공을 돕고 살린다는 측면이다. 


박사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의 대사다. "You and I are a team. Nothing is more important than our friendship.(우린 팀이잖아요. 어떤 것도 우리 우정보다 중요치 않아요.)" 속물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듯 했던 박사가 '우정'과 '사랑' 앞에 허물어지는 모습을 통해 감독은 영화가 가진 이상한 설득력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모두에게 그런 경험이 있지 않나. 의도한 바가 뻔히 보이는 영화의 수작질에 다 알면서도 어쩐지 홀랑 넘어가 울고 웃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이 트렌디한 영화는 이토록 촌스러운 감상성에 도움을 받아 다시 달려나간다. 이를 감독의 의도적 장난으로 받아들이면 한층 더 영화가 사랑스러워진다.



Baby Driver

: Rock of ages do not crumble, love is breathing still

(Queen - Brighton Rock)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 <베이비 드라이버>는 음악과 연출만으로 제 몫을 다한 영화다. 짧은 숏들을 이어붙여 음악과 사운드, 영상을 정확하게 매치시키는 감독의 편집과 연출에는 혀가 내둘러진다. 음악 외부의 모든 것이 음악을 위해 봉사한다. 영상과 액션, 대사와 사운드가 흘러나오는 음악 위를 피처링한다. 모든 중요한 씬은 음악과 함께 시작하여 음악과 함께 끝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카메라는 마치 턴테이블 위 LP처럼 음악을 플레이하고 질주하는 자동차 안엔 어김없이 음악이 흐른다. 음악이 없으면 베이비의 드라이브도 없다.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덕후'의 영화다. 감독 본인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가 영화 내내 절절히 느껴진다. 베이비의 플레이리스트가 당신의 취향이 아닐 순 있다. 그러나 당신도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애정에만큼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 것이다. 그러니 우선은 베이비 드라이버를 믿어 보시라. 이 영화는 어쩌면 당신이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게 해 줄 영화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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