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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Nov 15. 2017

루저 공감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도대체)+블랙코미디(유병재)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주섬주섬 옷을 집어 입고 거리로 나선다. 이어폰을 귀에 쑤셔 넣고 쌀쌀해진 날씨에 잔뜩 몸을 움츠린채 정류장에 도착한다. 늘 같은 시간 같은 버스를 타는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오지랖 넓게 그분은 오늘 왜 안타시지, 지각하시려나 잠깐 걱정해보기도 한다. 이른 아침 출근 버스에 올라 탄 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엇비슷하다. 지금 내 얼굴도 저렇겠구나 생각한다.


팍팍한 인생이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반가웠던 적이 언제인가 싶다. 힘들다, 피곤하다-를 입에 달고 산다. 솔직히 물리적으로 몸이 그렇게나 고된 것은 아니다. 하루종일 회사에 앉아있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정도야 버틸 수 있다. 우리를 정말 좌절하게 하는 것은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오늘을 꾸역꾸역 버텨낸다고 내일 버텨내야 할 하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00세 시대니 뭐니 하는 말들, 전혀 반갑지 않다. 끝을 알 수 없이 늘어선 하루들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난다.


너무 부정적이라고? 인정한다. 내가 봐도 나는 긍정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늘 저런 생각으로 사는 건 아니다. 어느 날은 좀 괜찮고 어느 날은 유달리 힘들다. 일하는게 그렇게 싫지만도 않다. 가끔 보람을 느끼고 나름대로 즐거운 순간들도 있다. 규칙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어디 나갈 곳이 있다는 건 행운이기도 하다. 나처럼 게을러 빠진 사람이 출근할 곳도 없이 맨날 집에서 뒹굴었으면 우리 엄마 말마따나 ‘방구석 귀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돈을 주지 않나. 아무것도 안했는데 오늘만해도 공납금이니 보험금이 줄줄이 자동이체되어 날아갔다. 떠나는 곳은 셀 수 없이 많은데 들어오는 곳은 한군데 뿐이니 나는 오늘도 조용히 사무실 구석을 지킨다.


자기계발서가 온통 서가를 장악하던 때가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위로를 얻던 시절이 있었다. 노력하면 바뀌는 세상이었을수도 있고 노력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순진함이 아직 남아있어서였을 수도 있다. 요즘 만약 어디가서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얘기를 꺼낸다면 그 순간 꼰대로 낙인찍힐 것이다. 희망고문은 희망이 있을 때나 먹히지 그게 아니라면 그냥 고문일 뿐이다.


물론 지금도 긍정과 낙천, 노력으로 무장하고 열심히 나아가는 사람들은 많으며 실제로 성공에 이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금수저여서 가능했겠지, 라며 꼬아보고 비아냥대고 싶지도 않다. 내가 아무리 하잘 것 없는 열등감 덩어리여도 내가 하지 못한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깔아보는 못난이가 되는 것 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럼에도 요즘은 나같은 사람들이, 나처럼 스스로의 못남이 너무 싫으면서도 그를 드러내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젊은 세대가 세상에 삿대질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우리의 특별한 점은 그만큼이나 나에게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학으로 해학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나는 이만-큼이나 못났어.
그런데 사실은, 너도 그럴걸?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도대체씨가 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와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다. 긴 설명을 덧붙이지 않겠다. 이 책들의 몇 페이지를 옮겨 적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도대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中


[리빙포인트] 오늘따라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면

평소에도 그랬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안심하세요


속도가 맞지 않았어

몇 년 전 나는 어쩌다 1인 창업을 해서 사업을 하다가 폭삭 망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곤 했다.

"(그 일을 하면서)많이 배우셨겠네요"

"그럼요. 어떤 일을 하든 배울 것은 있으니까요."

"오..."

"다만 제가 뭔가를 배우는 속도가 제가 망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인생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인생이란2

인생이란 무엇인가. 잘 살아보자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의미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 먹곤 잘 살지는 않는 것이다.


[리빙포인트] '사람들이 비웃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불필요한 걱정입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늘 나를 비웃고 있답니다.(찡긋)




유병재, <블랙코미디> 中


운명

어느 날 운명이 말했다

작작 맡기라고.


입맛

드라마나 영화에서 맘고생하는 사람들 핼쓱해 보이게 하는 거 그만해라. 일 꼬이고 우울할 때마다 살이 얼마나 찌는데. 입맛이 얼마나 좋아지는데. 새벽에 얼마나 처먹는데. 처먹고 후회하고 또 처먹고 그 와중에 치킨 시키는 내가 싫고 그게 맘고생인데.


신념

나는 그냥 꼴리는 대로 사는 주제에 나중에 나름의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는지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그걸 신념이라고 부르지는 않는지 돌아봐야겠다.


직업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나는 코미디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

뭐랄까 직업으로서 확신이 든다. 코미디야말로 내 직업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왜냐면 너~~~무 하기 싫을 때가 많다.

하기 싫어야 직업이지, 좋으면 취미지.


서러운 마음 나도 몰라

나는 어쩌면 기분이 나쁘고 싶은 걸까?

어째서 그토록 우울하고 슬프려 용을 쓰는 걸까?


나는 어쩌면 이해당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어쨰서 그토록 외롭다고 징징대다가도 누가 내 마음 다 안다고 하면 성이 나는 걸까?




웃픈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면 아마 당신도 나와 같은 부류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일부러 부정적인 에너지에 노출되는 것은 그다지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니까. 이들 책의 저자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성공비법을 짚어주는 자기계발서의 주인공들과 다르다. 힘내서 열심히 삽시다 으쌰으쌰하는 것은 이들의 영역이 아니다. 그들은 루저이거나, 혹은 루저를 표방하는 사람들이다. (이미 베스트셀러를 출판했다는 것부터가 루저의 영역을 벗어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형성하는 패배공감의 기반은 행복의 좌절에 있다. 우리는 어쩌면 역사상 가장 행복에 진지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스스로를 비하하며 헤헤 웃는 이면에는 아주 절실하게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과 정말로 잘 살고 싶다는 꿈이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배웠고 잘 안다. 나도 잘해야 하고 사회도 잘해줘야 하는데 이도 저도 제대로 안되니 맘에 안드는 것 투성이다. 자꾸 불만덩어리가 되어간다. 세상은 이렇게 못난 나를 원하지 않으니 감춰둬야 하지만 끓어오르는 좌절의 뚜껑은 자꾸 터져나오려 들썩거린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라도 표출해야지. 그래서 오늘도 나의 못남을 코미디로 가장해 내뱉는다. 나는 참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모순 덩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진지하게,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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