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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Sep 29. 2017

기어이 당신을 좌절시킬 몬스터

몬스터 콜 A Monster Calls(2016)

소년에게 기어이 그런 날이 오고야 만다. 자신이 동화 속 용맹하고 정의로운 기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날. 스스로가 순수하지도 착하지도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날. 어느 날 소년은 조그만 몸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던 몬스터의 존재를 깨닫는다.


<몬스터 콜>은 아이라기엔 너무 크고 어른이라기엔 아직 덜 자란 소년을 위한 동화다. 이 동화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몬스터는 기어이 당신을 좌절시키고야 만다.



아름답지 않은 동화


아픈 엄마(펠리티시 존스)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소년 코너(루이스 맥더겔)는 반복되는 악몽에 괴로워한다.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엄마가 절벽에 매달려 있다. 작은 손으로 엄마의 손을 절실하게 끌어당겨 보지만 결국 엄마는 저 암흑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땀에 젖은 소년은 깨어난다.


엄마의 병세가 악화되며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코너는 외할머니(시고니 위버) 댁으로 거처를 옮긴다. 할머니와의 관계가 불편하기만 한 코너는 아빠의 방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엄마와 이혼 후 미국으로 옮겨가 새가정을 꾸린 아빠에겐 코너를 돌볼 여유가 없다.


학교에서도 코너는 외톨이다. 해리 패거리의 괴롭힘과 폭력을 코너는  다문 입으로 그저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 날 코너에게 몬스터가 찾아온다. 창 밖으로 보이는 언덕에 깊게 뿌리내린 커다란 고목이 깨어나 성큼성큼 소년의 창가로 걸어온 것이다. 두려워하면서도 코너는 도망치지 않고 몬스터를 마주한다. 타오르듯 붉은 눈으로 몬스터가 코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야기'다.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줄게.
그러고나면 너도 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해.


코너는 자신에겐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지만 몬스터는 매일 밤 12시 7분 코너를 찾아와 막무가내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뜻 익숙하게 들어온 동화같지만 어쩐지 어딘가 비틀려 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정의로워야 할 왕자는 살인을 저지르고 왕좌에 오른다. 반면 못된 마녀는 누명을 쓰고 사라진다. 두번째 이야기에선 치료를 거절한 약제사가 아니라 목사가 벌을 받는다. 세번째 이야기는 소년의 현실에 훨씬 노골적으로 맞닿아 있다. 투명인간은 자신을 투명하게 취급하는 세상에 주먹을 휘두른다. 동화 속 모든 인물은 하나의 속성으로 평가내리기 힘들다. 몬스터의 말대로 항상 좋은 사람도, 항상 나쁜 사람도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이제 갓 아이의 시기를 벗어나려하는 소년에게 이런 세상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왕자가 정의롭지 않고 마녀가 피해자가 되는 이야기는 코너를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아빠는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함께 살 수 없다 말하고, 외할머니는 손자가 불편하면서도 그를 맡아 책임지려하는 것이 소년이 속한 세계의 진짜 현실이다.


엄마의 병세는 갈수록 위중해지고 새로운 약을 써보기로 한다. 새 치료법으로 엄마가 나을 수 있을거라 믿고 싶지만 문 틈 사이로 보인 엄마의 야윈 등은 코너가 차마 희망을 가질 수 없게 한다. 엄마의 병에 대해 이미 희망을 버린 스스로를 코너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들인 자신조차도 기적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묵직한 죄의식이 되어 소년의 마음을 짖누른다.



마침내 세 이야기가 끝나고 몬스터는 코너에게 그의 이야기를 요구한다. 코너는 절벽에서 엄마의 손을 붙잡고 있다. 늘 반복되던 악몽이다. 몬스터의 다그침에도 코너는 차마 이야기할 수가 없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엄마는 또다시 저 암흑 속으로 떨어 버리고 만다. 그제야 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는다. 입 밖으로 내기 무서웠던, 정의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진실이다.


내 안의 몬스터를 받아들이는 법

: 좌절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이상한 성장통


그렇다. 이 이야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다. 기어이 몬스터가 끌어낸 그 이야기는 소년을 무너뜨린다. 소년은 사랑하는 여인을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왕자와 같다. 피로 물든 손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에서 그동안 차마 흘려보내지 못했던 눈물이 쏟아진다. 그러나 차라리 이 거대한 슬픔 앞에 자유롭게 좌절함으로써 코너는 오랜만에 편안한 잠에 빠져든다. 잔인한 성장통이 소년을 통과해가는 순간이다.


코너의 안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그 괴물의 존재를 인정하기 싫어 발버둥치는 소년기의 이야기다. 이 거친 시기를 지나 결국 몬스터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면 이제 그는 순수를 포기해야만 한다. 그러나 엄마의 스케치북에 고스란히 남겨진 몬스터의 그림처럼, 이것은 코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몬스터의 어깨에 다정하게 올라탈 수 있기까지 엄마 역시 무너지는 시간을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스케치북을 넘기는 코너의 얼굴에 조용한 미소가 스민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몬스터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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