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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 Apr 10. 2018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레이디 버드 Lady Bird(2017)

1.

가족의 영역에 들어선 순간 사랑은 윤리의 문제가 된다. 여기엔 의무가 따른다. 우리는 가족을 사랑’해야만’ 한다. 그래서 사랑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걸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가족이란 이름 하에 사랑은 일종의 디폴트값과 같다.

(대개가 그렇다는 얘기다. 전혀 가족의 윤리적 의무에 구속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꽤 많으니까.)


반면 좋아한다는 것은 취향의 영역이다. 선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영역은 윤리와 도덕의 고리로부터 훨씬 자유롭다. 이 말은 곧 조금 잔인한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가족이어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가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존재일수는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존재이긴 힘들다. 적어도 가족이란 조건 안에서는(혹은 오래된 연인이라던가), 좋아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보다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LADY BIRD : Why can’t you say I look nice?
                그냥 예쁘다고 말해주면 안돼?

MARION : I thought you didn’t even care what I think.
            네가 내 의견을 신경쓰는 줄은 몰랐는데

LADY BIRD : I still want you to think I look good.
               난 여전히 엄마가 날 예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MARION : I’m sorry, I was telling you the truth. Do you want me to lie?
             솔직하게 말해서 미안하구나. 거짓말해주길 원하니?

LADY BIRD : No, I just wish... I wish that you liked me.
               아니, 난 그냥... 엄마가 날 좋아했으면 좋겠어

MARION : Of course I love you.
             당연히 널 사랑하지

LADY BIRD : But do you like me?
               그치만 날 좋아는 해?

MARION : ...I want you to be the very best version of yourself you can be.
            ...난 그냥 네가 더 나은 모습이 되길 바랄 뿐이야

LADY BIRD : What if this is the best version?
               이게 내 최선이면 어떡해?


<레이디 버드>를 보며 나는 love와 like가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어. 그런데 나를 좋아는 해? 내가 당신의 가족이 아니었더라도 당신은 나를 마음에 들어 했을까? 나는 당신이 좋아하고 싶은 사람일까?




2.

크리스틴과 엄마 마리온은 여러 면에서 서로를 쏙 빼닮은 사람들이다. 아빠의 말대로 둘 다 한 성격 하는지라 도무지 평화로울 새가 없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 새크라멘토를 드라이브하는 두 사람이 겹쳐지는 모습이 상징적이다. 그래서 위의 장면은 마치 자신과의 대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크리스틴은 자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잡지 속 모델처럼 예쁜 몸매도, 친구 제니처럼 반짝이는 피부를 가지지도 못했다. 그래서 의심이 된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걸까. 나는 좋아할 만한 사람일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한편, 엄마 마리온은 자꾸만 자신과 겹쳐지는 딸을 보며 생각한다. 비록 나는 이렇게 살지만, 나를 꼭 빼닮은 또다른 나인 너는 더 나은 삶을 살아야해. 그랬으면 좋겠어. 그러니 그게 너의 최선이라 얘기하지 말아줘. 그건 마치 이게 나의 최선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으니까.



3.

언뜻 클리셰로 가득한 10대 소녀 반항기로 보일 수 있지만 <레이디 버드>가 포착한 열 일곱 크리스틴의 순간들은 무척이나 섬세하다. 모녀가 서로의 심기를 바득바득 긁어가며 말다툼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예쁜 옷을 발견하자 마자 "어머 이거 너무 예쁘지 않아?"하며 순식간에 다정하게 분위기가 전환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묘사하지 않을 이 순간을 그레타 거윅은 이 100분 남짓한 짧은 영화에 굳이 골라 넣었다. 다른 장면들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얼마나 솔직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자신의 소녀기를 기억하고 있는지 우리는 영화 속 가장 사소한 장면들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4.

시얼샤 로넌이 연기한 주인공 크리스틴(혹은 레이디 버드)는 감독 그레타 거윅이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 속에서 보여준 캐릭터들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특히 노아 바움백 감독의 <프란시스 하>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에서 그레타 거윅이 연기한 캐릭터의 과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레이디 버드가 좋았다면 거윅의 출연작들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새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난 여성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시얼샤 로넌이 주연한 <브루클린> 역시 이어진다. 코미디의 톤을 잃지 않던 <레이디 버드>는 의외로 착 가라앉은 엔딩으로 나아가는데, 혹시나 이 엔딩이 너무 울적하게 다가왔다면 <브루클린>이 기분 전환이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5.

그레타 거윅의 캐스팅 안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시얼샤 로넌과 로리 맥칼피가 보여준 모녀 조합은 강력하다. 특히 시얼샤 로넌은 그레타 거윅의 분신에 맞춘 듯이 잘 들어 맞는다. 이 이상의 캐스팅은 없을 것 같다. 줄리는 어느 순간 마치 내가 레이디 버드라도 된 양 그 시절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어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드는 캐릭터다. 이 역을 맡은 비니 펠드스타인은 처음 보는데도 어쩐지 낯익고 친숙한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역시 적역이다.(알고보니 배우 조나 힐 동생이었다! 낯익다 했더니!)


압권은 루카스 헤지스와 티모시 샬라메다. 현재 미 독립 영화 시장에서 가장 핫한 두 남자 배우를 일찌감치 자신의 작품에 찜해 온 거윅의 안목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대니와 카일, 둘 모두 결정적으로 사랑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음에도 이 소녀가 온통 마음을 빼앗기는게 납득이 된다. 비중은 크지 않지만 이 두 남성 배우를 보는 것도 영화가 주는 쏠쏠한 즐거움 중 하나다.




6.

정도는 좀 다를지언정 <레이디 버드>에는 10대를 떠나보낸 여성이라면 자연히 공감할만한 장면들이 가득하다.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나치며 깨달았다. 가족과의, 친구와의, 혹은 연인과의 관계는 절대 내가 가지고 있는 이상만큼이나 완벽할 수 없다는 걸. 물론 나 자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 얼마나 쉽게 변해가는지, 얼마나 불완전한지 깨달으며 우리는 성장한다.


극장 불이 켜지자 어떤 여성 관객 한 분이 오열하고 계셨다. 그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납득했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그만큼이나 강력할 수 있는 영화다. 이렇게나 솔직하고 섬세하게 여성이, 여성의 이야기를, 여성의 시선으로 해 주었다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이고 감동인지, 그레타 거윅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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