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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atre
by 프롬 Sep 26. 2017

할 수 있는 말, 들어야 할 이야기

아이 캔 스피크(2017)

상처를 다루는 영화의 태도


얼핏 뻔한 한국형 신파 소재다. 소재만으로 만듦새가 용서되는 수많은 영화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다행이다. 그 구덩이에 빠지지 않아줘서.


<아이 캔 스피크>가 기존의 한국 영화들과 대단히 다른 것은 아니다. 많은 장면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캐릭터부터가 그렇다. 꼬장꼬장한 동네 할머니(옥분 : 나문희)도, 취업 절벽 속에 안정적 생계를 위해 공무원이 된 청년(민재 : 이제훈)도 새로울 건 없다. 


명진구청에 발령받아 출근한 첫날 민재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무려 팔천 건의 민원을 넣어 구청 직원들을 괴롭히는 꼬장꼬장한 할머니 옥분을 마주하게 된다. 민재는 ‘도깨비 할매’라 불리는 옥분에 사무적이고 원칙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대치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 학원에서 우연히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외국인과 대화하는 민재를 목격한 옥분이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며 쫓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런 옥분이 귀찮기만 한 민재는 적당히 둘러대며 피하려 하지만 옥분이 자신도 모르는 새 동생 영재에게 따뜻한 집밥을 먹여왔다는 것을 알게 되며 변화를 맞는다. 옥분의 노력과 숨겨진 자상함에 마음이 움직인 민재는 결국 옥분에게 정식으로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한다. 한편, 옥분은 오랜 친구 정심이 기력이 쇠하여 점차 옛 기억을 잃어가자 그녀를 대신하여 무언가 말하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는 뻔하다. 중요한 소재가 후반부에 드러나며 스토리에 전환이 일어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흔히 보아온 휴먼 드라마의 공식 그대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사실은' 따뜻한 사람이었던 옥분과 민재가 서로 마음을 열게 된다. 시장 상인들과 공무원 감초 조연들이 곁다리로 웃음을 더한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엔 약간의 오해가 쌓이고 풀리는 과정이 있다. 몇몇 사이드 스토리도 함께 흘러간다. 이음새는 살짝 허술하고 어떤 이야기는 제대로 매듭지어 지지 않은채 어영부영 마무리된다. <아이 캔 스피크>는 한국형 휴먼 코미디 특유의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영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다르다 말할 수 있는 지점은 역사를 다루는 방식과 태도에 있다. 고난과 울분의 역사를 지닌 우리를 두고 자조하듯 스스로를 '한(恨)의 민족'이라 칭하곤 했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 드라마에는 유달리 슬픔과 안타까움의 정서가 흐른다. 관객들은 자주 억울해지고 울분이 치민다. 거대한 슬픔 속에 작은 승리로 쓰린 속을 달래보기도 하고 일어나버린 비극을 어찌할 바 없이 마주하고 욕지거리나 내뱉기도 한다. 최루성 눈물을 줄줄 흘려보지만 상영관을 나서면 이내 잊는다. 과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영화들은 우리의 역사가 이렇게나 슬프다고, 그러니 더 슬퍼하라고 과시적으로 전시하기도 한다. 더 잔인하게, 더 참혹하게.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잊지 않는 영화다. 짧은 과거 회상 장면이 있지만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재다. 영화는 수십 년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그 상처를 지고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영화는 예의를 갖추어야만 한다.


당신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를



그리고 이 영화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아이 캔 스피크>는 단지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입을 열기를 촉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피해자를 부끄럽게 하고 숨게 만드는 사회에서 너무 가혹한 부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상처를 드러내주기를, 그리하여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게 잊으려 하는 사람들을 계속 들쑤셔 주기를 요청한다. 진주댁의 입을 빌려 얘기해주지 않으면 서운하다고, 조금 샐쭉대보기도 한다. 옥분이 말을 하지 않을 때 동생은 그녀를 외면하고 옥분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자 그는 누나를 끌어안는다. 아마도 감독은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보다 우리는 조금 더 당신의 상처를 포용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영화는 단순히 위안부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다. 이것은 우리 역사의 뼈아픈 상처에 대한 이야기지만 더 나아가 모든 피해자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상처받고 아팠음에도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 속에 숨어야만 했던 피해자들 모두가 옥분과 같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내세워 자극적인 스토리를 양산해내는 요즘의 현실에도 <아이 캔 스피크>가 건네는 메시지는 분명 유효하다. 



제목인 '아이 캔 스피크'의 함의는 1차적으로 I can speak English,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일테다. 그러나 영화 속 영어는 단순히 외국어가 아니다. 이것은 상처를 드러내는 언어다. 옥분은 영어를 통해 비로소 묻어 두었던 과거를 이야기하게 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던 민재는 꿈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덤덤히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영어는 이들이 평소 사용하지 않던 언어이기에 배워야하고 연습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즉 <아이 캔 스피크>에서 영어는 늘 자신을 숨기고 살아왔던 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언어다.


'미안'을 말하는 것



민재와 옥분을 포함하여 영화 속 인물들은 "미안하다" 여러 번 반복하여 말한다. 그들은 실수로, 혹은 고의로 미안할 일을 한다. 이들은 완벽하지 않고 못된 구석이 있으며 간혹 옳지 않은 짓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들은 결국 미안하다 거듭 사과한다.



옥분은 연설을 통해 힘주어 말한다. 사과하라고, 이건 당신들이 용서받을 기회를 주는 거라고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안하다 말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누군가는 사과하지 않는다. '미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속에 절대 '미안'을 할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은 참 형편없고 볼품없다.


영화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우리에겐 들어야 할 사과가 남아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막을 내릴 수 없다. 피해자는 사과받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되고, 사회는 가해자가 사과하기를 끊임없이 촉구해야만 한다고, <아이 캔 스피크>는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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