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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Jan 23. 2018

죽음 이후의 세계

코코 Coco(2017)


1.

<코코>는 픽사의 이름값에 따라오는 높은 기대치를 거뜬히 만족시키는 작품이다. 이국적인 멕시코 풍광을 배경으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이 이야기는 감동적인 서사의 힘과 구조적 완결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픽사는 이번에도 한발작 비켜감으로써 차별성을 획득한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만큼이나 소중한 슬픔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코코>에서는 꿈의 반짝임에 감춰진 뒤편을 조명한다. 현명하다!



2.

<코코>를 보러 가기 전날 밤,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토이스토리> 1편을 보게 되었다. 어렸던 내 눈엔 분명 매끈하게 잘빠진 3D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지금보니 어색한 질감과 삐걱대는 움직임이 거슬리더라. 그로부터 이십 여년이 흐른 현재 <코코>의 캐릭터 구현은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다. 점, 잡티, 보조개까지 완벽하게 표현된 주인공 소년 미겔의 피부를 보라. 더 놀라운 건 할머니 코코의 주름진 얼굴인데, 이건 거의 실사라해도 믿을 지경. 이 정도면 픽사가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캐릭터를 덜 사람답게 표현한게 아닐까 싶다. 이미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캐릭터를 구현할 기술력은 갖추어진게 틀림없다.



3.

코코와 헥토르의 이야기에 눈물을 찍어내면서도 나는 어쩐지 약간의 씁쓸한 뒷맛을 느끼며 극장을 나섰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코코>가 죽은 자들의 세계를 그리는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코코>가 보여주는 저승의 모습은 사실상 현생의 연속이나 다름없다. 특히 이승에서 쌓아올린 명성과 재산이 죽은 이후의 삶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코코>에서 죽은 자들은 산 자의 기억을 토대로 살아간다. '죽은' 자가 '살아간다'는 표현은 모순인 것 같지만 어쨌든 영화의 묘사에 따르면 그렇다. 델라 크루즈는 죽어서도 생전의 명성에 힘입어 화려한 궁을 지어놓고 왁자지껄한 파티를 벌이며 맘껏 인생을 즐긴다. 산 자의 기억이 저승의 생존 조건인 이상 델라 크루즈는 일종의 영생을 얻은 것과 같다. 반면 헥토르를 비롯한 이승에서 잊혀져 가는 이들은 다가오는 '소멸'(아마 이것이야 말로 이 세계관 속 진정한 의미의 죽음일 것이다.)을 준비하고 있다. 이승에서도 아마 쓸쓸히 고독사한 이들일 테다. 그들은 죽어서도 또 외로이 죽어간다. 생전의 실패한 인생에서, 실패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이승에서의 삶이 저승에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업(karma)'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업이니 어쩔 수 없지 체념하기엔 좀 슬프다. 이 축제와 파티 분위기가 만연한 죽은 자들의 세계는 심지어 <신과 함께>가 그리고 있는 지옥도보다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코코>의 저승은 권선징악을 담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으로 살인을 저지른 델라 크루즈는 여전히 저승에서도 떵떵거리며 잘 사는 반면 억울한 죽음을 맞은 헥토르는 회한 속에 쓸쓸히 헤매인다. 이승과 저승을 오갈 수 있게 된 미겔의 특수한 상황 덕에 결과적으로 델라 크루즈의 악행은 고발되고 이승에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지지만 이건 그야말로 특수한 한 사례일 뿐이다. 미겔과 가족들이 벌이는 한바탕의 난장이 아니었다면 델라 크루즈는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누릴 거 다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을테다. 그러니 이 세계관은 너무 슬프지않나. 죽어서도 평등할 수 없다니. 죽어서도 해방될 수 없다니. 죽어서도 맘 편히 쉴 수 없다니.



4.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산 자의 기억이 죽은 자를 존재하게 한다는 모티프는 작년 연말 개봉했던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과 맞닿아 있다. 그러고보니 연말연초에 유독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룬 작품들이 많았으니 함께 보며 이들이 그리는 삶 이후의 시간들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천만 흥행에 성공한 <신과 함께>와 저예산으로도 이렇게나 아름다운 판타지 영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고스트 스토리>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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