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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Feb 21. 2018

그저 사랑이어서 아름다운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2017)

여러 시상식을 통해 이미 17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는 <셰이프 오브 워터>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인장이 짙게 찍힌 영화다. <판의 미로>나 <헬보이> 시리즈를 보아온 관객이라면 이 괴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작들이 그랬듯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관심은 여전히 약자와 소수자에 있다. <판의 미로>는 내전 상황 중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소녀가 주인공이었고 <헬보이>는 지옥 뿔을 달고 태어난 크리처를 히어로로 등장시켰다. <셰이프 오브 워터> 역시 장애를 가진 여성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를 전면에 내세운다.


약자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그들을 모성애 혹은 부성애를 가진 시선으로 따뜻하게 보듬는 것과 조금 다른 맥락으로 기예르모 감독은 그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기예르모의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그 선택이 비극적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갈등을 겪고 자신을 소외시키게 되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나아간다. 이번 영화의 엘라이자도 마찬가지다.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는 극장 위 건물에 세들어 살며 미 항공우주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하루의 시작을 묘사한 초반의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엘라이자는 그녀만의 생활 패턴 속에 스스로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성이다. 출근 전 그녀는 바로 옆 방에 살고 있는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를 챙기는 여유도 보인다. 회사로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에는 고전 뮤지컬 영화 속 흥겨운 리듬이 묻어난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경쟁이 치열하던 60년대의 어느 날, 항공우주국에 괴생명체가 실려온다. 우주경쟁에 활용하기 위한 비인격적인 실험들이 시행되는 가운데 실험실의 청소를 맡게 된 엘라이자는 이 생명체에 자연스러운 끌림을 느끼고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보안책임자로 부임해온 리차드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가 괴생명체의 연구를 두고 갈등을 겪게 되자 생체 해부를 지시하기에 이르고, 엘라이자는 그를 구출하기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황홀한 시각적 체험이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푸른 색감은 '물'이라는 지배적 이미지의 연장선이다. 상징적 소재들 역시 색감으로 우선 그 특성을 드러낸다. 청록색과 붉은 색의 사용을 눈여겨 보면 특히 흥미로울 것이다.


예를 들어 자일스는 매일같이 관심가는 청년이 근무 중인 동네의 카페에 들러 조각 케익을 사는데, 민트색 크림으로 뒤덮힌 이 케익은 도무지 먹어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어서 늘 한 입만 베어문 채 방치된다. 정성껏 그렸지만 거절당하는 자일스의 광고 그림 속 케이크 역시 초록빛이다. 스트릭랜드가 과시적으로 구매하는 캐딜락도 마찬가지인데, 큰맘 먹고 구매한 이 차는 엘라이자가 벌인 탈출 소동 속에 허무하게 앞범퍼가 망가치고 만다.


결국 일부가 망가지는 것으로 끝나는 이 소재들은 등장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조각 케익은 카페의 회전진열대 위에서 돌아가고 있고, 캐딜락 역시 회전하는 전시대 위에서 스트릭랜드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에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스트릭랜드라는 인물 자체다. 항공우주국 실험실로 들어오는 그는 스핀하는 카메라의 중심에서 위악적으로 등장한다. 이후 그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는다는 사실까지 상기해보면 이들이 상징하는 바는 더욱 명확해진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거짓되고 과시적인 것들을 조금씩 망가뜨리는 영화다. 그것이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편, 사랑의 감정은 붉은 색감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의 톤을 장악하는 푸른색과 대비되어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엘라이자의 붉은 머리띠, 코트, 구두는 온통 사랑에 빠진 그녀의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들 연인이 극장에서 엘라이자가 사랑해 마지 않는 고전영화의 스크린을 함께 바라보는 장면에서 붉은 극장 좌석들은 이 사랑의 로맨틱함을 배가시킨다.



<셰이프 오브 워터>가 사랑 이야기로서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사랑'을 해결책으로써 제시하지 않는다는 면에 있을 것이다. 멜로영화의 많은 주인공들은 사랑 이전에 결핍에 시달린다.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억압된 상황 속에 해방구를 꿈꾸던 그들은 사랑을 만남으로써 상황을 타개해 간다. 그러나 엘라이자는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운 자기 삶을 영유하고 있다. 풍족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일 아침을 맞이하는 그녀의 표정과 발걸음은 가볍다. 이는 엘라이자가 사실상 이미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출근 전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두고 스스로 성적으로 만족을 얻는 장면은 그녀가 이미 '물'과 사랑하는 사이임을 암시한다.(끓는 물에 달걀을 삶는 이미지가 곧바로 연결되는 것 역시 상징적이다.) 크리처는 '물'의 또다른 형태일 뿐이다. 그는 괴이하지만 늠름하고 신화적인 형태를 갖춘 물이고, 그러니 엘라이자가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상대의 형태가 달라진만큼 사랑의 모양도 조금 달라졌고 그녀의 삶도 조금 더 충만해졌지만 이 사랑은 여전히 그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마스터키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녀의 일상엔 언제나 사랑이 있었고, 사랑은 그저 사랑이어서 아름다울 뿐이다.



기예르모의 영화가 늘 그랬듯 새로운 크리처 디자인을 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물고기와 파충류, 인간 육체를 적절하게 섞어 놓은 듯한 <셰이프 오브 워터>의 크리처는 <헬보이>의 에이브와 닮았지만 조금 더 탄탄하고 위엄있는 모습이다.(두 역을 연기한 배우도 더그 존스로 동일하다.) 이 크리처가 보이는 원시적 폭력성과 치유력은 당연히 물의 특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메이저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는 예상보다 훨씬 대중적인 작품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식의 잔혹하고 슬픈 어른 동화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지나치게 어둡거나 늘어지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스토리만 본다면 익히 접해온 클리셰들과 크게 거리가 멀지도 않다. 그러나 아름답고 독특한 이미지와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여기에 해피엔딩 같기도 새드엔딩 같기도 한 끝맺음의 모호성도 영화적 체험의 신비성을 더한다. 게다가 차별과 폭력에 대한 이슈가 연일 화제인 현재의 상황에 이 영화의 주제는 매우 시의적절하기도 하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만듦새와 내용 모든 면에서 무척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이 영화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최고작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뉠 것 같다. 영화를 본 후 거의 열흘이 넘게 이 작품에 사로잡혀 있었으면서도(스트릭랜드 캐릭터의 대사가 노골적으로 비유적이고 다소 과하다는 측면을 제외한다면 나는 이 영화의 거의 모든 부분이 사랑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기예르모 감독이 앞으로도 이 정도의 작품을 더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만큼 대중적이진 않을 수도 있겠다. 이미 유수의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하며 순항하고 있는 <셰이프 오브 워터>가 다가올 아카데미에서도 최고의 영예를 가져갈 수 있을지 기대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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