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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Oct 04. 2017

킹스맨의 해방감과 허무주의

킹스맨 : 골든 서클(2017)

올바름을 벗어난 해방감

:불편한 코미디의 패기


워킹 클래스의 열악한 환경 속을 전전하던 소년이 부유하고 능력있는 후원자를 만나 상류층의 언어와 매너를 배운다. 이후 세상에 위험이 닥치자 용감하게 나아가 위험에 빠진 공주를 구하고 공주의 신랑감 자리를 꿰찬다.

디즈니에서 이런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면 시대착오적이라며 온갖 비난에 시달렸을 것이다. 노골적인 계급 묘사와 성차별적인 암시들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엔 바람직하지 못하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는 제쳐두고 보아도 공주와 왕자 타령으로 가득한 고릿짝적 옛 동화들에서나 만나 볼 법한 촌스러운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놀랍게도 <킹스맨> 시리즈의 젊고 세련된 외피 속에 감춰진 알맹이가 바로 그렇다. 잘빠진 수트와 도무지 작동 원리를 알 수 없는 온갖 최첨단 장비들, 화려한 카메라 워크가 아무리 우리 눈을 현혹하고 있어도 이 핵심이 바뀌지는 않는다. <킹스맨>은 현대에서 한 발짝, 혹은 그 이상 퇴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 중요한 시대다. 자유와 평등을 구속하는 모든 것들에 많은 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불편을 말한다. 노골적으로 상류층의 매너를 '좋은 것'으로 묘사하고, 미션 완수의 전리품으로 여성을 제시하는 <킹스맨>은 그래서 절대 편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외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킹스맨>에 열광했다. 킹스맨은 불편한 코미디를 만드는 패기를 가지고 있었다. 동물 보호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현대에 킹스맨이 되기 위한 관문으로 '굳이' 고락을 함께한 반려 동물을 죽이는 미션을 주고,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화려한 불꽃놀이 쇼로 둔갑시키는 것이 킹스맨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었다.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매튜 본 감독의 여성 캐릭터 사용법에 대한 부분을 비롯하여 불편한 점을 꼬투리잡기 시작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킹스맨은 적절히 선을 잘 타며 그것을 매력으로 삼았다. 이것도 불편하고 저것도 불편해 무얼 하든 생각할 게 많고 고민할 게 많은 시대에, 정치적 올바름은 잠깐 넣어두고 그냥 즐기라고, 시원하게 폭죽을 터뜨려주는 영화였던 것이다. 킹스맨이 준 것은 해방감이었다. 게다가 여전히 미끈하게 잘 빠진 수트핏을 자랑하는 미중년 콜린 퍼스와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신선한 얼굴 태론 에저트의 조합으로 눈을 홀려주기까지 하니 킬링타임으로 더 바랄 게 있을리가.


허무로 귀결하는 킹스맨의 세계


매튜 본의 <킹스맨> 시리즈에서 유독 눈에 띠는 특성은 허무함이다. 특히 탄생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무게를 두어 온 '죽음의 순간'을 가장 허무하게 그린다는 점이 특이하다.


킹스맨의 악당(발렌타인과 포피)은 재력과 권력을 겸비하고 있는데, 일반적 액션 영화의 최종보스와는 달리 무력을 갖추지는 않았다. 이들은 사람과 돈을 부릴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기 한 몸을 지킬 힘은 없는 인물들이다. 킹스맨 세계의 악당은 보호막으로 꽁꽁 둘러싼 세계에 갇힌 몽상가로, 자기 세계에 갇혀 살다가 보호막이 걷혀진 순간 매우 허무하게 모든 힘을 잃고 죽음을 맞는다.



악당 뿐만이 아니다. 1편에서 해리 하트(콜린 퍼스)는 가장 멋들어진 교회 액션을 선보인 직후 너무나 허무하게 죽음을 맞았다. 에그시의 동료 록시(소피 쿡슨)의 죽음 역시 아무 의미없다. 똑똑하고 능력있는 요원임에도 그녀는 제대로 반항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극에서 퇴장한다. 멀린(마크 스트롱)의 죽음만이 유일하게 의미있게 묘사되는데 지나치게 감상적이라 외려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이것이 <킹스맨>이 '힘'을 대하는 태도다. 아무리 액션을 화려하게 묘사하여도, 아무리 돈과 권력이 대단한 것이어도 그 마지막은 언제나 허무한 것이다. 매튜 본은 재능있는 어린 소년의 성장과 성공 스토리를 가장하여 속으로는 계속해서 허무주의를 반복하고 있다.


소포모어 징크스, 킹스맨 : 골든서클


<골든서클>은 한층 더 화려한 캐스팅과 눈 돌아가는 액션씬으로 무장했다. 영국에 한정됐던 세계관을 미국으로 확장시켰고 그만큼 새로운 캐릭터가 대거 등장한다. 킹스맨 시리즈의 중요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악역 역시 1편 못지않은 존재감을 자랑한다. 줄리안 무어의 '포피'는 사무엘 L.잭슨의 '발렌타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크릿 에이전트>의 성공 이후 2년 여간 B급 병맛 코미디와 선정성, 폭력성을 결합한 수많은 영화들이 등장했다. 자연히 본 시리즈의 안티테제로 등장하여 007 스파이액션으로의 역행을 선언했던 <킹스맨>의 신선함 역시 그새 많이 퇴색되었다.


이 후속편은 스토리는 확장하였지만 실제 이야기에 있어서는 사실상 <시크릿 에이전트>의 동어반복이나 마찬가지다. 여전히 갑옷 대신 수트를 빼입은 어린 기사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고 하류 인생의 상류 사회 편입극은 결혼으로 엔딩을 맺으며 한 단계 더 강화된다. 더 발전된 무기들이 등장하고 더 강력한 카메오가 등장한다. <골든 서클>은 1편의 특성을 '강화'함으로써 만들어 낸 후속작이다. 그러나 자극이 강해진다고 더 재밌어지진 않는 법. 게다가 미덕이 아닌 부분까지 강화하며 외려 잡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치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려든 것 같은 이 시리즈의 후속은 또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적당한 흥행 성적만 거두어들인다면 우리는 킹스맨의 3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동어반복으로는 대중들이 매튜 본에게 기대하는 신선한 자극을 만족시키긴 어려워 보인다. 어찌 되었든 나는 개인적으로 콜린 퍼스의 해리 하트를 계속 보고 싶기에 매튜 본에게 조금 더 기대를 걸어보고자 한다. 매튜 본은 매끄럽게 극을 이끌어갈 줄 알고, 무엇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많은 감독이니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거라 한번  믿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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