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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Feb 12. 2018

좋아하고 싶은 영화, 좋아하고 싶은 배우

원더 Wonder + 패딩턴 2 Paddington 2


WONDER. 2017


1.

빌리 엘리어트를 오마주한 것이 분명한 <원더>의 오프닝 장면부터 직감했다. 이 영화는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할 것이다.


2.

단순하게 보면 <원더>의 주인공은 남들과 조금 다른 얼굴을 가진 소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인 듯 보인다. 물론 어기는 이 영화의 중심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짜 다루고 싶어 하는 것은 어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이다. 어기는 분명 그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 구심점이지만 세계 그 자체는 아니다. 영화 속에서 비유하듯 어기는 태양이고 그의 가족, 친구들, 이웃들은 그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과 같다. 그러나 태양과 태양계는 엄연히 다르다. <원더>는 태양계에 대한 이야기다.


태양으로 태어난 것이 마냥 행복한 일이 아닌 것처럼 행성으로 태어나는 것도 슬픈 일은 아니다. 태양계의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기 지구에서, 혹은 저 변두리의 작은 행성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태양의 거대한 영향력 속에서도 각 행성은 저마다의 환경을 형성하고 저마다의 온도를 지닌다. 누나인 비아(이자벨라 비도빅)가 그렇고, 친구인 잭 윌(노아 주프)이 그렇다. 엄마와 아빠도 마찬가지다.


어기는 기꺼이 자신의 주위를 공전해준 그 행성들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이 소년이 우주 비행사를 꿈꾸는 것은 아마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3.

<원더>에서 가장 복잡한 캐릭터는 어기의 누나 비아다. 온 세상이 어기를 중심으로 도는 것에 익숙한 비아는 어린 나이에 이미 체념을 배웠다. 통상 이런 인물 구도라면 비아는 부모님과 갈등을 겪으며 어기를 미워하다가 결말부에 이르러 화해와 반성의 시간이 열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비아는 엄마인 이자벨에게 서운해하면서도 어기를 탓하지 않는다. 어기에게 말했듯 세상 모든 일이 어기와 관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아는 부모에 대한 서운함과 어기의 존재를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아이다.


비아의 이토록 성숙한 태도는 그녀 역시 구심점이 되는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만은 네가 최고야, 라고 말해주셨던 할머니가 있었고, 주인공역에 도전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남자친구가 있다. 태양의 주위를 도는 조그만 행성 지구에게도 변함없이 지구만을 바라보는 달이 있듯이.



4.

선생님이 매달 칠판에 크게 적어주는 교훈 중 무척 인상깊었던 한 마디. 나를 반성하게 했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는 친절함을 선택하라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PADDINGTON 2. 2017


1.

패딩턴 2는 원더만큼이나 가족 영화로 훌륭한 선택이다. 이 영화가 조금 밋밋하고 재미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를 싫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패딩턴은 당신을 너그럽게 만든다.


2.

그 증거가 바로 나다. 나는 영화관의 소음 공해에 상당히 예민한 편이라 차라리 맨 앞자리에서 고개를 한껏 쳐들고 고난의 러닝타임을 견뎌낼지언정 매너없는 관객들 사이에 끼는 것만큼은 피하려 하는데, 이번에는 여러가지 사정상 꽉 찬 영화관의 한 가운데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신기한 건 불만이 없었다는 거다. 와그작 와그작 팝콘을 씹어대는 소리, 조잘대는 조그만 입들, 가만히 앉아있기 어려워 자꾸 들썩거리는 엉덩이... 그 모든 것에 한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었던  대체 무엇 때문일까. 스스로가 신기해 한참을 고민해 봤지만 답은 하나밖에 없다. 이건 패딩턴의 기적이다.


3.

전작인 1편도 상당한 호평 속에 공개되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꽤 기대하고 보았는데 분명 사랑스러운 영화긴 했지만 특별한 지점은 찾지 못했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가 100%니 뭐니 호들갑이어도 2편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2편은 정말 조금 다르다.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1편의 연장선에 있지만 조금 더 세련돼졌고, 조금 더 매끈해졌다. <패딩턴 2>는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다.



4.

발전한 CG, 더 볼만해진 액션, 다양해진 캐릭터 등 모든 면에서 발전했지만 다 제쳐두고 나는 이 영화의 강점을 이 사람으로 꼽고싶다. 휴 그랜트!


휴 그랜트는 참 흥미로운 배우다. 60년생인 그는 이미 한참 전에 쉰을 넘겼다. 한때 로맨틱 코미디계를 평정했던 이 배우의 성공 비결은 의외로 '게으름'이었다. 고르는 영화마다 대박이라던 그의 화려한 필모그래피는 사실 너-무 일을 하기 싫어해서, 워낙에 꼼꼼하게 대본을 고르고 또 고르기 때문에 완성되었다는 거다. 어떻게든 안 찍을 꼬투리를 잡으려고 기를 썼다는 얘기.


휴 그랜트급의 명성을 얻은 남성 배우라면 으레 이런 저런 영화들에 불려다니며 도전을 해보기 마련이다.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의 히어로로 거듭나기, 고도의 연기력을 요하는 영화제 선호형 작품들만 골라찍기(조금 비꼬아 말하자면 '아카데미병'걸렸다는 부류가 바로 이쪽이랄 수 있겠다). 휴 그랜트는 양쪽 다 거부한다. 그의 필모엔 도대체 화려한 액션이라곤 없고, 무겁고 진중하여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노려볼법한 영화들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쉰이 넘도록 그의 필모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여전히, 로맨스고 코미디다. 그것이 이 배우가 가장 잘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미지 변신을 하지 않는 휴 그랜트의 뚝심이 나는 예전부터 좋았다. 아니, 뚝심이 아니라 여유라고 해야할까. 휴 그랜트에게는 배우를 함으로써 뭔가 이뤄내고 말겠다는 야망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그는 그런 거대한 것엔 관심이 없다. 그저 간간히(너무 열심히는 안된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배역을 맡아 연기하면 그만이다. 거창한 업적과 성과가 왜 필요한가. 휴 그랜트는 절대 다니엘 데이-루이스나 톰 행크스와 이름을 나란히 하진 못하겠지만, 외려 그래서 나는 그가 더 부럽다. (한국 배우 중엔 차태현이 가장 비슷한 케이스인 것 같다.)


<패딩턴 2>에서의 휴 그랜트 역시 여전하다. 매력적인 미소로 사람들을 속이는 악당임에도 그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면 자연히 웃음이 난다. 물론 새로운 모습은 없지만 뭐 어떤가. 그는 여전히 좋아하고 싶은 사람인 걸. 어울리지 않는 마초의 탈을 쓰는 것보다 여전히 무게잡을 생각 따윈 없는 이 배우의 일관된 태도가 더 흥미롭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뮤지컬 시퀀스를 놓치 않길. 여전히 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배우인지 증명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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