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t Theatre

당신을 알게 되어 미안합니다

서칭 포 슈가맨(2011) vs.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by 프롬

잊혀진 두 사람이 있다. 한 남자는 음악을 남겼고 한 여자는 사진을 남겼다. 남자의 음악은 어쩐 일인지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여자의 사진은 우연한 계기로 박스 속에 파묻혀 있다 SNS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렇게 좋은 음악을 여태 못 알아봤다니.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이 잠들어 있었다니.


대체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두 영화는 모두 이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다.


어느 날 남아공의 젊은이 두 명이 한 때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를 듣다가 문득 생각한다. 이 유명한 노래를 부른 가수는 누구지. 이렇게 인기가 많은데 왜 알려지지 않았을까. 떠돌아다니는 풍문에 따르면 무대에서 공연하다 죽었다는데 사실일까. 한번 궁금증이 뿌리를 내리고 나니 참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아도 제대로 된 정보는 없는 것 같다. 더욱 궁금해진다. 두 사람은 이제 두 팔 걷어붙이고 ‘슈가맨’의 정체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한편 미국에선 역사학자인 한 남자가 사료를 모으기 위해 경매장을 찾았다가 관심을 끄는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상자 속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필름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어쩐지 이 필름 속 사진들, 느낌이 좋다. 혼자 보기엔 아깝다. 남자는 사진을 SNS를 통해 공유하기 시작한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심지어 이름난 전문가들까지 감탄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테다. 남자는 필름에 새겨진 이름을 쫓아 미스터리한 그녀의 정체를 파헤쳐간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말릭 벤젤룰, 2011)

<I Wonder>, <Sugar Man> 등의 곡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아공 인기가수가 된 남자 시스토 로드리게즈를 찾아가는 다큐. 로드리게즈는 60년대 말 유명 프로듀서의 눈에 띠어 앨범을 발매할 기회를 얻는다. 1집 Cold Fact가 이때 탄생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반응이 썰렁하고, 2집 Coming from Reality까지 발매해 보지만 이어지는 대중들의 차가운 외면에 로드리게즈는 결국 다음 앨범을 발매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경로인지 로드리게즈의 음악이 남아공으로 흘러들어간다. 보수적 분위기에 대한 반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던 시점, 로드리게즈 음악의 경쾌한 에너지는 남아공 젊은이들을 사로잡는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그의 음악을 금지곡으로 지정하지만, 냉전의 기운이 이어지던 60년대 러시아 젊은이들도 꾸역꾸역 비틀즈의 음악을 찾아들었다지 않나. 남아공에서의 로드리게즈도 마찬가지였다. 암암리에 전해지고 알려진 그의 음악은 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플래티넘에 등극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로드리게즈는 지구 반대편에서 본인의 목소리가 어떤 일을 해내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열성팬의 추적 끝에 만나게 된 그는 가족과 함께 고향에서 건설 노동자로 조용히 살고 있었다. 자신이 남아공의 슈퍼스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로드리게즈는 드디어 남아공 팬들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을 펼친다. 그리고 다시 그의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존 말루프, 찰리 시스켈, 2013)

억양으로 보아 프랑스인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다만 어머니가 프랑스계였다. 연락 가능한 가족은 없다. 내내 떠돌아다니며 살았으며 주로 유모나 가정부, 간병인 일을 하며 고용인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어렵사리 찾아낸, 어린 시절 유모인 비비안과 함께 자란 아이들이나 친구, 주변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유달리 큰 키로 눈에 띠는 사람이었다 한다. 무척 내밀한 사람이기도 해서 본명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녀는 스스로를 스파이라 얘기한 적도 있었다. 주로 ‘비브’, ‘미스 스미스’, ‘비비안’ 등으로 불렸다. 사건사고에 관심이 많아 범죄 기사들을 모으곤 했으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심한 남성 혐오증을 가지고 있었다. 늘 목에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매달고 다니며 사진을 찍곤 했으나 작품으로 전시한 적은 없다. 이 사진들은 그녀의 사후 15만장의 필름으로 남아 존 말루프에게 발견되었다. 존 말루프는 그녀의 필름들을 수집하고 현상하여 비비안 마이어가 재능있는 사진 작가이자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두 작품 모두 흥미진진하다. 숨겨져 있던 보석을 발견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이 보석엔 신기한 사연까지 깃들어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러나 두 작품을 보고 난 느낌은 판이했다. 슈가맨 로드리게즈를 알게 된 것은 행복했지만 비비안 마이어를 알게 된 것엔 왠지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그녀를 알아도 되는 것일까.


<서칭 포 슈가맨>은 로드리게즈가 본인의 의지로 세상에 남긴 목소리를 쫓는다. 그의 음악이 어떻게 남아공에 닿았고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누가 제작하고 누가 만들었는지, 그의 노래가 가리키는 방향을 쫓아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 로드리게즈에게 도달하였을 때 그는 환한 얼굴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기적을 맞이한다.


반면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제목 그대로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람을 쫓는다. 유달리 비밀이 많고 자신을 숨기고 싶어했던 사람이다. 그녀에 대해 인터뷰하는 사람들 중 태반은 그녀의 본명조차 모르던 사람들이다. 비비안은 분명 그들의 곁에 머물렀지만 온전히 마음을 주지는 않았다. 자기 공간을 침범하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이 찍은 작품들을 전시하려고 했던 적도 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결국은 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한 것인지, 내보이지 않기로 마음을 바꾼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가끔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갑자기 내가 사라져버리고 내가 쓰던 물품들, 내가 사용하던 공간만이 오롯이 남아있게 되는. 그리고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그 누군가는 내가 읽던 책들을 보며 '이런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군' 할 테고, 내가 쓴 다이어리를 보며 '세상에 불만이 많았네' 할 것이다. 내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뒤적거리며 '거참 잉여로운 사람이구만' 하겠지. 어쩌면 나를 알던 지인들을 찾아다닐지도 모른다. 혹여 나와 괜스런 신경전으로 사이가 안 좋았던 사람을 만나 내 이야길 듣게 되면 '심지어 싸가지도 없다니!' 할 지도 모르겠다. 괴로운 상상이다. 운이 좋아 좋은 점들만 부각되고 좋은 얘기만 나올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결국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나'란 사람이 파헤쳐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것은 일종의 일방적인 폭력이다.


비비안 마이어가 당한 일이 그렇다. 그녀가 자신의 작품이 세상으로 나와 사랑받는 것에 뿌듯해할지,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기분 좋을지 나는 모른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애초에 고민할 필요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면, 나를 까발리는 그 시선들이 무서울 것 같다. 아프고 두려울 것 같다. 그래서 비비안 마이어, 그녀를 궁금해하는 나 자신에게 죄책감이 든 것이다.


내가 자의로 이 공간에 공개한 이 글들을 보며 누군가가 나를 궁금해한다면 무척이나 기분 좋을테다. 나는 딱,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는 만큼,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글 속에 나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로드리게즈는 그랬고, 비비안 마이어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볼 수 있어 행복했지만 그녀를 알게 되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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